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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e Oct 07. 2018

사과

처음 너를 우리 엄마에게 소개시켜주려 집으로 불렀던 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 자리가 어려웠던 건 너 뿐만이 아니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것도 너 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가 너를 맘에 들어하길 바랐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에는 못 미치더라도, 우리의 만남을 응원해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네가 오지 않자 '얘는 왜 이렇게 안오는 거야' 하며 툴툴거렸다. 정작 엄마는 괜찮다고 좀 기다리라고 했는데도 내가 조바심이 났고, 다른 누군가가 네 욕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5분이 지나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네가 내민 것은 사과 세알이었다. 빈손으로 오면 안될 것 같은데 무엇을 살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늦게 되었다며. 엄마는 그럴 필요 없었다고 하면서도 은근 귀여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흘깃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식사가 시작됐고, 서로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을텐데도 생각보다는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심지어는 핸드폰을 꺼내어 내 어릴적 굴욕의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너는 물론 재미있어 했고, 중간에 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하다가 결국엔 다같이 웃어버렸다.


식사가 끝나고 그 다음은 네가 사온 사과를 먹을 차례였다. 다른 과일도 있었지만 엄마는 사온 건데 먹어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과를 씻으면서 보니 유기농 마크가 붙어있었다. 이 사과 세 알을 사는데도 너는 머리를 얼마나 썼을까 하니 기특해서 웃음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과를 까다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엄청 허벅거리고 갈색으로 조금 상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평소의 나였더라면 한 입 베어물고는 '못 먹겠다'하고 쳐다도 보지 않았을, 그런 사과였다. 하지만 나는 하나를 먹고, 두개를 먹고, 세개를 먹었다. 군말 없이, 사과를 입으로 가져갔다. 먹다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계속 먹었다.


네가 돌아간 후, 엄마는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너가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하나보다' 하셨다. 내가 딱히 네 편을 든 적도 없었고, 애정표현을 한 적은 더더욱 없었는데도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아신 건지, 신기하고 의아했다.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평소라면 입에도 안 댈 사과를 내가 몇개씩이나 계속 먹는데 어떻게 몰랐겠냐며 나를 한참 놀리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혹시라도 네가 무안해지지는 않을까. 그러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사과를 맛있다는 듯 계속해서 먹었다. 그런 마음을 들킨 게 부끄러워 엄마에게는 '진짜 먹을만 했다, 눈 앞에 있으니 먹게 되더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소용없을 거란 걸 알았다. 


나는 그 날 네가 사온 사과를 먹으며 '사람이 사랑하면 변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평소에 조금 까탈스러운 사람도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며 나름의 배려라는 걸 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그 뒤로는 허벅거리는 사과를 먹을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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