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생충>의 그림자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영화 <조커>가 가져온 파장도 만만찮았다. 다른 명작들에 치이긴 했지만 꽤 많은 국제영화상을 가져간 것은 사실인데, 그 상들이 주로 호아킨 피닉스에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작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조커>에 대한 뜨거운 주목에서 조금은 비켜있었나 싶기도 하다. 감독 토드 필립스가 '조커' 직전에 만든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그 영화를 살펴보기 전에 토드 필립스 감독이 왕년에 <행오버> 시리즈의 감독이자, 제작자였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행오버> 시리즈는 지독한 숙취라는 제목처럼, 철없고 허세 쩌는 남자들이 술 진탕 먹고 우발적인 범죄사건에 휘말리는 병맛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에다가 수위가 세서 극장에서 수입적으로 승산이 없다고 생각됐는지 국내에는 개봉이 안돼서 VOD나 넷플릭스에서나 시청 가능하다.
그렇다면, 행오버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개봉된 2013년과 2019년 <조커> 사이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어떤 영화를 만들었나? 정확히 두 영화의 중간인 2016년에 만든 영화가 <워 독 (War Dogs)>이란 영화다. 어쩌면 이 <워 독>이 "어떻게 행오버 만든 사람이 조커를 만들 수 있어?!"라는 우리의 황당함에 힌트를 던져줄 수 있을지 모른다.
<워 독>은 무기 매매를 업으로 살아가는 업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전쟁은 언제나 표면상으로는 도덕적 윤리적 등등의 명분으로 계기를 삼아 일어나지만, 이런 전쟁의 이면에는 국가 간의 , 그리고 산업 간의 이권 다툼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고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는 들개 같은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 <워 독>의 주인공들은 그런 무기 매매 산업의 변두리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다가 얼떨결에 거물이 된 인물들이다.
마사지사로 일하면서 근근이 세일즈를 해서 먹고사는 데이비드는 어느 장례식에서 고교 때 친했던 동창 에프라임을 재회한다. 그런데 뭐 변변히 하는 것도 없었던 에프라임 이놈이 번듯한 사업을 한다며 거들먹거리는데, 알고 보니 삼촌을 따라 조금 일을 배워 이제는 혼자 회사를 차려 무기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심을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에프라임은 자신 밑에서 일하기를 권하고 데이비드는 일을 배워나가게 된다.
그런데, 배운 것 없는 에프라임이 어떻게 펜타곤의 굵직한 무기 공급계약을 따낼 수 있었을까?
언제나 큰 무기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큰 계약 밑에 부스러기 같은 자잘한 계약들을 주워 먹는다는 것이었다. 오호! 새로운 세상의 법칙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일을 빨리 습득하고, 둘은 꽤 쏠쏠한 소득을 올리게 된다.
이쯤 해서 둘의 사업이 점차 번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게 납품해야 할 총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에프라임과 데이비드가 직접 중동으로 날아가, 이라크의 죽음의 삼각지대를 직접 트럭을 타고 공수하는 모험을 해가면서 미군의 신임을 얻었던 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승승장구하며 많은 직원을 거느린 번듯한 회사가 된다.
그러다 둘은 국제 무기박람회에서 무기 매매업계의 거물이라 불리는 헨리 지라드 (브래들리 쿠퍼)를 만나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자신은 미국에 직접 거래가 불가능하니, 펜타곤에 납품할 총탄을 싸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둘은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이 가능했고 결국 펜타곤과의 계약을 따낸다. 하지만 '알바니아'의 한 창고에 쌓여있던 총알은 소련제가 아닌 '메이드 인 차이나'였고, 중국제를 미군에 납품할 수는 없기에 이들은 포장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납품을 하려다가 발각된다. 둘의 사이는 갈라졌고 회사도 파탄에 이른다.
