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WW2 : 포인트블랭크 작전, B-17 승무원의 하루

A-11 Navigation (Hack) Watch

by Zait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을 1년 앞둔 1943년, 연합군은 독일의 전쟁수행능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규모 전략폭격 캠페인, 즉 포인트블랭크 작전(Operation Pointblank, 1943~1944)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두 나라의 전략폭격 철학은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영국 공군(RAF:Royal Air Force, 1918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공군)은 블리츠의 상처와 복수심 속에서, 독일 도시 자체의 파괴를 통해 전쟁의지를 꺾는 ‘야간지역폭격’을 선택했습니다.

반면 미국 육군항공대(USAAF: United States Army Air Forces, 1947년에 육군에서 독립하여 미공군 USAF가 됨)는 베어링 공장, 정유시설, 항공기 조립공장 같은 산업망의 핵심 노드만 정확히 파괴하면 독일군 전투력은 자연히 붕괴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고고도 주간 정밀폭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무기가 바로 B-17 플라잉 포트리스(B-17 Flying Fortress),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 그리고 A-11 Aviation (hack) watch였습니다.


USAAF 전략무기 3종세트

4발 엔진을 장착한 B-17은 10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약 800마일(1,280km)을 비행해 2톤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으며, 동체 곳곳에 설치된 12정의 기관총으로 입체적인 방어망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방어력은, 터보슈퍼차저 엔진의 힘으로 대공포와 전투기의 성능이 떨어지는 3만 피트(9km) 상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고고도’ 능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승무원들이 믿었던건 날개가 누더기가 되고 엔진 여러 개가 나가도 귀환할 수 있는 B-17의 튼튼한 '맷집'이었습니다.


승무원들은 B-17 기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엄마처럼 자신들을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악을 쓰며 버티고, 내가 죽더라도 이 비행기는 나를 기지까지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주간 정밀폭격’이라는 야심찬 결정의 중심에는 노든폭격조준기가 있었습니다.


미군은 이 조준기가 고도와 속도를 입력하면 탄도를 자동 계산하여 7km 상공에서 피클 통 안에 폭탄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건조하고 바람이 없는 미국 사막에서의 실험값이었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대공포가 쏟아지는 유럽 실전에서의 명중률은 약 2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미군은 이 한계를 다수의 폭격기가 동시에 투하하는 융단폭격으로 보완했습니다.

이 모든 시스템들은 철저히 시간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먼저 수백대의 B-17을 컴뱃 박스(Combat Box)형태의 공격 편대로 구성하는데에는 파일럿들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이 편대가 폭격지점을 찾아가는 데에는 네이게이터(항법사)의 시계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항공기는 공중에서 길을 찾아가는데 추측항법(Dead Reckoning)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항법사는 나침반과 속도계, 시계를 보며 [거리 = 속도 × 시간]으로 위치를 계산하고, E6B Flight Computer(항법 계산을 도와주는 회전자)를 이용해 편류각을 보정하여 지도에서서 길을 찾았습니다.


시계가 없으면 폭격기들간에 협동도 안되고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군은 표준규격(Mil-spec)을 만들어 시계를 대량으로 생산했는데, 이게 바로 A-11입니다.



플라잉포트리스의 작은 심장 A-11


A-11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엘진(Elgin), 왈샴(Waltham), 부로바(Bulova) 등 미국 브랜드가 생산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고정밀 기기에 속해 주로 육군항공대 승무원(전원)과 지상요원(일부)에게 지급되었고, 포병·통신·공수부대 등 시간관리가 필수적인 일부 특수병과에도 지급됐습니다.


하지만 무기대여법(Lend-Lease)을 통해 영국·캐나다·소련 공군에도 전달되면서 전쟁 중 약 100만 개가 생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A-11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스팩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항공용 Aviation (hack) watch는 B-17의 혹독한 환경을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여압이 안 되는 고고도에서 B-17 실내온도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지고, 전열수트와 산소마스크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이 온도에서는 일반 시계 오일이 얼어붙기 때문에, A-11에는 특수 오일과 인바(Invar) 헤어스프링이 사용되었고, 기내 전자장비와 통신장비의 자기장을 견디기 위해 연철 케이스로 무브먼트를 감쌌습니다.


