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르는 뇌 - 노먼 도이지
시각을 위해서 눈이,
혹은 청각을 위해서 귀가,
미각을 위해서 혀가,
후각을 위해서 코가 반드시 필요한가?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나의 뇌를 '잘 쓰고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뇌'라는게 단순한 장기를 넘어 신비한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다른 장기와 다르게 내가 훈련만 한다면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장기로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성장할 수 있는 다른 장기도 있겠지만)
항상 뇌과학 관련 책을 읽을때면 내가 몰랐던 뇌의 신비함을 알게되어서 즐겁고 흥미진진하다.
(내 리디북스 설정 기준으로) 보통 책을 읽을 때 300~500페이지는 적당하고 900~1000이 넘어가면 오우 좀 긴데? 하는 편인데, <기적을 부르는 뇌>는 약 2300페이지로 나를 압도했다.
1/4정도 읽었는데, 이때까지 내가 읽었던 다른 뇌과학 책들과는 확실히 다른게 느껴지고 정말 좋은 내용이 많아서 나눠서 읽고 기록하는 과정을 반복해보려고 한다.
이 책은 가소성(plasticity)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신경계의 구조는 환경, 경험, 신체상태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계의 이런 유연한 성질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가소성(可塑性, 塑= 빚을 소)은 신경계의 가장 놀랍고도 두드러진 특징이며, 신경계는 죽을 때까지 유연한 변화를 계속한다.
http://scienceon.hani.co.kr/425649
뇌의 특정 부분(위치)이 특정 기능을 담당한다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좌뇌->논리 / 우뇌->예술적 직관같은.. )
뇌가 복잡한 기계처럼 부품들로 이루어져있고, 각 부품은 특정한 정신적 기능을 수행하며 유전적으로 미리 결정되거나 배선된 위치(location)에 존재한다는 생각
특정 위치(location) -> 특정 기능때문에 위 개념은 국재(localization)로 불린다.
꽤 오랜시간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망가지면 해당 기능을 사용하기 힘들다.'를 주장하는 국재론이 정석인것 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책은 '사람의 뇌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 (==가소성이 있다)'를 주장하며 국재론을 반박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다섯가지 감각(오감)은 시각·청각·미각·촉각·후각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을수 있고, 맛을 느낄 수 있고, 피부로 뭔가를 느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 감각들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불편함을 느낄것이다.
1장에서는 우리가 잃기전에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감각인 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도 매끄럽게 작동하는 감각인 탓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한 오감 목록에 들어가지 못한 채로 수세 동안 간과되었다.
우리가 제대로 땅을 느끼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이유는 귀에 있는 전정기관이 뇌로 신호를 보내고 뇌는 그 신호를 받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국재론에 따르면,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망가지면 똑바로 걸을 수 없으며 '그 부분' 뇌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회복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하지만 책에서는 뇌의 가소성을 이용해 전정기관이 망가진 사람이 똑바로 균형을 느끼도록 고친 사례가 소개된다.
'뇌의 언어는 '전기적 패턴이다'를 소개하는 부분이 특히나 흥미로웠다.
'눈이 있기때문에 본다'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며 눈은 단지 빛 에너지의 변화를 감지할 뿐 지각하고 실제로 '보는 일'은 뇌가한다.
우리의 모든 감각수용체는 외부 세계로부터 오는 에너지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간에 모두 전기적 패턴으로 변환해서 신경에 내려보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청년기에 이르면 뇌 안에서 대량의 '가지치기' 작업이 시작되면서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시냅스 연결과 뉴런들이 갑작스럽게 죽어 없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죽은 뇌도 훈련을 통해 다시 성장시킬 수 있다.
훈련 -> 뉴런들간 가지수 증가 -> 가지 숫자가 더 많아진 뉴런은 더 멀리 뻗어감 -> 뇌의 부피와 두께 증가
아인슈타인의 뇌 크기가 남달랐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학습을 하면 아는것이 많아지는 것이 분명. 그러나 우리가 뇌 그 자체의 구조를 변화시켜서 뇌의 학습 용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실제로 대뇌피질은 각각의 당면한 과제에 맞도록 처리 용량을 선택적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학습하는 법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제니치가 묘사하는 뇌는 우리가 채워 넣는 생명 없는 그릇이 아니라, 생리적 욕구가 있고 적절한 영양 공급과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에 더 가깝다.
이 말에 정말 공감하는데, 그래서 위에서 말했다시피 뇌를 더 잘쓰고 싶다는 욕구가 뿜뿜하는 것 같다.
