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체스토리 한 컷 툰
요즘은 어디를 가든, 장소의 위치에 대해 깊이 고민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도 앱을 열면 내 현재 위치가 점으로 표시되고,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예상 소요 시간, 그리고 어떤 교통수단이 가장 빠른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니까요.
한때는 길을 헤매며 표지판을 찾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손끝 하나로 모든 길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옆 좌석에는 늘 접힌 종이 지도가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그것을 펼쳐 들고 방향을 잡으셨죠.
가끔은 고개를 내밀어 표지판을 확인하고, 주유소 직원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길을 찾는 일이 하나의 ‘감각’이자 ‘기술’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GPS도, 내비게이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다들 제법 잘 찾아갔습니다.
돌아보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앱 안에 있습니다.
택시를 부를 때도, 배달을 시킬 때도,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도 ‘위치정보’는 빠지지 않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출발’, ‘이 근처 맛집’, ‘도착까지 7분 남음’…
우리의 일상은 이미 지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가 택시를 타면 ‘혹시 기사님이 일부러 돌아가면 어쩌지?’ 하며 긴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도앱이 최적의 경로를 안내하고, 요금까지 미리 보여주니까요.
길 위의 불신은 사라지고, 대신 ‘데이터’가 신뢰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약속 장소를 공유하는 것도 아주 간단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지하철 몇 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와” 같은 긴 설명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저 지도앱에서 ‘위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면 끝입니다.
상대는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같은 지점을 향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늦었어.”
그런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속에서도 어딘가 찜찜한 순간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특정 장소에 도착하면 휴대폰에 갑자기 광고가 뜹니다.
카페에 앉자마자 커피 쿠폰 광고가, 마트 앞에 서면 할인 행사 알림이 찾아옵니다.
처음엔 ‘참 똑똑한 세상이구나’ 싶었지만, 곧 묘한 기분이 듭니다.
“내가 여기에 온 걸, 누가 알고 있는 거지?”
마치 누군가 내 뒤를 따라다니며 나의 발걸음을 기록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랄까요.
물론 대부분의 서비스는 이용을 위해 이런 위치정보를 요구합니다.
앱을 처음 설치할 때 ‘위치 접근 허용’을 눌렀던 기억이 아마 있을 겁니다.
그땐 별생각 없이 ‘허용’을 눌렀지만, 나중에 보면 너무 많은 앱이 내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서비스의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지만, 때때로 그 편리함이 내 사생활의 경계를 침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앱이 내 위치를 추적하기 전에, 조금은 사람답게, 예의 있게 말을 걸어준다면 어떨까요?
“너 지금 어디야?”
그 한마디가 있다면, 이 감시 같은 시스템도 조금은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기술은 늘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편리함이 깊어질수록 인간적인 온도는 조금씩 식어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가끔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모퉁이를 잘못 돌아 낯선 거리를 헤매더라도, 그 길 위에서 느끼는 작은 두근거림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길을 잃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가끔은 ‘길을 잃는 순간’이 더 인간적일지도 모릅니다.
위치정보가 알려주지 않는 길.
그곳에 진짜 나의 방향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