또한 검은 다이얼에 흰 인덱스와 야광 핸즈, 작전 동기화를 위한 초침 정지(hack) 기능은 당시로선 매우 진보적인 사양이었습니다.


B-17의 작전수행절차


이러한 고성능 장비에도 불구하고 운용전략이 부족했던 초기 폭격은 독일 공군의 격렬한 저항에 막혀 참담한 피해를 입었고 실적도 형편없었습니다.


폭격기들은 목표물 근처에서 날아오는 대공포를 이리저리 피하다가 폭탄을 아무데나 떨구었고, 폭격 전후로 하나하나씩 루프트바페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대령입니다.


그는 1942년10월에 제305폭격비행전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생존과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B-17 운용을 개별 조종사의 감각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공장식 시스템으로 바뀝니다.


컴뱃박스, 회피기동 금지, 리드폭격을 핵심으로 하는 그의 운용방식에 의해 B-17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 브리핑

작전 당일 새벽에 그날 임무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됩니다. 정보 장교가 커튼을 걷고 붉은색 실로 항로가 표시된 지도와 목표물이 나타나면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습니다.


임무 브리핑이 끝나면, 각 폭격기의 컴뱃박스 포지션과 택싱, 이륙, 편대 형성시간 등이 하달되고 시간 동기화(Time Hack)가 시작됩니다.


"Time check. Coming up on 0600 hours...3,2,1, Mark!“

전체 브리핑이 끝나면 조종사, 항법사, 폭격수별로 모여서 개별 브리핑을 진행합니다.

모든 브리핑이 마무리되면 승무원들은 B-17로 이동하여 지상 요원들이 밤새 정비한 기체를 인수하고, 폭탄 적재량과 연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산소통을 확인한 뒤 이륙준비를 합니다.



2. 이륙 및 집결(Combat Box)

관제탑에서 작전개시를 알리는 녹색 신호탄이 날아오르면 이륙을 시작합니다.

30초 간격으로 이륙한 폭격기들은 상공을 빙글빙글 돌며 알록달록한 도색의 선도기(assembly ship)를 따라 공중에서 컴벳박스를 형성합니다. 작전에는 수십대에서 수백대의 폭격기가 동원되기 때문에 이륙과 집결에만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폭격기들은 3기가 모여 기본 단위인 엘레멘트(Element), 4개의 엘레멘트가 모인 스쿼드론(Squadron, 12기), 3개의 스쿼드론이 모인 그룹(Group, 36~54기)을 입체적으로 형성하며 1개의 컴벳박스를 형성합니다.

이는 르메이가 고안한 방식으로 B-17 편대를 상하좌우 입체적으로 배치해 서로의 사각을 메우는 수백정의 기관총 화망을 만듦으로서 생존율을 크게 높였습니다.


3개 이상의 그룹이 모이면 컴벳윙(Combat Wing)이라고 부르는데, 그규모는 폭 600m, 높이 900m, 길이 2km에 달했고, 미국과 영국 폭격기 1,000대가 참여한 베를린 폭격의 경우에는 수백km에 이르는 '폭격기의 강'을 형성할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대형이 완성되면 선도기는 기지로 돌아가고, 컴뱃박스는 비로소 영국해협을 건너 적진을 향합니다.


만약 시간을 맞추지 못한 폭격기는 다른 B-17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대열에서 뒤쳐져 따라가게 되는데, 적진에 들어서면 가장 손쉬운 희생자가 되므로 시간 준수는 곧 승무원들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3. 순항 및 진입


폭격기들이 대형을 유지하며 비행하면 P-47이나 P-51 같은 호위기들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합류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항속거리가 길지 않아 얼마 못 가 복귀할 수밖에 없고, 독일군도 이 순간을 기다립니다. 호위기가 사라지면 독일 요격기들이 구름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독일군은 컴벳박스의 방호력을 잘 알기 때문에 격추보다는 대열을 찟는데 집중합니다.