'나'라는 생명체에 지금의 컴퓨터와는 비교조차가 안될정도로 너무나도 성능이 좋은 생명체가 있는데 제대로 이용을 못하는 느낌..
우리가 정신적 기술의 훈련을 멈추면, 우리는 그것을 잃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곧 그 기술을 위한 뇌 지도 공간이 우리가 그 기술 대신에 연습하는 다른 기술에게로 넘어간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불어나 기타 연주나 수학 실력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면 얼마나 자주 연습을 해야할까?"하고 질문할 때, 이는 사실상 경쟁적인 가소성에 관해 묻고있는 것이다.
그 질문은 한 활동의 뇌 지도 공간을 다른 활동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얼마나 자주 그 활동을 연습해야하는지를 묻고있는 것이다.
이 챕터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뇌를 메모리공간 같은거로 생각하고 계속 정보들을 '저장'하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가소성의 측면에서 설명해줘서 신선했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국어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모국어는 우리의 언어 지도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모국어의 독재를 종식시키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의 뇌가 가소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소성이 경쟁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틈틈이 중국어를 공부중이라 더 인상깊게 읽었다. 그래서 내 중국어 실력이..!!
물론 내 중국어가 너무 약해서 ==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영역을 넓히지 못하는거겠지만 말이다 ㅎㅎ..
경쟁적인 가소성은 우리가 나쁜 습관을 깨거나 '탈학습'을 하기가 어째서 그토록 힘든지도 설명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뇌를 하나의 그릇으로 생각하고, 학습은 그 안에 무언가를 넣는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나의 나쁜 습관을 깨고자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그 그릇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넣는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쁜 습관을 배울 때 그 습관은 하나의 뇌 지도를 넘겨받으며 그 지도를 더 세게 움켜지게돼서 '좋은' 습관이 그 공간을 사용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것이 바로 '탈학습'이 종종 학습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이유이고, 조기 교육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나쁜 습관'이 경쟁에서 이점을 얻기전에 일찍 바로잡는 것이 최선이다.
위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조기교육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린아이들이 2개국어에 노출되었을 때 어른보다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이유도 나온다. 궁금하면 따로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뇌에는 임계기가 있고 이때의 뇌는 너무나도 가소적이어서 그저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되는것!
또 신기했던게..(읽으면 신기한 사실이 정말 많다)
내 손(손가락 포함)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있을텐데, 나는 좀 뭉뚱그려서 손 영역 이런식으로 있지 않을까 했다.
근데, 각 손가락 마다 뇌 지도가 그려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기서 내 손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있다 < 라는 것이 뇌 가소성보다는 국재론에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설명을 좀 하자면..
국재론은 특정 뇌 영역 => 특정 기능. 즉 그 뇌가 손상되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느낌이면 가소성은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정 기능을 수행할 때(단순히 손가락을 움직힐 때) 활성화 되는 뇌 영역이 있고 이것이 뇌 지도이다. 이 부분이 망가져도 뇌는 다른 영역에서 다시 뇌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마다 지도가 따로 그려진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는데, 중지의 지도는 검지의 지도와 약지의 지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는것도 놀라웠다.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두 뉴런이 반복적으로 동시에 발화하면 양쪽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둘이 더 강하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따로 발화하는 뉴런들은 따로 배선되며, 동조하지 않는 뉴런들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실험으로 원숭이의 두 손가락을 꿰매서 한손가락처럼 움직이게 했더니 원래 분리되어있던 뇌 지도가 하나의 지도로 합쳐져있었다는 것이다! 두 손가락의 어느 부위를 건들이든지간에 새로운 단일 지도가 발화했다. 만약 이 꿰맨 손가락을 다시 푼다면 이 단일지도는 두개로 분리될것이다.
여기서도 뇌의 효율성을 느낄 수 있다. 신호를 더 멀리 보낼필요 없이 가까이에 지도를 그리면 되는것이다.
중지의 지도가 검지, 약지 지도 사이에 있는것처럼 이렇게 뇌 지도에서 지형학적 순서가 나타나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두 뉴런이 (거의) 동시에 발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일상 활동의 많은 부분이 연속 동작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과나 야구공 크기의 물건을 집어들 때, 우리는 보통 먼저 엄지와 검지로 쥔 다음 나머지 손가락을 한손가락씩 그 주위로 감싼다. 엄지와 검지는 거의 동시에 닿는 경우가 많으므로, 손가락에서 뇌로 보내는 신호도 거의 같이 도착해서, 엄지의 지도와 검지의 지도는 뇌에서 서로 가까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뇌지도들은 함께 일어나는 사건들을 공간적으로 함께 묶어서 처리한다고 한다.
