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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r 20. 2022

재미난 하루

하늘이 뱅글뱅글 돌 만큼 뺑뺑이를 타고 모르는 친구지만 그 친구의 눈도 뱅글뱅글 돌만큼 뺑뺑이를 돌려준다. 비틀거리며 그네 쪽으로 가면서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어 푸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지구가 돈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때만큼은 어렴풋이 느낀다. 지구는 역시 돈다. 운이 좋으면 비어 있는 그네에 타서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어지러움을 감추고 용감함을 내보일 수 있을 텐데. 그네는 좀처럼 비어 있지 않고 나보다 더 용감한 친구들이 그네를 높게 띄운 다음 공중으로 뛰어내린다. 나도 저렇게 날고 싶은데 자꾸 겁이 난다. 모랫바닥에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아픈 건 참아도 창피함은 참을 수 없다. 시소는 그네보다 조용하다. 시소에 앉는다. 혼자서는 탈 수 없지만, 짓궂은 친구 한 명만 나타나면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다가 세상 구경은 마음껏 가능하다. (하지만 친구가 일부러 나의 엉덩이를 뜨겁다 못해 아프게 할 가능성에 눈은 번쩍 뜨고, 귀는 쫑긋, 세워야 한다)     


정글짐과 구름사다리까지 정복하고 내려오면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다. 놀이터 구석에 아무렇게 던져놓은 책가방과 신발주머니까지 야무지게 들고서 터덜터덜 교문 밖을 나선다. 걸음이 터덜거리는 이유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다. 나의 집은 재미난 일 같은 건, 언니들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데 언니들은 항상 나보다 늦게 집에 온다. 같이 놀던 이름 모를 친구들도 학원으로, 집으로, 내가 모르는 재미난 곳으로 떠났다. 혼자 남겨졌지만 외롭지 않다. 길가에 떨어진 나무막대기 하나를 든다. 지팡이로 짚기에도 제격인 막대기를 한 손에 들고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의 풍경을 떠올린다. 아프리카가 어딘지, 거기엔 왜 나와 다른 색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는 건지, 학교는 가는지, 놀이터는 있는지 알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서 마음속 깊게 칠해진 아프리카의 붉은 빛을 떠올린다. 입술을 달싹거린다. 입안에는 말들이 구르고 있다. 그것들을 줄 세워 입 밖으로 뱉는다. 나도 처음 듣는 노래가 되어 나온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를 쿵- 그리고 쿵- 하고 두드린다. 입과 손은 환상의 짝꿍이 되어 서로의 빈공간을 채운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 초원의 추장이다.      


초딩(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렇게나 잘 노는 아이였다. 놀아도 놀아도 끝이 없고 혼자서도 매일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며 놀았다. 그렇게 재미에 빠져 살던 내가 여전히 재미에 빠져 사는 청년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실종된 재미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재미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군!) 책 읽기와 커피 마시기. 책 읽으면서 커피 마시기. 커피 마시면서 책 읽는 게 현재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일이고 습관처럼 하는 일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하지만 뭐랄까. 커피와 책은 커피와 책일 뿐이고 재미로 환산되진 않는다. 15분의 출근길 동안 하루에 한 번은 재미난 걸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골똘히 생각해보지만, 오늘도 허탕이다.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정말 충격이다!!!) 어른들에게도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해본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 재밌어지려고 발악을 한다. 그러다가 나는 뜨악- 하고서 멈춘다. 재미로 사는 게 농담 혹은 불가능의 시대에 살면서 재미있어지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나를 발로 걷어 찾기 때문이다. 읽던 책을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선다. 나무막대기를 들기엔 열없어 손가락을 허공에 튕기면서 입으로 나도 모르는 소리를 작게 낸다. 오늘은 아프리카 초원 말고 지구 너머, 우주 너머, 혹시나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 거기에 사는 재미난 나를 떠올린다. 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사는 동안의 목표는 재미있게 사는 거라서- 시대를 잘못 타고 났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겠다고- 나는 여태껏 한번도 해보지 않은 놀이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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