B-17의 가장 취약한 정면을 노려 12시방향으로 접근해서 조종석을 직접 타격하며 쏜살같이 교차해서 지나갑니다.


이들이 나타나면 정면에 탑승한 승무원들은 사수들에게 적기 위치를 알리기 위해 '12 O'clock high!'라고 외치는데, 그레고리펙이 주연한 영화 <Twelve O'Clock High(1949)>의 제목이 여기에서 왔습니다.

독일군의 위협에 놀라 회피기동을 하다 대열을 벗어나거나, Bf109의 공격에 네 기의 엔진 중 하나만 고장나도 속도가 느려져 편대에서 뒤쳐지게 되고, 홀로 남은 폭격기는 늑대무리 앞의 양처럼 순식간에 뜯어먹힙니다.


목표물에 접근하면 어느 순간 요격기들이 사라지면 대공포(Flak)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독일군들은 편대가 지나갈 공간을 계산해 그 공간에 수천발의 포탄을 동시에 쏟아붓습니다.


처음에는 먼 거리에서 검은 연기구름이 파편처럼 피어오르다 어느새 강철파편들이 동체를 때리거나 뚫고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4. 폭격 (회피기동 금지, 리드폭격)

르메이의 전술에 따라 폭격기들은 쏟아지는 강철 파편들을 뚫고 대형을 유지하며 직진합니다.


IP(Initial Point, 폭격 개시점)를 통과하는 순간, B-17은 폭격준비에 들어가고 파일럿은 "It's your ship"이라는 인터콤 교신과 함께 기수 앞에 있는 폭격수에게 조종권을 넘깁니다.


이때부터는 노던 조준기와 연동된 C-1 자동조종장치가 기체를 정밀하게 제어하게 됩니다.

정밀 타격을 위해서는 고도와 속도의 유지가 필수적이기에, 대공포가 바로 옆에서 폭발해도 회피 기동은 엄격히 금지되는데, 이를 'Bomb Run'이라 부릅니다.


이 구간은 작전 전체를 통틀어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간대입니다. 경로와 고도가 고정된 채 일직선으로 비행하는 거대한 기체는 대공포에게 가장 요격하기 쉬운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B-17이 이 마의 구간을 통과하다 격추되었습니다.

죽음과 직결된 이 7분의 시간 동안, 옆에서 동료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승무원들은 그저 손목 위의 A-11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선두기 폭격수가 조준을 완료하고 "Bombs Away!!!"를 외치며 투하 스위치를 누르면, 선두기의 낙하 타이밍에 맞춰 편대의 나머지 폭격기들도 일제히 폭탄을 쏟아냅니다.


5. 귀환


폭격 직후, "Pilot, you have the ship"이라는 교신과 함께 조종권은 다시 파일럿에게 넘어가고, 기체들은 대공포 화망을 신속히 이탈하기 위해 급선회(Break-away)를 실시하여 사전에 지정된 집결지(Rally Point)에서 흐트러진 대형을 재정비합니다.

이때 엔진 고장이나 피격으로 대형에서 뒤처지는 기체, 이른바 '낙오기(Straggler)'가 발생하면 매복해 있던 루프트바페의 사냥이 시작됩니다.

파일럿을 제외한 전 승무원들이 12.7mm 기관총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응사하는 사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 불길에 휩싸인 B-17들이 추락하거나 공중에서 폭발하고, 때로는 기체끼리 충돌하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독일 전투기들이 물러가면, 이제부터는 '연료와의 전쟁'입니다.


편대장은 맞바람의 세기와 남은 연료량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귀환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만약 심각한 손상으로 기지 복귀가 불가능한 기체가 발생하면, 항법사는 지도를 펼쳐 불시착이 가능한 지역으로 긴급히 경로를 수정하기도 하는데, <Masters of the air(2024)>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6. 착륙 및 전과보고 (Interrogation)

편대가 영국 해협을 건너 기지 상공에 접근하면, 지상 요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돌아오는 기체의 수를 셉니다.


