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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2 : 복수작전, 꼼꼼한 암살 시간계획표

미 육군항공대 A-11

by Zait


1943년 4월 14일, 미 해군 정보국은 일본 해군의 암호 통신을 감청하고 이를 해독하는 데 성공합니다.


암호명 '매직(Magic)'이라 불린 이 1급 기밀 정보에는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의 시찰 일정이 낱낱이 담겨 있었습니다.


날짜와 시간, 이동 경로는 물론 호위기의 숫자까지, 모든 것이 구체적이었습니다.

당시는 과달카날 전투 패배 이후 일본군의 사기가 바닥을 치던 시점이었습니다.


야마모토는 전선의 장병들을 직접 격려하여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인 솔로몬 제도의 부겐빌 섬 시찰을 결행한 것이었습니다.

미군에게 야마모토는 단순한 적장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사진이 실린 신문이 동날 정도로 추앙받는 군신(軍神)이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진주만 공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원흉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작전을 실행할 경우, 일본군의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될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 전쟁수행에 큰 지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를 제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과 일본군에게 줄 심리적 타격은 막대했습니다.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재가 하에 니미츠 제독은 야마모토 참수 작전, 작전명 '벤전스(Operation Vengeance, 복수작전)'를 명령합니다.

문제는 작전 여건이 극도로 까다롭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군의 거점인 과달카날 헨더슨 비행장에서 야마모토의 목적지인 부겐빌까지 직선거리는 740km.


하지만 솔로몬 제도 곳곳에 포진한 일본군 레이더망을 피하려면 크게 우회해야만 했습니다.


왕복 거리는 무려 1,000마일(약 1,600km).


게다가 발각되지 않으려면 수면 위 50피트(약 15미터) 이하의 초저공 비행을 유지해야 했기에 연료 소모는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계산상 요격 지점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10분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위해 크게 두 가지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이 막대한 장거리 비행을 소화할 '기체'.


당시 주력기였던 F4F 와일드캣이나 F4U 콜세어로는 어림도 없었고, 배치된 지 1년 남짓 된 최신예 전투기 P-38 라이트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천재 엔지니어 켈리 존슨(Kelly Johnson)이 이끄는 스컹크 웍스(Skunk Works)의 첫 걸작인 이 쌍발 전투기는 독특한 쌍동체 디자인 덕분에 대용량 연료 탱크와 중무장을 탑재하고도 고속 비행이 가능했습니다.


미군은 여기에 대형 보조 연료 탱크(Drop Tank)를 장착하여 항속거리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움직이는 두 물체의 시간, 속도, 방향, 날씨, 습관을 변수로 하는 고난이도 수학 문제입니다.


망망대해 위를 지형지물 하나 없이 초저공으로 비행하여,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을 출발해 부겐빌로 이동 중인 적기를 공중에서 정확히 조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군은 치밀한 경로 설계 후 비행 구간을 4개로 나누고, 각 구간별 비행 방향과 시간을 초 단위까지 계산했습니다.


계산 결과는 레이더 유도 없이, 오직 계산된 비행만으로 약속된 시간인 9시 35분, 그 하늘 위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밀 추측항법(Dead Reckoning)의 핵심 장비는 해군에서 급히 공수해 온 고성능 나침반, 그리고 조종사들의 손목에 채워진 A-11 시계였습니다.


1942년부터 미 육군 항공대(USAAF : United States Army Air Forces)의 표준 지급품이 된 A-11을 착용한 16명의 조종사는, 이륙 전 시간을 완벽하게 동기화(Hack)한 뒤 다음의 복잡한 경로를 오차 없이 수행해야 했습니다.

• 1구간 (Leg 1): 265도 방향으로 정확히 55분간 비행

• 2구간 (Leg 2): 우측 25도 선회, 290도 방향으로 27분간 비행

• 3구간 (Leg 3): 305도 방향으로 선회, 38분간 비행

• 4구간 (Leg 4): 20도 방향으로 선회, 부겐빌 해안선까지 마지막 40마일 비행

• (5구간은 목표 미발견 시 수행할 예비 수색 비행)

계획된 방향과 시간에서 1도, 1분만 어긋나도 야마모토 편대와 엇갈려 작전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설령 조우했다 해도 교전이 10분 이상 길어지면 귀환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추락할 운명이었습니다.


비행대대장도 1/1,000확률이라고 묘사한 이 정교한 도박은 목표물이 '정확한 시간, 정해진 장소'에 나타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었습니다.


야마모토는 평소 "군인은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진 인물이었고, 미군은 역설적으로 적장의 그 철칙을 믿었습니다.

4월 18일 오전 7시 30분, 16대의 P-38이 과달카날을 이륙합니다.

미첼 소령이 이끄는 '킬러 편대'는 수면이 닿을 듯한 초저공으로 2시간 넘게 비행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9시 34분, 예정보다 1분 먼저 요격 지점에 도착하여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기록은 일본과 연합군의 시차, 작전 구역의 시간대에 따라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정확히 9시 35분. 야마모토가 탑승한 '1식 육상 공격기(미군 코드명 Betty)' 2대가 호위기인 6대의 제로센들과 함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미군의 계산과 야마모토의 시간관념이 완벽하게 일치한 순간이었습니다.

킬러 편대는 즉시 보조 연료 탱크를 분리하고 급상승하여 적기를 덮쳤습니다.


제로센 호위기들이 급강하하며 엄호조와 엉겨 붙는 사이, 톰 랜피어 대위가 포함된 4대의 참수조가 베티를 노렸습니다.


맹렬한 사격을 받은 베티 1호기는 왼쪽 엔진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정글 속으로 처박혔습니다.


곧이어 수면 위를 낮게 날아 도망치던 베티 2호기 역시 참수조의 공격으로 날개가 떨어져 나가며 바다로 추락했습니다.


교전은 단 5분 만에 끝났습니다.


베티 2대가 모두 격추된 것을 확인한 킬러 편대는 곧바로 기수를 돌려 과달카날로 복귀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야마모토는 정글에 추락한 1호기에 탑승해 있었으며, 추락과 동시에 전원 사망했습니다.


미군 측 피해는 P-38 1대 추락. 복귀한 기체 중 한 대에는 무려 104발의 탄흔이 남아있었을 만큼, 짧지만 치열했던 공중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마모토는 자신의 철저한 시간관념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고, 미군은 그보다 더 정교한 시간계획으로 그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야마모토의 죽음을 한 달 뒤에야 발표하고 국장(國葬)을 거행했습니다.


황족이나 화족이 아닌 일반인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진 것은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합니다. 일본 국민들은 큰 충격과 함께 패배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반면 미군은 작전 보안을 위해 "우연한 조우로 인한 격추"로 위장했고, 자국 국민들에게 조차 원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이 소식을 일본 발표를 통해 알았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은 종전 시까지 자신들의 암호가 뚫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은 전쟁양상을 바꾸었고, 전쟁에 참전한 시계는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과 '이동탄막사격(Creeping Barrage)'이라는 전장 환경을 통해 회중시계를 손목 위로 끌어올려 '트렌치 워치(Trench Watch)'를 탄생시켰다면,


2차 세계대전은 '항공전'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전장과 '추측항법(Dead Reckoning)'이라는 기술적 요구를 통해 B-Uhr나 A-11과 같은 '파일럿 워치(Pilot Watch)' 장르를 완성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마모토 참수 작전, 즉 '벤전스 작전'은 2차 대전이 만들어낸 군용 시계의 기능과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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