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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2 : 런던대공습, 8분의 오차

독일 루프트바페 B-uhr

by Zait


1940년8월24일 밤, 길을 잃은 독일 폭격기 하인켈 He-111 몇 대가 런던을 폭격합니다.


당시 히틀러는 영국 상륙(바다사자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영국의 생산시설과 군사시설을 폭격하고 있었지만, 영국의 항복과 평화협상 등 여러 가지 정치외교적 목적을 고려하여 런던에 대한 폭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간비행에 짙은 구름과 바람으로 인해 항법 오류를 일으킨 폭격기 몇 대가 당초 목표물을 지나쳐 런던에 접근하자 갑자기 대공포 공격이 시작되었고, 이들은 급히 폭탄을 투하한 뒤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폭탄은 런던 도심에 떨어져 9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합니다.


다음 날 아침, 피해를 보고받은 처칠이 즉각적인 보복을 명령하여 그날 밤 81대의 폭격기가 베를린으로 날아가 보복공습을 합니다.


놀랍게도 이 보복 폭격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난공불락이라고 자신하던 심장을 공격받았다는 점에서 심리적 충격은 굉장히 컸습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히틀러는 밤낮으로 런던을 폭격하는 <런던 대공습(the Blitz, 1940.9.7.~1941.5.11.)>을 명령합니다.


런던 폭격이 한창이던 1941년1월, B-Uhr의 디자인이 타입A에서 타입B로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the Blitz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B-Uhr(Beobachtungsuhr, 관측시계)는 조종사(Pilot)용이 아닌 항법사(Beobachter, 관측자, Navigator)를 위한 핵심 장비였습니다.


당시 항공기의 항법은 방향을 설정하고, [시간×속도]로 거리를 측정하여 위치를 특정하는 '추측항법(Dead Reckoning)'이 기본이었습니다.


항법사의 주 임무는 나침반과 지도, 그리고 시계를 이용해 비행경로를 계산하는 것이었고, 이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Hour)'가 아니라 '분(Minute)'과 '초(Second)'의 즉각적이고 정확한 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1940년대 초에 공급된 타입A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다이얼과 같습니다.


평소의 환경에서 시간을 보는 것이라면 별문제가 없지만, 깜깜하고, 흔들리고, 춥고, 산소가 희박하면서 대공포가 사방에서 폭발하는 전투환경에서는 분과 초를 빠르고 정확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런던 오폭은 당초 목표인 템즈강 하구 정유시설과 항공기 생산공장으로부터 약 50여km벗어난 곳에서 발생했는데, He-111의 순항속도 (330~360km/h, 5.5~6km/Min)를 생각하면 약 8분정도의 오차로 발생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시침과 분침이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시계를 조금만 잘못 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오차입니다.

이런 문제는 the Blitz가 계속되면서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주간에 영국공군의 저항이 심해지자 독일은 야간폭격으로 전환했는데, 항법사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정신없는 환경에서 타입 A 다이얼을 봐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10시 10분을 1시 50분으로 오인하는 등 '시'와 '분'의 시각적 혼동사례가 많았을 것이고, 복귀한 항법사들은 성과 디브리핑 과정에서 "시(Hour)보다는 분(Minute)의 식별을 최우선으로 해달라."는 피드백이 많았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he Blitz가 한창이던 1941년 1월에 B-uhr 타입B가 등장합니다.


타입 B는 다이얼 바깥쪽(가장 중요한 위치)에 5, 10, 15... 55까지의 '분' 숫자를 거대하게 배치하고 '시' 표시는 중요도를 낮춰 안쪽의 작은 원으로 옮겨버렸습니다.


그 결과 항법사는 어둡고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시계에 시선을 잠깐만 돌려도 현재의 '분'과 '초'를 절대 혼동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타입B의 RLM 도면에는 “Wempe” 표기가 남아 있어, B-Uhr 표준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벰페는 스위스 무브먼트를 사용하며 정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브랜드(예: 랑에, 라코)의 조립까지 담당하는 식으로 5개 브랜드 중 가장 많은 B-uhr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the Blitz로 영국에서는 민간인 4만4천여명이 사망하고, 2만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주택 약 200만채가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합니다.


이 피해 중 절반 이상은 런던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피해도 막심했습니다.


독일군은 조종사 2,662명과 항공기 1,616대를 잃었는데, 이는 각각 영국의 5.4배와 1.6배에 이르는 손실이었으며, 공습 후반이 될수록 영국의 레이더망이 정교화되고 방공망이 강화되면서 손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결국 히틀러는 영국을 포기하고 소련침공(바르바로사)작전으로 바꾸면서 영국본토항공전과 <the Blitz>는 종료됩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독일의 공격을 물리치며 항전의지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독일은 소련으로 진격하면서 등 뒤에 영국을 두어야 하는 양면 전쟁의 수렁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1940년8월24일 야간 비행 중 He-111항법사가 그 어둠 속에서 시계를 ‘잠시 잘못 본 것’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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