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가 새 앨범으로 '구조'하고 싶은 이는 윤하 그 자신이다.
윤하가 새 앨범으로 '구조'하고 싶은 이는 윤하 그 자신이다. < Supersonic > 이후 5년 간의 정규작 공백과 만족스럽지 못한 대중의 반응, 길어지는 작업과 팬들과의 갈등이 겹치며 '동굴 속에 들어가 있던' 자신을 다시금 세상에 내놓는 과정이다. 그래서 < RescuE >는 어둡고 조심스럽다. '오직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다(Only I can save myself)'며 조근히 다짐하는 톱 트랙 'Rescue'의 다짐이 고민 많은 아티스트의 내적 갈등을 관통한다. 소프트 EDM 타이틀 'Parade'와 끝 트랙 'Propose' 정도가 소소한 행복을 노래할 뿐이고 나머지 트랙은 진지한 고백과 애절한 메시지로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일관성을 구축했다.
그러다 보니 힙합 / 알앤비의 신예 프로듀서들을 대거 기용하며 새로운 시도에의 의지를 표명한 것에 비교해 변화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RescuE'로부터 그루비룸이 참여한 'Parade'까지 이어지는 앨범 전반부를 제외하면 이제까지 어떤 형태로든 접할 수 있었던 윤하의 모습이다. 다만 그 방향이 전에 없이 가라앉고 애잔한 형태로 발현된다는 점이 다르다. 애절한 피아노 발라드 '없던 일처럼'은 '소나기'로부터 이어오는 록 발라드의 건조하고 우울한 변용이고 'Airplane mode'의 재즈 코드도 쓸쓸함을 배가시킨다. 찰리 XCX와 뫼(MØ) 등 최신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의 'Drive'도 차분한 보컬 위에 고뇌의 메시지를 띄운 곡이다. 긴 고민의 시간이 빚어낸 윤하의 가장 어두운 모습이다.
인터뷰에서 윤하는 '장르적으로는 회귀가 아니더라도 마인드는 초기처럼 대중적인 모습이 될 것'이라 밝히며 '자아와 팬들이 원하는 음악 사이의 적절한 조절'로 앨범을 예고했다.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확실하고 곡의 개별 완성도도 좋으나 대중적 모습이나 적절한 조절은 빗나갔다. 선공개 싱글 '종이비행기'나 'Parade'는 멜로디도 매력적이지 않고 유행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오히려 올 한 해를 관통했던 '오늘 취하면' 유의 싱글 '예지몽' 이나 펑키(Funky)한 기타 리프 위에 그루브를 쌓아나가는 'Feel'같은 트랙이 트렌드에 어울린다.
'No answer'처럼 곡의 스케일을 키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답을 찾지 못한 날'과 같은 발라드도 의외의 히트가 될 수 있는데 앨범의 무게와 진지한 메시지, 건조한 보컬이 쉬운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청량한 어쿠스틱 팝 'Propose'의 마무리도 앨범 단위의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보자면 어울리지 않는 트랙이다.
단단해 보이지만 아직도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은 것이다. 'RescuE'에서 'Parade'같이 개별 곡으로는 매력이 덜하지만 앨범 단위 감상으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가 하면, 'Feel'과 'Propose'같이 싱글 단위로 튀는 흐름도 있다.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하는 네오 소울 '가'의 다음 트랙은 전형적인 윤하 스타일의 '답을 찾지 못한 날'이다. 이 모든 곡들이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앨범 단위의 평가를 높게 할 수 없는 이유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시작'이라는 점은 쓸쓸하지만, 아티스트 본인이 다시금 의지를 되찾은 것은 반갑다. 더 넓은 세상에 그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선 < RescuE >같은 해소의 작품이 필요했다. 가요계 신예들과 함께 일정 부분 새로운 형태를 흡수하며 욕심 많은 아티스트의 면모도 보여줬고, 해를 넘기지 않고 앨범을 발표한 것도 반갑다. 아티스트로의 '지난 날과 오는 날의 사이에 서'있는 윤하는 다시금 자신을 끌어올리며 '오늘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내가 다시 윤하 칭찬하면 NC로 갈아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