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 초인 (Feat, 초인가족)

by 글레디에디터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은 큰 삶의 변화나 각오가 없다면, 분명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특별한 ‘꿈’을 가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 ‘회사’라는 곳에 취업을 하게 된다.


이것은 ‘평범’을 꿈꿨던 모든 사람들의 삶의 항로였다. 대학을 졸업한다. 회사에 취직한다. 회사는 도심에 20층 이상의 건물이고, 목에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사원증이 거는 것 말이다. 2010년대 이후 현실은 다르다. 취업 시장에서 선택받은 이들만이 그런 너무 '평범'해 식상해 보였던 삶을 살아낸다.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 흔한 광경은 이제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트콤의 계보는 <하이킥> 시리즈의 성공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이킥의 반격 이후 두, 세 편의 시트콤이 만들어졌다. 물론 망했다.)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약자인 시트콤은 그 모든 문학 중에 쓰기 가장 어렵기에 극한의 난도를 자랑한다.


하나의 에피소드마다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사회 비판을 해야 한다. 상황극을 통해 담아내고, 그 속에는 눈물과 웃음을 적절히 버무려야 한다. 이것들을 30분 내외의 한 에피소드에서 모두 담아야 하는 시트콤은 그야말로 시대와 세대의 코드를 모두 숙지해야만 하며, 그 속에서 하나의 코드를 선택해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시트콤이 사라진 이유는 다양한 사회 현상이 있다. 그중 시트콤 제작에 가장 큰 직격탄을 날린 것은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살기 팍팍해진 것에 기인한다.


그로 인해 사회 자체에 웃음 코드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잘못된 웃음 코드는 자칫하면 타인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정 계급의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트콤들의 제작을 방송사 측에서는 쉽게 제작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작동해서다. 웰메이드 시트콤 또한 시청률 대박은커녕, 끽해야 본전, 못 만들면 쪽박 차기 쉬운 콘텐츠, 그것이 바로 시트콤이다.


미생의 시트콤 버전, <초인가족>


<도룡농도사와 그림자 조작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트콤 이후 5년 만에 제작된 SBS <초인가족>은 가장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시트콤이다.


한 집안의 가장인 나천일(박혁권)은 도레미 주류 영업팀의 만년 과장이다. 그의 아내 맹라연(박선영)은 전업주부이고, 하나뿐인 딸 나익희(김지민)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중학교 2학년생이다.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천일의 회사와 라연의 가족, 익희의 학교를 배경으로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천일이라든가, 라연의 방백은 연극적인 요소로서 독자와의 친밀도를 높이며, <초인가족>이 정극이 아닌 시트콤임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다. 뿐만 아니라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극 안에서 TV 뉴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냉담하고 팍팍한 현실을 알려준다.


최근 이런 사회 문제를 풍자와 해학을 담은 드라마들이 다양한 형태로 제작, 방영되고 있다. <쌈마이웨이>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김과장> 또한 거대 기업의 부패와 싸우는 일개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냈다. <쌈마이웨이>나 <김과장> 이 둘 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판타지적 요소와 시트콤적 요소를 혼합한 것이다. 그러나 <쌈마이웨이>나 <김과장>과 달리 <초인가족>은 판타지적 요소를 줄이고, 시트콤적 요소가 조금 더 많이 함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에 대한 풍자도 <초인가족>쪽이 앞선 드라마들보다 농도 자체가 훨씬 더 짙게 배어 있으며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강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초인가족>은 시트콤이 추구하는 가족애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의 '상황'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초인가족>을 즐겁게 보았던 2017년은 웰메이드 드라마의 풍년이었다. 이제 곧 시즌2를 방영하는 <비밀의숲>도 2017년 작품이며, tvN과 더불어 명품 드라마 왕국으로의 초석들을 닦은 JTBC 의 <품위있는그녀>도 2017년 작품이다.


아울러 애정해 마지않는 박경수 작가의 <귓속말>도 해당년에 나왔다. 2017년 당시 개인적으로 최고의 드라마를 뽑으라면 여전히 <초인가족>이다.


그 이유는 앞선 드라마들이 '비범'한 내용을 바탕으로 '평범'한 목적에 도달하는 알고리즘을 취했지만, <초인가족>은 지극히 식상할 수 있는 '평범'한 소재와 주제를 바탕으로 가장 '비범'한 진리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초인가족을 즐겨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나천일이 사표를 던지는 장면이다. 15년 동안 근속했던 도레미주류를 떠나며 나천일은 비아냥거리는 동료에게 읊조린다.


"우물인 줄 알았는데 무덤이더라. 그래서 안 하려고. 그만하려고."


그 한 마디를 한 후 회사 밖으로 나온 나천일의 무릎이 휘청거린다. 배경음악으로는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가 흐른다. 퇴근하겠다는 한 마디. 직장인에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회사에서 그 힘겨운 하루를 우리는 견뎌낸다.


나는 그 퇴근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퇴근을 위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며 터벅터벅 회사를 나서는 발걸음이 싫었다. 그 후 나는 지금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제한적으로 회사에 속해 있다.


그래서일까. 저녁 즈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면, 회사원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괜스레 사람들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다.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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