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대 0이 될 수 없다
1대 0.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이런 말은 나도 뱉고 싶지 않지만 뱉고 말았고 나와 누구와의 대결인지 모호하지만, 머릿속으로 점수를 매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라고 했던 문장이 떠오른다. 그 말에 반성했던가? 아니. 오히려 목청을 한껏 높여 툴툴거렸던 것 같다. 이미 기분이 태도가 됐는데 어쩌라고! 어쩌라고!!! 하면서. 가루가 되어 사라지거나 몇 시간만 되감아서 태도가 기분이 되게끔 하고 싶다는 불가능을 꿈꾸며 방바닥에 엎드려 눕는다. 누운 채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안 좋은 기분은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게 만든다. 해야 할 여러 가지 일 중에 여러 가지를 다 해야 만족스러운 인간형으로서 이건 분명 위기상황이다. 이건 좀 아닌 듯, 이러면 안 돼. 의지를 다져보지만 결국 나는 이것도 저것도 건너뛰어 버렸고 어쩌냐고! 어쩌냐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책방으로 출근한다. 슥슥슥- 점수는 2대 0.
책방에 있으면 책과 사람뿐이다. 책은 종종 사람들 손에 들려 책방을 벗어나지만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붙박이다. 그렇게 가만히 사람들과 매번 처음을 맞이한다. 처음은 새롭고 다채롭지만, 나에겐 차갑고 날카롭다. 녹아서 무뎌질 때쯤 사람들은 이미 가버렸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이유를 구해보지만, 쓸모가 없다. 나는 왜 다정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해하지 못할까. 동시에 저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질문도 답도 아닌 영원한 물음표 속에 뱅글뱅글 돌뿐이다. 돌다가 지치면 가슴을 퉁퉁 치면서 오늘 나는 모질게, 오늘 나는 조금 성급하게, 오늘 나는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했던 것들을 일기장에 기록해야겠다고, 그렇게 하고 나면 내일은 아마 괜찮아질 거라고…. 그런데 어쩌지, 점수는 이미 3대 0이 되어버렸는걸.
상대의 점수를 올려주고 싶다면 무조건 뒤를 보라. 지나간 것들을 잘게 잘게 곱씹으며 ‘그래서’는 숨겨두고 ‘왜’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 뱉어보라. 기분이 절로 가라앉고 마음엔 빛이 감쪽같이 사라지며 머릿속은 조금의 틈도 없이 시커멓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찰 수 있다. 앞 말고 옆도 있고 위아래에도 길이 있는데 앞이 안 보이면 바로 뒤로 가는 사람. 그게 나란 사람이고 이런 순간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서 ‘조금 옆으로 가보세요’ 하고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런 해피(happiness)와 엔딩(ending)은 원할 때는 반드시 오지 않는다. 그럼 점수를 어떻게 올려야 하나.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비슷한 말을 했다. 불행 속에 있으면 곧 행복이 올 거라고. 그 장면을 몇 번씩 돌려보며 그나마 내가 깨달은 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다음이 온다는 것이다. 내 삶이 4대 1이 될지언정 0 다음엔 반드시 1이 올 테고 1 다음엔 어쨌든 2가 오겠지. (안 오면 어쩌지) 언제까지고 0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대의 점수가 몇 점이든 많은 순간 나는 웃을 수 있다. 아, 오늘도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렸으나 이런 기분은 오래오래 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3대 1, 아니 2점도 가능하지 않나. 보이지 않는 앞은 놔두고 나만 아는 지름길로 방향을 틀어 3, 4까지 가보자. 삶을 놀이처럼 하라던데 장르가 서스펜스(suspense) 스릴러(thriller)에 가깝긴 해도 놀 수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