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사장의 생존 전략

더 커지기보다 더 선명해질 것

by 김영호

장사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남해에 다녀왔습니다. 쉬는 일정이었지만 편히 쉬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고민들이 친구들의 얼굴에도 똑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르는 임대료와 재료비, 각종 규제와 책임. 매출은 제자리인데 감당해야 할 비용은 자꾸만 늘어 납니다. 그 현실 앞에서 작은 가게의 사장은 가끔 힘없이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결국, 10년을 버틴 친구가 가게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폐업은 단순히 문을 닫는 일이 아니라자영업자가 그간 지켜온 시간과 삶도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이토록 차갑습니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맛'이 아니라 기꺼이 돈을 써야 할 '특별한 경험'과 '이유'를 찾습니다.


유명 셰프들의 이름을 건 밀키트가 주문한 다음날 새벽 식탁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자본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시스템을 앞세워 원가를 절감하고 효율을 최적화할 때, 우리는 매일 불 앞에 서서 미세하게 변하는 요리의 결을 살피고, 손끝에 밴 감각으로 소스의 농도를 맞추며, 오직 한 사람의 식탁을 위한 온기를 묵묵히 채워가야 합니다.


작은 가게가 이 거대한 속도를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을지, 대형 자본들과 맞서 지속할 수 있을지, 가끔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곤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얻은 답은 단순했습니다.

"더 커지기보다, 더 선명해질 것."

트렌드를 쫓으며 우리를 소모하는 대신,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치를 더 단단하게 세우는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1. 손님의 '리스트' 안으로 들어갈 것 : 새로운 손님을 쫓기보다, 단골의 리스트에 남는 것이 우선입니다. 기념일에 가고 싶은 곳, 부모님 모시고 가야 할 곳, 한 잔 생각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 등 손님의 삶에서 필요할 때 떠오르는 '특정한 목적지'가 되어야 합니다.


2. 공간과 서비스에 '이야기'를 담을 것 : 화려한 인테리어는 자본의 영역이지만, 공간에 깃든 이야기는 우리의 영역입니다. 왜 이 음식을 하는지, 왜 이 방식을 고집하는지... 공간 구석구석에 사장의 진심을 녹여 손님이 그 '이야기'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3. 감당 가능한 규모에서 '최고의 밀도'를 유지할 것 : 덩치를 키우기보다 내실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테이블 수 안에서, 감당 가능한 규모로 밀도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4. 삶을 지키는 운영으로 '지속가능한' 가게로 만들 것 : 우리가 소모되면 가게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내 한 몸 불살라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여유 있어야 장사라는 긴 여정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오래가기 위해, 우리의 삶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 절박한 생존 방식에 가깝습니다.


자영업 시장은 누구나 도전하고 쉽게 창업하는 만큼 경쟁은 치열해지고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개업과 폐업이 동시에 반복되는 시장이 됐습니다. 주변 곳곳에 문닫힌 가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유지'이고 어디부터가 '소모'인지. 그리고 '지속 가능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작은 가게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가게'만'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한 팀의 손님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우리의 태도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내는 일. 그것이 지금의 소비자에게도 결국 가장 설득력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전히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비용은 계속 오르고 시장은 빠르게 변합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 한쪽이 선명하게 정리되어 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가치를 지키며 조금씩 시장을 따라 가능한 만큼 바꾸고, 필요한 만큼 더하며, 천천히 오래가겠습니다.

짧은 여행과 동료들과의 만남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며 장사를 해야 할지 그 선명한 이정표를 확인하고 돌아온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동료 사장님들이, 부디 흔들리지 말고 더 오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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