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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10. 2018

2018년의 미국 음악에는 미국인과 백인이 없다.


2018년 최고 히트곡은 에드 시런과 비욘세가 함께한 ‘Perfect’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아직까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서 이 곡을 끌어내린 노래가 없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5주째 쭉 1위를 이어온 이 곡은  ‘Shape of you’가 그러했듯 장기 집권의 꿈을 꾸고 있다. 새해 벽두의 첫 히트 싱글이 포크 송이라니.  


그러나 시선을 며칠 전 지난해로 돌려보면 어딘가 많이 외로워 보이는 독주다. 2017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백인 아티스트는 에드 시런과 더불어 포스트 말론, 테일러 스위프트, 루이스 폰시 딱 네 명뿐이었다. 게다가 ‘Rockstar’를 내건 포스트 말론은 힙합 아티스트고 루이스 폰시는 레게톤의 제왕, 라틴 팝의 슈퍼스타다. 



전통적인 ‘록’의 개념으로는 에드 시런이 유일한데 그마저 ‘Perfect’의 싱글 버전에는 ‘퀸’ 비욘세가 피쳐링했고 ‘Shape of you’는 뭄바톤울 이식받은 곡이다. 디제이 칼리드, 미고스, 카디 비, 포스트 말론, 켄드릭 라마가 득세하는 사이에서 백인 포크 아티스트가 살아남으려면 뼈와 살을 내주고 최소한의 어쿠스틱 기타만을 남겨야 하는 현실이다.


차트 현황을 살펴보면 그 괴리는 훨씬 심하다. 1위부터 10위까지 에드 시런을 제외한 백인 밴드는 이매진 드래곤스 한 팀에 불과하고, 그 곡인 ‘Thunder’도 록이라기보다는 신스 팝이다. 9위에 랭크된 할시(Halsey) 역시 일렉트로 팝 아티스트다. 역시 백인이지만 지이지(G-Easy)는 랩을 하고 샘 스미스는 레트로 소울 가수이며 릴 펌은 구찌 갱 구찌 갱을 외치는 힙합의 뉴 언더그라운드 세대다.


급속히 진행된 팝의 다국적화로 주류 차트에서 '미국 태생의 백인 아티스트'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됐다. 2016년 저스틴 비버와 드레이크, 더 위켄드와 알레시아 카라를 앞세운 캐나다가 팝 차트를 좌지우지했고 지난해는 에드 시런과 샘 스미스가 선전했지만 그들은 영국의 아티스트다. 장르적으로도 테일러 스위프트나 할시, 두아 리파나 이매진 드래곤스 등의 신스 팝이 그나마 버티고 있을 뿐 록은 찾기 어렵다. 미국의 자존심 컨트리 음악도 약세다. 1994년 신예 샘 헌트(Sam Hunt)가 'Body like a back road'로 잠시 히트한 것이 주류 차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컨트리의 흔적이다. 



상업적으로도 참패지만 평단의 냉대는 더욱 싸늘하다. 이번 60회 그래미 어워즈는 사상 처음으로 본상 4개 부문 중 ‘레코드 오브 더 이어’에 백인 후보와 록을 외면했다 (‘Despacito’는 제외). 올 해의 앨범, 올 해의 노래, 올 해의 신인 부문에서 이름을 올린 건 ‘Issues’의 줄리아 마이클스와 < Melodrama >의 로드뿐이다. 브루노 마스, 차일디쉬 감비노, 제이지, 켄드릭 라마, 로직, SZA, 칼리드, 알레시아 카라가 대신 그 자리에 있다. 아무리 좋은 힙합, 소울 앨범과 노래가 나와도 백인 아티스트가 아니면 끝끝내 외면하던 그래미마저 손을 들었다. 이제 백인 밴드와 솔로 아티스트들은 지난날 힙합과 R&B 장르가 그러했듯 ‘팝 부문’, '록 부문'에 외로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음악 매체의 평가를 종합하는 음악계의 메타크리틱(Metacritic) < 앨범오브더이어(Albumoftheyear) >의 전문가 점수 상위 앨범 중 '록' 앨범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은 루츠 록 아티스트 발레리 쥰의 < The Order of Time >과 인디 밴드 바가본(Vagabon)의 < Infinite Worlds >뿐이다. 보수적인 매거진 < 롤링 스톤 >조차 1위부터 10위까지 앨범 중 U2와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 케샤를 제외하면 록 앨범이 없다. 바로 그 백인-록의 상징적 인물인 유투조차도 '밀실거래'를 통해 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으로 체면을 구겼다.



록 밴드들은 2010년대 초 일렉트로닉의 대대적 유행으로 1980년대 신스 팝의 줄기를 다시 따라가면서 그 활력을 다수 잃었다. 이 새로운 유행은 최첨단 기술의 보급으로도 연결되며 장르의 세대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과거엔 친구들과 함께 차고(개러지)에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은 방에 누워 아이패드로 비트를 찍고, 홈마이크로 보컬을 녹음하며 셀프 프로듀싱을 해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청취자를 확보한다. 그 비어버린 젊음의 수요를 감각적이고 직설적이며 글로벌화된 힙합과 일렉트로닉이 완전히 점령했고, 지난해에는 'Despacito'의 라틴 팝까지 가세하면서 컨트리나 록 밴드 포맷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시아(Sia)와 로드, 할시같은 독창적인 캐릭터의 솔로 싱어송라이터 정도가 살아남아있다. 


1990년대 중반에도 2000년대 중반에도 주류 차트는 힙합과 R&B 소울이 강세였지만 지금처럼 백인 아티스트들이 차트 전반은 물론 평단에서까지 힘을 못 쓰는 경우는 없었다.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 속에 능동적이지 못했던 록은 점차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가고, 더 이상 백인들은 악기를 잡지 않는다. 마이크를 들거나 아이패드를 들거나, 로직과 에이블톤 라이브로 비트를 찍는다. 도널드 트럼프와 'Perfect'가 지배하는 2018년의 미국 음악엔 미국인과 백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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