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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전쟁 : 제국의 역습

CWC G10

by Zait



“The Empire Strikes Back”


1982년 4월 19일 뉴스위크 표지에는 위 제목과 함께 포클랜드제도를 향해 출항하는 영국의 경항공모함 허미즈(HMS Hermes)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언뜻 보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 변방의 반란군을 제압하러 출동하는 장면 같지만,


실상은 한때 제국이었던 영국이 다 무너져가는 국가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러 출정하는 모습이기에 저런 제목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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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은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는 과정에서 재정은 거덜났고, 식민지들 대부분이 독립한데다 영연방 경제블록도 해체되어 대외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조선, 자동차 같은 주력 산업들이 일본이나 독일 같은 경쟁국에 밀리면서 제조업은 붕괴되었으며 실업자가 늘어난 상태에서 오일쇼크까지 덮치자 중산층이 무너졌습니다.


1976년에 IMF 구제금융까지 받고, 1978년에는 전국적인 파업이 벌어지면서 영국 경제가 마비되었습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고 땅에 묻히지 못한 시체들이 눈앞에서 썩어나가자 영국 전체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the Winter of Dis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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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언론은 복지만 요구하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영국인들의 국민성이 ‘영국병’(The British disease)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국가 전체는 패배주의에 젖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정부가 운영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79년에는 팬텀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정규 항공모함인 아크로열을 해체했고, 1981년에는 남극 초계함인 인듀러런스호를 철수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는 아르헨티나의 오판으로 이어졌습니다.


1976년에 쿠데타로 세워진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폭발 직전인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영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던 포클랜드를 노리고 있었는데, 영국 상황을 보니 자기들이 이 섬을 차지하더라도 항의할 여력조차 없다고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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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군 4천명이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면서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섬에는 영국 해병대 70여 명이 있었지만, 워낙 전력차가 커서 쉽게 제압되었습니다.


10년 뒤인 1992년에 만들어진 BBC TV영화 ‘An Ungentlemanly Act'가 상세한 고증을 거쳐 이날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크노먼 소령의 시계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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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를 빼앗긴 것도 자존심 상했지만, 섬을 지키던 군인들을 범죄자 다루듯 찍은 사진들이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영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협상파들이 주민 1,500명과 양떼들이 사는 섬을 탈환하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 군대를 파병하면 도착도 하기도 전에 재정이 파탄 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영국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쟁을 만류했습니다.


반면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우리가 질질 끌다 보면 몇 달 내에 우리는 우리 말이 안 먹히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며 응전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는 반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의 분위기는 영화 ‘철의 여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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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로부터 침공을 당한 지 3일만인 4월5일, 영국은 3만명의 병력과 1백여개의 항공기를 2대의 항공모함을 비롯한 컨테이너선, 유람선 등 1백여척의 함정에 나눠 싣고 13,000km떨어진 포클랜드로 출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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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1만5천 병력에 40여척의 함정, 2백여기의 항공전력으로 영국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열세였지만 항공모함이 1대 있었고, 영국, 미국, 프랑스제 최신 무기로 무장했으며, 자신들의 앞바다에서 치르는 전쟁이라 압도적인 보급 우위에 있었으므로 승패는 예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영국은 기함인 허미즈가 격침되거나 전쟁이 조금이라도 늘어지면 전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쟁에서도 지고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영토들도 주변국에게 빼앗기면서 세계에서 무시당하는 3류 국가로 주저앉을 것이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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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대 제국을 운영했던 영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일단 함대가 포클랜드로 이동하는 3주 동안 영국 정부는 치혈한 외교전을 펼쳐 아르헨티나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무기 수출금지 제재,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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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5월1일, 대서양 어센션 섬에서 발진하여 6,000km를 날아온 벌컨폭격기가 포클랜드 섬에 있는 스탠리공항을 폭격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제공권 장악을 위해 아르헨티나의 스카이호크, 미라지와 영국의 씨헤리어가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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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영국의 핵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로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를 격침시켜 323명이 목숨을 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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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엔 아르헨티나 공군이 발사한 엑조세 미사일로 영국의 구축함 셰필드가 격침되어 20명이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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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르헨티나 공군은 영국함대를 공격하여 호위함2척, 구축함1척, 헬기를 실은 상선1척을 침몰시켰고, 영국 해군 전투기들은 이들을 사냥하면서 22대의 아르헨티나 전투기가 요격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 공방전 끝에 영국이 바다와 공중에서의 통제권을 확보하자 5월21일부터 본격적인 상륙작전과 지상전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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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구르카와 코만도 부대를 투입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섬을 탈환했고, 6월14일 아르헨티나가 항복함으로써 영국이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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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21일, 온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원정군이 영국으로 귀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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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단 3개월 동안 치러진 이 전쟁은 두 국가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영국은 전 국민이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재선에 성공한 대처가 이끄는 구조조정에 성공하면서 세계 지도국으로 복귀했습니다.


반면, 한때 세계 5강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전쟁 이후 정권이 무너지면서 큰 혼란이 발생했고, 이후 9차례의 국가부도를 맞으면서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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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이 벌어진 1982년 당시 영국군의 공식 시계는 CWC G10이었습니다.


CWC(Cabot Watch Company)는 1972년부터 영국군(Mod)에 시계를 납품하는 군납 전문업체입니다.


Mod에 시계를 납품하던 해밀턴UK가 쿼츠파동으로 철수하자 여기에서 상무로 근무던 Ray Mellor가 CWC를 설립하고 기존에 해밀턴이 공급하던 W10 공급계약을 인수하면서 회사가 시작되었습니다.


80년대에는 Mod 재정이 어려워지자 오메가나 롤렉스와 같은 값비싼 브랜드를 대체하면서 CWC는 명실공히 영국 육해공군 모두에게 시계를 공급하는 업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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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0은 1980년부터 2006년까지 연간 1만개씩 20만개 이상이 군에 보급되어 전 세계 분쟁에 참전했습니다.


당시는 기계식이 쿼츠로 대체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 시계도 처음부터 쿼츠로 제작되었지만, 최근에는 상품성을 고려하여 SW200-1로 구동되는 G22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G10 다이얼에는 Quartz, G22 다이얼에는 Automatic이라고 표시되어있는데 둘 다 영국군 군납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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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계의 첫 번째 특징은 2차 세계대전 WWW부터 이어져온 다이얼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60년대 GS24를 복각한 해밀턴 카키 9712B와 나란히 놓고 보면 12시 삼각형, 레일로드 미닛트랙, 야광점, 핸즈모양 등의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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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특징은 군용시계답지 않게 굉장히 우아한 곡선으로 디자인됬다는 점입니다.


특히 베젤과 본체가 일체형으로 된 모노코크 케이스와 스트랩을 직선으로 만나는 디자인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실루엣을 만듭니다.


이 디자인은 CWC 고유 디자인이지만 82년과 84년에는 Precista라는 브랜드에서도 같은 디자인을 Mod에 납품한 적이 있습니다.


미군에 납품하는 마라톤도 84년과 85년에 G10과 케이스가 유사한 GG-W-113을 생산한 적이 있었는데 소량에 그쳤고, 나중에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6mm Officer’s Mechanical (GPM)를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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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영국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이 봤을 때 G10을 돈주고 사는게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당시 영국군에서는 흔한 시계였지만, 이 시계는 기능적이고 디자인도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현대전을 치루면서 전투경력을 많이 쌓았습니다.


특히 1982년과 1991년에 출시된 시계는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을 기념하는 시계로 불리며 좀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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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너지는 제국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비장한 순간을 함께했고, 결국 그 전쟁이 성공했던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기념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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