1943년, 제8공군 폭격기 승무원의 임무당 손실률은 평균 5~10%였으나, 슈바인푸르트 공습 등 격전지에서는 20%를 상회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수학적으로 10~20회 출격 시 생존 확률이 0에 수렴한다는 뜻으로, 당시 25회 임무 완수는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25회 출격을 마치면 고국으로 복귀시켜주는 제도가 있었고, 그 첫 번째 사례를 그린 영화가 〈Memphis Belle(1990)〉입니다.

착륙 절차는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연기를 달고 가까스로 기지해도착해서 불시착하는 폭격기가 속출합니다.


기내에 중상자가 있는 기체는 붉은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우선 착륙권을 요청하고, 구급차가 활주로 끝에서 대기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기체가 주기장에 멈추면 트럭과 지프가 승무원들을 태워 정보 장교가 기다리는 브리핑 룸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심문(Interrogation)이라고 하는 디브리핑 절차를 통해 전투 상황과 적의 피해, 아군의 손실을 상세히 진술합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돌아온 승무원들의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항공 군의관의 처방에 따라 임무 완수 위스키가 지급되기도 했습니다.



작전의 결과


포인트블랭크 작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사건은 1943년 8월과 10월에 두 차례 실시된 슈바인푸르트–레겐스부르크 공습이었습니다.


독일 베어링 산업의 심장부를 겨냥한 이 작전을 다룬 드라마 〈Masters of the Air〉에서 당시 작전의 스케일과 승무원들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43년 6월부터 1944년 4월까지 이어진 작전 기간 동안, 미 육군항공대는 실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약 5천 대의 B-17이 파괴되었고 2만 6천 명 이상이 전사했는데, 이는 미 해병대의 전체 전사자 수보다 많은 수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을 대가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를 재기 불능 상태로 소모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은 완벽한 제공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주목받지 못한 주인공



같은 시기 태평양전쟁에서 활약하던 B-24가 등장하는 <Unbroken(2014)>에서는 승무원들의 손목에 A-11이 채워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략폭격의 주인공인 B-17을 다룬 여러 영화 속에서는 A-11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소품 고증이 뛰어나다는 멤피스벨에서는 승무원들의 손목에 검은색 다이얼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지만, 시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엉뚱한 시계가 비치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데, 전쟁 중 승무원들이 ‘보급품’보다 개인이 선호하던 ‘싸제’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 시계가 영하 50도와 자기장 속에서 정상 작동했을까, 그래서 발생한 오차가 실제 작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듭니다.

100만개나 만들어진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아 있는 기록 사진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단체사진에 방한복 시보리에 가려졌으며, 지금처럼 카메라가 흔치 않아 전투 중 근접 촬영이나 손목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극히 드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A-11 연합군 승리의 주역이었지만 영국의 WWW(더티더즌)이나 독일의 B-uhr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데,


ㅇ 더티더즌과 B-uhr는 스위스와 독일의 하이앤드 브랜드가 제작했지만, A-11은 미국의 대량생산브랜드라는 점

ㅇ 제작사인 Elgin과 Waltham은 사라지고 Bulova도 명맥만 유지하면서 아카이브가 소실되고 이야기거리를 찾기도 어려워졌다는 점

ㅇ 대량생산을 위해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는 크롬도금 황동케이스를 사용하다보니 대부분 상태가 온전치 않아 수집가들의 외면을 받았고, 실제로 미군에서는 소모품처럼 다뤄졌다는 점

ㅇ WWW의 고급시계 디자인이나 B-uhr의 독보적인 아이덴티티와 비교해 평범하고 수수한 디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A-11은 시계가 작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대에 수십만 명의 승무원들과 생사를 함께했다는 사실과 2차대전 승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연합군 표준 항공 시계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클랜드전쟁 : 제국의 역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