혈통이 운명을 결정짓는 나라:일본 세습과 영화 <국보>

by 얼룩말
“내겐 나를 지켜 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영화 『국보』의 조용한 흥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2년만에 일본 내 천만관객 기록을 깼다고 합니다. 생소하고 낯설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충격적인 소재이기에 매력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세습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영화는 더 깊이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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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부키의 재능과 열정을 가진 키쿠오. 그는 고아가 되었지만 가부키 명가의 주인인 한지로의 눈에 발탁되어 수습생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형제 같은 친구이자 필생의 라이벌인 슌스케가 있습니다. 키쿠오가 제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하나이 한지로 가문을 잇는 이름은 이 가문의 외아들, 슌스케가 받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공 키쿠오가 평생 싸워야 하는 굴레는 재능이 아닌 ‘혈연’, 즉 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부키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명문 가문이 곧 명문 극단의 브랜드가 된다는 점이며, 명배우라는 타이틀 또한 개인의 재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서 아들로 승계된다는 점입니다.


일본 가부키의 이런 전통을 이해한다면, 영화 속 ‘온나가타’(여성 배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남성배우) 친아들과 양아들의 경쟁은 단순한 개인 간 라이벌 구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능을 최우선하는 냉정한 예술가 아버지에 비해,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아들을 감싸는 어머니의 고집은 한국 관객의 상식으로는 지나친 모성애나 치맛바람처럼 보이지만, 일본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가문 중심 구조’라는 사회적 굴레를 이해한다면 더 깊은 이면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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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는 특정 직업군에서 혈연과 계보가 직업적 지위와 기회를 좌우하는 세습 시스템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해 왔다고 합니다. 가부키와 비슷한 전통 예술장르인 노, 교겐 같은 분야에서도 특정 가문이 연기 양식과 레퍼토리를 대대로 계승해 온 것은 물론이고, 전통문화의 한 장르인 다도 역시 ‘이에모토(家元)’라 불리는 가문 수장이 의식과 교육 체계를 독점적으로 이어간다고 합니다.


이 뿐 아닙니다. 도예, 옻칠, 염색 등 전통 수공업 분야에서도 장인 가문이 기술과 이름값을 함께 물려받으며 ‘몇 대째 장인’이라는 계보는 곧 품질을 보증하는 보증서나 다름없습니다. 한 기사에서는 다도 문화 명문가인 ‘우라센케(裏千家)’의 15대 가문주 ‘센 소시츠’가 102세에 사망한 소식을 다루고 있는데, 다도 지도자 역시도 무려 15대나 세습되었던 것이죠. 더 신기한 것은 센 소시츠의 원래 이름은 ‘마사오키’로 몇 번에 걸쳐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영화 <국보>에서 가부키 당주의 이름을 대를 이어 물려받는 것과 흡사합니다. 심지어는 정치에서도 세습 문화가 존재해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는다는 표현이 공공연히 언론에 등장하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정치인 고이즈미나 아베 신조 역시 이러한 일본의 유명한 정치 가문 출신입니다.


대를 이어서 어떤 직업에 종사한다거나, 소위 명문가라는 호칭은 어느 문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일본의 세습 문화는 신기한 데가 있습니다. 근대 이전까지 아버지나 가문의 직업 또는 가업을 이어받는 것은 흔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세습 문화에는 배타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이름을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들에게로 물려준다는 것은 가문의 이름 아래 개인의 존재를 지우는 것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재능과 창의성을 수반해야 하는 예술의 분야에서 과연 ‘혈연’이 어느 정도까지 예술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도전과 비판으로 권위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혈통주의는 예술의 가장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혈통이야말로 모든 비판과 도전을 한 순간에 제거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강력한 이유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 때문인지, 일본 세습 제도에도 ‘양자’ 시스템은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 한지로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키쿠오를 양자 삼아, 가문의 이름을 키쿠오에게 물려주려고 계획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죠. 아버지는 혈육의 정 보다는 재능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던 겁니다.


만약 키쿠오의 야쿠자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조직이 산산이 와해되지 않았더라면, 키쿠오는 가부키 배우의 길을 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원하지도 않은 야쿠자 두목의 길을 가야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운명은 그를 예술의 손에 넘겨줬지만, 예술은 그를 마음껏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혈연과 세습의 시스템이 개인의 운명을 짓누르고, 사회적 구조와 예술적 지향이 마치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맷돌의 위·아래 돌처럼 한 연약한 인간을 무참히 바스러 뜨렸습니다.


가부키 노래와 춤이 낯설고 기괴하게도 들렸고, 비현실적인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과 눈 화장, 극도로 과장된 머리와 장식적인 무대의상이 삶과 예술의 거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삶은 아무리 달려도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밑바닥인데 예술은 손이 닿지 않는 저 고귀한 곳에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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