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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12. 2018

무라 마사(Mura Masa) 내한 공연

열탕과 냉탕을 오갔다. 

지난해 일찌감치 매진된 무라 마사의 내한 공연 날이 드디어 왔다. 지난 1월 3일 홍대 무브 홀 앞에서 길게 줄을 선 관객들은 최장 4개월 동안 이 영국의 신성 프로듀서가 한국에서 화려한 셋 리스트를 펼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들이었다. 저녁 7시부터 게스트 공연이 시작됐지만 정작 주인공은 22시에 등장하는 셋 리스트라 넉넉할 법도 한데 공연장 지하로 내려가는 데만 3~40분 이상이 소요될 정도였다. 일본도(刀) 장인의 특이한 이름과 웡키, 퓨처 베이스, 트랩을 절묘하게 섞은 선명한 멜로디의 팝으로 이름을 알린 이 신인으로 2018년의 첫 공연 후기를 장식하고픈 관객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무라 마사 이야기를 풀기 전 오프닝 공연을 맡았던 '무서운 신인' 예지를 짚고 넘어가자. 이미 12월 29일 헨즈 클럽에서 압도적인 인파(!!)와 함께 성공적인 고국 데뷔를 일궈낸 예지는 왜 자신이 세간의 주목을 끌어모으는지를 또 한 번 증명해냈다. 오프닝 공연인지라 40분 정도의 진행이었지만 특유의 끼와 개성만으로도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라이브 셋이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그 라이브가 정말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부르는 정도에 그쳤다는 건 흠. 

정적인 플레이 대신 콘서트라는 무대 특성을 고려한 듯 무대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합창을 유도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대표곡 'Raingurl'과'Drinkin' i'm sippin' on'의 '떼창'은 기대 그 이상. 지난 클럽 공연보다 훨씬 쾌적하고 넓은 환경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훌륭한 오프닝이었다. 레드 벨벳과 다프트 펑크를 단 하나 연관도 없이 틀어대던 앞의 오프닝 DJ들의 만행과 비교되어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이후 드디어 우레와 같은 성화와 함께 오늘의 주인공 무라 마사가 테이블 앞에서 헤드폰을 꼈다. 그러나 오직 그만을 애타게 기다린 관객들은 초반 30분 동안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고개만 까딱일 수밖에 없었다. 성급하게 히트곡을 풀어내는 대신 무라 마사는 묵묵히 조명 없는 어둠 속에 퓨처 베이스, 덥스텝 등 간결한 리듬감 위주의 하우스 셋으로 초반을 진행했다. 

'Firefly'나 'Love$ick'같은 싱글 히트, 정규 앨범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저조한 호응에 심지어는 공연장을 떠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중간중간 캐시미어 캣(Cashmere Cat)의 'Mirror maru'나 디자이너(Desiigner)와의 'All around the world', 고릴라즈(Gorillaz)의 'Dare'나 핫한 프로듀서 샘 겔레이트리(Sam Gellaitry) 등 즐길 요소들은 많았으나 좀처럼 관객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대부분 곡을 모르는 분위기였다. 어중간한 느낌의 어색한 광경이었다. 

반전은 정규 앨범의 1등 공신 R&B 싱어 본자이(Bonzai)의 등장이었다. 그야말로 깜짝 나타나 화끈한 무대 매너로 'Nuggets'를 부르며 등장한 그의 퍼포먼스에 식어있던 열기가 되살아났다. 이후 무라 마사는 본인의 히트곡과 에디트, 리믹스를 섞어가며 능숙한 완급조절과 신선한 선곡을 선보였다. 초창기 싱글 'Lotus eater'와 'Firefly'는 물론 카이트라나다(Kaytranada)나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e), 플룸(Flume)같은 동료 프로듀서들,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드레이크 & 퓨처같은 트랩 힙합, 올 더티 바스타즈와 아웃캐스트, 심지어는 마이클 잭슨(!)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구성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관객 반응은 저조했다. 'What if i go?'나 'Love$ick'에는 열광하면서도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나 아웃캐스트의 'Mrs. jackson'엔 잠잠했다. 결국 무라 마사는 멈댄스 리믹스(Mumdance Remix) 버전으로 분위기를 약간 달군 다음 처음으로 무대 앞에서 호응을 유도한 'Love$ick'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났다. 10여분 간 '1 night'을 애타게 연호하던 팬들의 앵콜 요청도 소용없었다. 


무라 마사의 셋은 초반부 지루함은 있었어도 훌륭했다. 뻔한 히트곡 메들리를 피했고 트렌드와 올드 스쿨의 적절한 안배도 갖췄으며 특히 본자이가 합세한 중후반부터는 페스티벌 셋이라 해도 손색없는 정교한 에너지의 이어가기가 돋보였다. 오프닝 공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1 night'을 원곡 그대로 틀던 한심한 DJ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의 실력이 두드러졌다. 

문제는 괴리였다. 클럽과 공연장 사이 어딘가 같은 무브홀에 모인 관객들 역시 무라 마사의 몇몇 히트 싱글과 정규 앨범, 또는 그런 '힙'한 퓨처 베이스 디제이들을 듣는 이들과 장르의 마니아들이 섞여있었다. 음악을 즐기기보다는 무라 마사가 만들어내는 그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메인 싱글, 대표곡이 아닌 곡에 대한 호응이 없으니 분위기는 열탕과 냉탕을 오갔다. 

무브홀을 나오며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이나 SNS 상 후기를 보면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지만 아티스트 본인의 만족도는 장담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팬들과 무라 마사 각각의 시선 차이가 만든 어색함이 찝찝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2018년의 첫 공연이 그렇게 지나갔다. 


Fake Virgin Seoul 
PHOTO BY JA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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