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그 세 글자에 무척이나 인색하게 살았어.
한 번 입 밖으로 뱉어내는 순간부터.
내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전히 나를 다 내어줘야 비로소 의미 있는 이 한마디가.
마치.
"잘 잤어? ".
"여보세요? ".
"안녕 ".
"잘 자 ".
처럼.
하루를 살며 늘 습관처럼 툭 튀어나오는.
그렇게 아무 의미도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상의 말로 변이 되고.
듣는 누구에게도 어떤 가슴 울림도 전해주지 않는.
그런 말이 될까 두려워서 감히 쉽게 내뱉지 못했어.
그리고 두 아이가 서 있네. 바로 내 앞에. 때론 내 뒤에.
나라는 우주의 먼지에게 이 두 먼지가.
무슨 인연인지 나에게 왔어.
소위 '자연분만'이라는 아찔한 순간에.
뇌에선 도파민인지 아드레날린인지 이름도 모를 흥분에 관여하는 호르몬들이 죄다 넘쳐나는 그 와중에도.
아직 살색을 띠지도 않은 이 두 아이에게.
"사랑해".
그 한마디가 어떤 두려움이나 여과과정도 없이 수 없이 튀어나왔어.
그렇게 10년을 넘게.
내 입에서 새어 나오는 사랑해 는.
눈을 떠서 마주치는 순간부터 가슴에 품고 등을 어르며 같이 잠이 드는 순간까지. 아니 잠이 든 말랑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도 한참을.
그렇게 샐 수도 없을 만큼 반복돼.
.
두 아이는 심지어 사랑해라는 말에.
"발가락도 사랑해".
"머리카락도 사랑해".
"똥꼬도 사랑해".
라는 민망한 목적어까지 바꿔가며.
11년 동안, 9년 동안 무던히도 귀로 듣고 뇌에 넣어 써먹을 기회를 노리던 수식어를 모두 붙여가며 나에게 거침없이 말을 해.
그 눈빛엔 두려움도 없고.
그저 그냥 이 순간이 너무 좋은 거지.
그저 그냥 같이 하는 이 순간이 두 아이에겐 영원인 거지.
사랑해 이 한마디에 더 이상 인색하게 굴지 않아.
이젠 적어도 그 말이 참는다고 뱉어지지 않는 말이 아닌 걸 알 것 같거든. 아니 아직 모르는 것 같기도.
근데 그거 알아?.
진짜 사랑하면 말이야.
나에게서 나오는 사랑해 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나만큼인지 아닌지.
그건 더 이상 상관없단 뜻이야.
그리고 두 아이가 서있네.
오늘은 꾸중을 잔뜩 받고 벽에 붙어 손을 들고.
더 큰 아이는 울먹이며, 작은 아이는 나를 같잖지만 무섭게 째려보며 (무서운 척해줘야 해. 그렇지 않음 삐지거든. 날 닮아 그래).
손을 내리고 사랑해하며 안아주니.
나를 꼭 닮은 작은 아이는.
"나는 하나도 안 사랑해".
라고 큰 소리로 또박거리며 못 이기는 척 품에 들어오긴 하지 (내가 아쉬운 척해줘야 해. 그렇지 않음 삐지거든. 이것도 날 닮아 그래).
"상관없다 이 자식아.
난 셀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 이 자식아".
.
그러면서 조금 삐지는 소심한 내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가까운 말.
오늘도 사랑해.
- 사리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나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리고 사린 마음을 내미는 것 만큼 아쉬운 일은 또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