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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앨범 발매를 앞두고

음악으로 돌아오기까지

by 셀레스티얼 m



음악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7살 때 시작한 피아노 학원은 항상 다니기 싫었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귀로 듣고 피아노로 뚱땅거리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강압적인 아버지로 인한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건 긍정적인 가사와 꿈꾸는듯한 멜로디의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들이었다. 미국 유학을 시작했을 때도 유학 준비기간 사이 5개월 정도 배운 무거운 첼로를 끌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 첼로로 대학 시절 내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다. 음악은 늘 내 마음의 중심에 있었다. 대학을 시작해 1년 반 동안 음악과 관련 없는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어느 날 작곡과로 전향해야겠다는 강한 결심이 생겼다. 준비 끝에 운 좋게 합격했고, 음악 학사 졸업장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대학 졸업 1년 후 태어난 첫 아이부터 시작해 육아와 번역 일을 병행하며 건반 앞에 앉을 시간조차 내기 어려워졌다. 아이가 넷이 되며 음악은 당연스레 제일 뒷전이 되었다. 육아로 지친 날, 좋아하는 곡을 크게 틀어놓고 듣거나 따라 부르면 마음이 뻥 뚫리고 나도 언젠가 이런 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 외적인 이유와 함께, 돌아보면 내 음악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었던 듯 하다. 부족한 실력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안 팔릴 음악을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음악 관련 활동을 미적거린 이유는 많지만 구체적으로 그중 첫째는 음악이 내게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자라오며 들었던 것 같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행복한 음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싶었지만, 그 길은 경력단절과도 비슷한 '음악단절'의 생활을 해 온 나와는 다른 세상 얘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원래부터 부정적인 곡을 싫어했는데. 혼미한 세상에 그런 노래, 나의 격한 표현을 쓰자면 '똥'을 더 내놓을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내 정신은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버릴것같은 육아에 지쳐 피아노를 치고 녹음해보면 뭐든 내 귀엔 참 우울하게도 들렸다. 음악이란 아름답고 신성한 것을 내가 망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둘째는 나의 완벽주의와 자만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예전엔 음악으로 칭찬도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럴수록 좋은 곡이란 재능의 영역이라 생각하게 된 것인지 노력은 전혀 하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나의 작곡물이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가까웠고 그러므로 많은 시간과 고심이 필요한 좋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잘 못할 것을 곡을 만들기도 전부터 두려워하고, 거기에다 게으름으로 인해서도 아주 미숙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 두려웠.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을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4년 전, 우연히 좋아하던 음악 장르의 커뮤니티 채팅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용기를 내서 리듬 게임 장르 곡 두 개를 만들게 됐다. 첫 곡은 아주 기본적인 가라지밴드로 만들어졌다. 작년부터는 큰 발전을 해서 로직 (맥용 음악 제작 프로그램, daw라 한다)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애들 재우고 번역일을 해서 돈을 조금씩 벌면서도 큰 지출은 두려워했는데, 큰맘 먹고 나에게 투자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리듬 게임 커뮤니티에서 두 번째 곡을 완성하고, 2년 전에는 악기 레슨이나 다른 큰돈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음악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찾다가 지역 오케스트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막상 가 봤더니 첼로보다는 더블 베이스가 필요하단 말에, 덜컥 첼로와 비슷하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도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실력이 그저 그런 나라도 오케스트라에서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 한 곡을 더 만들었고, 이 곡은 후에 나의 첫 앨범의 첫 곡으로 쓰이는 곡이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음악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이때 종교가 그 의미를 찾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부분은 나에게 중요하다 생각되어 다음 글에서 쓰고자 한다.)


이때쯤 새로 찾아들어가 본 작곡 채팅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음악 스튜디오를 운영하시는 방장님이 계시고, 열심히 곡을 만드시는 분들과 이미 앨범 발매 하신 분들도 많아 보였다. 주로 읽기만 하고 답은 안 하는 편인 나였지만 자극을 받아, 마침내 작지만 세 곡이 담긴 앨범 발매를 결심하게 됐다.

이 결심의 계기 중에는 그 채팅방의 한 분이 자신의 곡을 도둑맞아 앨범 발매 되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일이라, 소중한 나의 곡을 빨리 등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현재는 앨범 등록 후 유통사에서 발매 전 간단해 보이는(?)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전체 과정에는 음악 대학 졸업 후 거의 10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나도 조금은 성장하여 나의 음악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의 가장 큰 의미란 내 곡이 몇 명에게 청취되고 사랑을 받는가 보다는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해냈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환경적으로는 마침 AI 제작 음악이 너무도 훌륭해 이슈가 된 시기라 나는 음악으로 혹시 얻을지 모를 수익이나 유명세에 관한 꿈을 대부분 접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목적의식을 되돌아보게 한 책들이 큰 도움이 됐다. 최근 읽은 책으로는 육아하는 동시에 다양한 직업을 갖고 분투하는 엄마들의 글인 '돌봄과 작업', 나를 사랑하라는 '행복한 이기주의자' 등이 있다. 엄마로서 육아하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매일 들고 우울해지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무언가 도전해 성취하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남들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음악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여정은 나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성장하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음악의 존재 의미를 조금은 깨닫지 않았나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용기로, 설령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세상에 나만의 음악을 내놓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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