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너무 마음 쓰지 마라고.
오늘도 아이들은 샤워를 하고 나와 정신없이 장난을 치다 엄마가 꺼내놓은 팬티를 바꿔 입은지도 모른다. 큰아이 엉덩이에 꼭 끼어있는 작은 아이 팬티를 보고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팬티야, 너는 무슨 잘못이길래 큰아이 똥꼬에 끼어있니.
4년 전쯤에 찜질방을 가보고 싶다는 큰아이의 바람대로 난생처음 우리는 찜질방을 갔다. 아이들 크기에 맞는 옷을 골라 손에 쥐어주며, 엄마는 탈의실에 같이 들어갈 수 없으니 둘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나와야 하는지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을 설명하고 그것도 부족해 탈의실에 들어가는 아이들 뒤통수에 대고 몇 번을 외쳐댔다.
사별 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감정적인 측면보다 현실적인 ‘일손’의 부족함이었다. 한참 장난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는 만 7세와 5세 형제를 감당하는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창조주가 세상을 남녀로 구분하여 창조를 한 것이 정말 이유가 있으시네요라고 빈정거리고 싶어질 만큼 집안에 남자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불편함보다 가족이라는 완전체에 대한 갈증으로 다가왔다.
4시간이 넘는 귀향길의 운전에도 아이들이 차 안에서 사고를 치고 화장실을 외쳐될 때면, 사고가 안나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차속은 전쟁터였다. 잠든 작은 아이를 안고 한 손에 짐을 끙끙거릴 때면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 눌러줄 손하나가 그렇게 아쉬웠다.
이혼가정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는 요즘 세상에 여자 혼자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져 살더라도 비상시에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는 가족 하나가 어딘가에 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별가정엔 부러움의 대상인 것은 맞다.
위궤양으로 응급실을 갔던 새벽엔, 두 아이까지 열이 나고 토했던 밤이라 나는 처음으로 일종의 심신의 위기상태를 경험했다. 초저녁부터 구토를 시작했던 그날은 결국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심한 복통이 찾아와 나는 잠든 아이들 열을 재며 휴대폰의 연락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나갔다. 새벽 3시에 누구에게 아이들을 부탁해야 미안하지 않을까. 몇 번을 망설이다 밤샘 작업이 일상이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까지 동원해 아이들을 보고 나는 친구와 응급실을 갔다가 아침에 돌아왔다. 그날의 사건은 몸보다 마음에 새겨서 한동안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아픈 엄마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비상연락망 1,2,3번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어른의 연락처도 적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겐 아이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전화가 오면 꼭 받아줄 것을 당부했다.
그 당시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쉬웠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엄마 때문에 5살부터 시작했던 장거리 자전거 소풍이 무기한 정지된 것이 마음이 아팠고, 같이 하기엔 민망한 목욕이 아쉬웠고, 앞으로 엄마라서 가르쳐주지 못할 많은 것들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더 보호적이 되었고, 가족단위 행사를 피하는 등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심 끝에 거의 처음 시도한 것이 바로 그날의 찜질방이었던 것이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먼저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 입구에서 기다리던 나는 안달이 났다. 제대로 찾아 나올런지, 장난치다 위험한 곳에서 넘어지진 않을는지, 다른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지는 않을는지 안절부절.
한참을 기다려서 나온 아이들은 큰아이가 작은아이의 찜질방 옷을 입어 배꼽이 나오고 바지는 역시 너무 작아 똥꼬에 끼어있었다.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두 아이는 장난을 치며 너무 해맑게 나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어 나는 막 웃음이 터졌다. 손가락으로 큰 아이를 가리키며 고개를 뒤로 넘겨가며 껄껄껄 웃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웃다가, 어이없게도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척 당황하더니 이내 작은 아이가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았다.
엄마. 우리가 너무 늦게 나와서 화났어?
나는 펑펑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대답했다.
아니 너무 귀여워서.
작은 아이는 나를 안은 손을 더 세게 안으며
그래도 창피하니까 여기서 울지는 마 라고 하더라고. 야야 니들 복장이 더 창피해 이 자식들아.
문득 오늘 다시 큰아이 똥꼬에 낀 작은 아이 팬티를 보니 몇 년 전 그날의 가슴 시린 애달픔이 떠오른다.
그 작은 아이들이 이젠 엄마보다 훌쩍 커져 높은 곳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주며 제법 생색을 낸다.
많이 컸어 내 아들.
덧,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아주 조금 편해집니다. 아무리 애써도 두 사람 몫을 못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고 서러웠던 몇 년이 지나 이제 제법 세 식구 위기상황들도 매뉴얼대로 잘 넘깁니다. 아이들이 커가면 몸은 더 편해진 만큼 돈이 더 든다던 육아 선배들의 말이 맞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