<워 독>을 본 직후 우연찮게도, 중동의 레바논에서 들려온 황당한 폭발사건은 때마침 그즈음 해서 본 바로 이 영화 <워 독>을 바로 떠올리게 했는데 - 레바논의 항구도시 '베이루트'에서 창고에 오랫동안 방치해두던 질산암모늄이라는 물질이 발화되어 몇백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뉴스가 들려오던 초기에는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테러가 아닌가 다들 의심했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보니 테러는 아니었고 관리가 허술했던 탓으로 약 7년간이나 이 위험한 화학물질이 항구의 창고에 무방비로 보관된 것이 배경이었다. <워 독>을 떠올린 것은 이 질산암모늄이라는 물질이 비료의 원료가 되기도 하지만, 폭발물의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는 기사 때문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지구의 어느 한쪽에서는 상시적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왔고 영화 속 에프라임의 말마따나,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미군 병사 한 명당 일정액의 군사장비와 무기를 계속해서 소비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막대한 액수의 무기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기는 세계 이곳 저것에서 계속 생산되고, 이 무기가 필요에 따라 육로로, 해상으로 나라에서 나라로 이동하며 판매된다. 당연히 이 사업에 기생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게 될 때쯤이면, <행오버>와 <워 독>에 이어 3년 후 <조커>가 탄생하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법하다. <행오버> 시리즈와 <듀 데이트>(역시 토드 필립스 감독으로 아이언맨 로다쥬와 조나 힐이 주연)의 '조나 힐'이 주연으로 나와서 이 감독만이 가진 병맛 코미디를 펼치나 싶다가도, 펜타곤이 얽힌 무기 매매 세계의 실화를 다뤘다는 부분에선 매우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느껴지니까 말이다.
사실 <워 독>의 강한 매력은 이 영화가 실화 바탕이라는 데 있다. screenrant.com 사이트의 기사에 의하면,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실이고 디테일도 잘 살아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처음 알려진 것은 <롤링스톤>지에서 기사로 다뤄지면서인데, 가이 로슨이라는 사람이 쓴 이 기사가 나중에 <Arms and the Dudes>라는 책으로 발간되고, 이것이 토드 필립스 영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데이비드와 에프라임은 영화에서처럼 절친한 고교 동창은 아니고 에프라임은 19살, 데이비드가 23살이었고 절친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사람이 무기 매매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사업이 성장한 것은 맞지만, 영화에서처럼 직접 트럭을 몰고 이라크 우범지대를 지나는 등의 모험 같은 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헨리 지라드의 존재도 허구이고 헨리로부터 권총으로 목숨을 위협당하는 등의 일도 영화적 재미를 위해 집어넣은 드라마적 요소라고 한다.
영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액션 등의 요소를 추가하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 같다.
진짜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비드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실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영화 촬영 현장에도 와서 디테일을 확인하며 영화 제작에도 관여를 했던 반면, 에프라임은 워너브라더스에 자신의 아이템을 도용했다는 식으로 소송을 걸고 SNS상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 대립하느라 매우 바쁜 모양이다. 당연히 데이비드와 에프라임 사이에서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워 독>이 감독의 다음 작품인 <조커>로 이행하는 데 이해를 조금은 돕는다고 쳐도 자연스럽고 예상되는 필모그래피는 아닌 건 사실이다. 영화를 볼 때 감독의 전작들을 같이 찾아보는 경우가 많지만, 늘 언제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들이 영화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오히려 <조커>에 관해서만은 토드 필립스보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분석이 될 것이다.
어찌 됐든 <행오버>든 <조커>든, 토드 필립스의 능력을 감탄하기에는 다 좋다. 심지어 토드 필립스의 필모그래피에는 <스타스키와 허치> <로드트립>도 있다. <조커>를 넘어서는 앞으로의 토드 필립스, 과연 어떤 영화로 찾아올까? 안 그래도 힘든 세상, <조커> 같은 묵직한 영화도 좋지만 웰메이드 병맛에 시원하게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