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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Feb 02. 2018

호놀눌루에서의 황금기

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지난번 호스트와 에어비엔비 고객센터 덕에 아주 고생을 한 이후, 새로 들어온 숙소는 아주 좋다. 일본인 모자가 관리하는 여러 숙소 중에 하나인데 내부 시설은 약간 낡았으나 뷰가 모든 것을 커버한다. 침실에서는 디아이몬드 헤드가, 거실에서는 와이키키 비치와 시내가 44층에서 내려다보이고, 시야를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매일이 꿈 같아서 이 집과 와이키키를 1주일 더 연장했다.




일단 집에서 와이파이가 되기 시작하니까 (... 아오 ...) 세상 살만하다. 지난 2주 동안 일 할 때마다 어디가지, 미팅은 어디서 하지, VPN 접속 안되면 어쩌지 같은 비생산적인 고민하면서 낭비를 하다가, 집에서 와이키키나 다이어몬드 헤드 내려다보면서 일을 하니까 새삼 아름답다. 


미팅도 집에서 잘 하고 있고, 와이키키 해변도 근처의 레스토랑들도 걸어갈 거리라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유명한 마루카메 우동도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식사를 하는지라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우동을 먹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옵션이 되었다. 일본에서나 보던 탱글탱글한 면으로 만든 우동을 4천원에서부터 먹을 수 있다. 


1인당 $10 정도 예산이면 매우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 싱가폴, 서울 등 아시아를 선호했던 이유가 안전한 치안과 깨끗함이 기본이었는데 하와이는 일본과 미국의 좋은 것들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분위기다. 위에 언급한 세 나라 이외에 내가 이렇게 치안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낮이든 밤이든 돌아다녀본 적이 없다. 샌프란에서도 뉴욕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


와이키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할 때는 자리를 잡고 소지품을 두고 나가야하는데, 약간 신경을 쓰기는 하지만 한번도 없어지거나 한 적이 없다. 날씨도 좋고, 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이 많아 한/중/일 마켓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반쯤 일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편의점은 일본 편의점 같고, 일본 엔화도 받는다. 어느 레스토랑을 들어가도 평타 이상을 치고, 잘 골라서 다니면 크게 비싸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돈까쓰, 포케, 우동을 주식으로 저녁에는 이자까야에서 생맥주 한잔씩 마시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와이키키 근처의 Maguro Poke :)




미국 서부 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나한테 최적의 시차를 제공한다. 하와이의 경우 미국 서부보다 2시간이 빠른데 보통 아침 9-10시쯤 엔지니어들이 일을 시작하고, 5-6시쯤 퇴근을 하니 나는 하와이에서 아침 8시쯤 일을 시작해서 오후 4시쯤 일을 끝낸다. 오후 4시면 아직도 해가 쨍쨍 떠 있을때라 퇴근하고 바로 와이키키 해변에 가서 물놀이도 할 수 있고, 서핑 보드를 빌려서 신선놀음을 할 수도 있다.


햇살 좋은 와이키키. 물이 차긴하다.


물놀이를 하고 나서도 천천히 저녁을 먹고, 나가서 맥주 한잔하고 들어와서 한숨 푹자면 다음 날. 업무 자체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지 못한 요즘이었는데 최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하다보니 변화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좀처럼 꺼내질 못하고 있다. 지금이 너무 좋다. 




하와이에 아예 살면 아마 도시의 크기에서 오는 문화적인 아쉬움이 다가오지 싶은데, 6개월 정도 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와이키키의 뒷편에는 넓은 운동장에서 저녁때면 조명을 환하게 켜놓고 축구를 하는 무리가 있는데 운동하기에도 참 좋은 동네다. 이 곳의 물가를 감당 할 좋은 일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처럼 서부의 연봉으로 와이키키에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선택이지 싶다. 미국과 일본의 장점을 섞어놓은 이 곳. 자연과 도시가 절묘하게 섞여있어서 불편함 없이 모든 것들을 하면서도 자연에 가까이 있는 삶. 


하와이, 너무 좋다. 숙소 때문에 고생을 한번하고 난 뒤에 말 그대로의 호시절을 보내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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