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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Mar 25. 2019

왜 한국에 돌아오셨어요?

입조선?

6년간의 실리콘밸리 생활, 그리고 2년간의 디지털 노마딩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일시적으로' 정착한 내가 가끔씩 받는 질문이다. 왜 한국으로 돌아오셨냐고.


이건 아니고...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모든게 만족스러운건 당연히 아니었다. 높은 물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생각보다 너무 작은 도시, 그 와중에 꼴에(!) 대도시라고 중심부는 거지 같은 치안, 그리고 뭔지 모르겠는데 기에 눌리는 이 느낌. 평생을 적당히 좋은 학교 나온 비장애인 이성애자 한국 남성으로서 갑으로만 살다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을로, 이방인으로, 마이너리티로 살게 되서 느낀 것이었으리라.


마음 한켠에 그런 생각도 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오느라 한국 직장 생활을 제대로 안 해봐서, 그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지금의 행복을 모르는 것이라고, 관계에 치이는 한국을 벗어나 있어서 복에 겨워 이러는 것이라고. 


*


그래도 한국으로 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외국인 학생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간신히 신분 상승(?)을 이룬 후에도, 언제든 짤리면 추방되는 외노자 상태로 4년을 일했고, 그 뒤에 간신히 영주권을 받아 노비 문서를 소각 할 수 있었다. 노비 문서 소각 후에도, 영주권이라는 녀석이 받고 뒤에 끝이 아니라 유지도 녹록치 않다는 것, 그리고 한번 잃으면 두번 다시 미국이란 나라와 인연을 맺기 어렵게 된다는 점도 고민거리였다. 어떻게 얻은 자유민의 증표인데.


이래저래, 좋은 기회가 생겨 싱가폴과 한국을 저울질하다가 1순위였던 싱가폴 대신 2순위였던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으로 오면서 한국의 개발 문화, 위계 서열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기에 내가 적응 할 수 있을까?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적어도 이쪽 업계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기는 했다. 그래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나름 열심히 찾아 좋은 기회를 잡아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결론적으로, 나의 첫 시도는 성공으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한 직장에 3년 정도씩은 꼬박 있었는데 한국으로 들어온 첫 직장에서는 5개월 반만에 퇴사를 했다. 딱 누구의 또는 어디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와 맞지 않는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내부에서 변화를 만들어 보려고 했었고, 그것이 잘되지 않음이 확인 된 후에는 조직과 나 둘 모두를 위해서는 퇴사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왔었다. 


환경에 맞는 방법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환경에서도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한다면 실행해보고, 실험해보고, 결과에서 배워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드는데 하나의 노력이 되고 싶다. 내가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도 여기에 달려있기도 하다.


*


한국도 충분히 살기 좋은 나라다. 미국보다 더 살기 좋지는 못하더라도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살 정도" 까지는 아니길, 적어도 나 개인에게는 그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로 실험해보고 있다. 불안한 치안, 언제 총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들, 잘 알지 못하면 크게 망할 수 있는 의료 보험과 의료 시스템, 언어 장벽, 문화 장벽, 마이너리티로서의 삶 ... 이것들을 감내하고도 미국 삶이 더 좋다는 것은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가지고 하는 실험이자 A/B testing 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실험의 끝에는 어떤 결론을 가지고 언제쯤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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