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로 할아버지 한 분이 요즘엔 보기 드문 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가는 게 보인다. 짚는 게 아니라 들고 가시는데 좀 무겁지 않을까. 발을 헛디뎌 자주 넘어진다는 엄마에게 가벼운 지팡이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엄마는 사지 말라고 나를 말리겠지만. 몇 번을 권했으나 지팡이를 짚으면 남들보다 빠르게 나이를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스라치며 거부한다. 마음은 알겠으나 나는 엄마가 넘어져 다치는 것보다 할머니가 되는 게 낫다. 아무리 거부해도 엄마의 미래엔 할머니뿐이다.
지팡이, 돋보기, 책.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가지고 다닐 필수품들. 다리 아파도 걸어야 하니까 지팡이 짚고 언제까지고 책은 읽어야 하니까 돋보기라도 끼고 많은 책을 봐야지. 인공 다리가 싸게 보급돼도 인공 눈이 나를 구경하는 우주인까지 구분하는 시대에 살아남더라도 되도록 내 것을 쓰고 움직여야지. 웃음, 침묵, 포옹. 이것 또한 온몸에 품고 가야 할 미래의 생존품. 재미없더라도 결국엔 웃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는 침묵으로 멈추고 누구라도 안아 주고 싶을 때 원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포옹을 누려야지.
무엇보다 복수형들. 가령 나만 말고 너를 포함한 우리, 내가 없더라도 그들 혹은 너희들이 있어야만 미래는 존재하게 될 테니 지팡이와 돋보기, 책은 돈으로 사고 웃음과 침묵, 포옹은 마음으로 사고 그들 혹은 너희들은 사는 것보다 살게 되도록 내가 뭐라도 해야지. 우선은 엄마가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지팡이 말고 천천히 기다리며 걸어주는 일부터 모르는 사람들도 기다리기. 연민과 사랑 그 어디쯤 머무르며 타인을 대하기. 살아남을 수 있다면 여전히 냉소적이고 어설픈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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