Q : 뇌 지도 공간 안부족해?
A : 위에서 말했듯이 안쓰이는 지도들은 새로운 기능들을 위해 쓰이게 되며, 우리가 처음배우는 기술들에는 엄청나게 많은 뉴런이 쓰였다가 그것이 반복되면 그 기술에 알맞는 소수의 뉴런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
또한 성인이 되어 이미 닫혀버린 임계기를 다시 여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나오는데, 뭔가 특별한(?)방법이 있나!! 했는데 높은 주의 집중을 요구하는 어떤것이든 해라..였다.
- 새로운 신체 활동
- 난해한 수수께끼 풀기
- 새로운 기술과 내용을 숙달해야하는 직업 전환 등..
1. 나이를 먹어가면서 강도 높은 학습을 무시하면 가소성을 조절하는 뇌 안의 체계가 노쇠함.
2.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이유 중 하나도 우리가 새로운 사건을 신경계안에 기록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
3. 무언가를 분명하게 기록하지 못하면 우리는 잘 기억하지도 못함
4. 뇌에 잡음이 많으면 뇌에 혼잡스러운 전기 활동이 너무 많아져서 새로운 기억을 위한 신호가 이에 대항할 수 없음
4-1. 잡음이 더 많아지는 이유 - 모든것이 점차 죽어버리기 때문 + 뇌를 적절하게 훈련하지 않고 있기 때문
5. 우리는 취직 초창기에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습득하고, 살아가면서 점점 더 숙달된 기술과 능력을 운영하기만 한다. 스스로를 속이며 자신이 예전에 하듯이 학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6. 신문을 읽고, 여러 해 동안 한 직업에 종사하고, 모국어를 말하는 것과 같은 활동들은 대개 숙달된 기술의 재연이지 학습이 아님.
핵심은 정신이 살아있도록 하려면 진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강도 높게 집중해서 학습하는것이 필요하다.
젊은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늙은 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진짜 신박했던게 있었는데,
노인들이 균형을 잃고 잘 넘어지고 움직임이 힘든 이유가 특정 뇌의 기능이 감퇴하기 때문이다. 이는 #1에서 이야기한 전정기관이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발에서 되돌아오는 감각의 감소때문에 감퇴가 일어난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 우리가 수십년 동안 신어온 신발은 발에서 뇌로 되돌아가는 감각을 제한한다.
2. 신발은 자극을 분산하는 비교적 평평한 발판이며, 우리가 걷는 표면은 점점 더 인공적으로 평평해지고 있음.
3. 발의 지도가 세분화되지 않는다.
4. 균형을 잡으려고 지팡이, 보행 보조기, 목발 등 다른 감각에 의존
5. 이 특정 뇌의 기능의 감퇴를 재촉한다.
--> 해결
우리가 맨발로 다닌다면, 뇌는 우리가 울퉁불퉁한 표면을 건너갈 때 다양한 종류의 많은 입력을 받을 것이다.
발의 감각 지도가 세분화되고 발달시킬 수 있음.
만약 내가 늙는다면 보조기구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걷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맨발 걷기가 정말 좋다!! 를 들었는데 그때는 야매;; 같이 느껴졌는데, 이렇게 과학적인 근거로 들으니까 흥미가 생긴다. (맨발 걷기가 안좋을건 없지만, 외부에는 벌레나 진드기같은것도 많으니 조심해야한다)
예전에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읽었었는데, 간단히 뇌 과학자가 뇌졸중에 걸리고 훈련을 통해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독후감을 발행한 줄 알았는데 쓰다 멈췄었네..)
이 분도 재활하실 때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신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어머니가 다 해주는게 아니라 이 뇌 과학자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훈련을 해서 정상적인 뇌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쓰다 만 독후감의의 일부를 빌려오자면
어머니는 처음부터 내게 주관식 질문을 했고, '예, 아니요'같은 단답식 질문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읽었을 때 짝꿍에게 내가 뇌졸중에 걸리면 나를 훈련시켜라!!!! 라고 했는데, 이 <기적을 부르는 뇌> 를 읽고 정말 한번 더 다짐하게 된다.
나를 계속 훈련시키면 어떻게든 뇌는 방법을 찾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