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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30. 2018

표절로 시작된 2018 가요계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


2018년 엠넷 엠카운트다운의 첫 1위를 차지한 곡은 모모랜드의 '뿜뿜'이었다. 가요계 빅 네임들의 연초 공백기와 발랄한 TV 광고로 인지도를 얻은 멤버 주이의 활약, 지난해 말을 강타한 유행어 '그뤠잇'을 적극 활용해 잠시나마 가요 프로그램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며칠 전 러시아 그룹 세레브로(Serebro)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곡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의 클럽이든 현재의 유흥가든 TV 프로그램에서든 한번쯤은 들어봤을 'Mi mi mi'가 바로 그것. 그러나 작곡가 신사동호랭이와 범이낭이는 '장르적 유사성과 기타 리프는 똑같지만 코드 진행과 멜로디가 다르다'며 사실을 부인했다. 많이 들어본 해명이다.


이윽고 '주인공'으로 컴백한 선미가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국의 팝 스타 셰릴 콜의 'Fight for this love'의 메인 멜로디와 뮤직비디오 콘셉트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한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표절 진위 여부가 올라오는 등 뜨거운 논란이 되었으나 작곡가 테디는 '100% 창작물'이라는 짤막한 답변을 내놨다. 이후 코드 진행과 멜로디, 리듬의 보편성을 들어 표절이 아님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인공'은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순항 중이다. 


대한민국 가요계는 표절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이런 유사한 논리와 무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최대한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언급 자체를 피하면서 논란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세세한 코드 진행과 멜로디의 보편성을 들어 전문가의 영역으로 논란을 끌고 들어가는 전략이다. 


첫번째는 그들의 직업관이 그 정도인 것이므로 뻔뻔하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두번째에 다다라서는 대중의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화성학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남의 것을 베낄 때 문장 하나, 부호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가져오면 들킨다는 걸 안다. 만약 어떤 작곡가가 어떤 곡이 마음에 들어 그 곡을 들키지 않고 가져오기로 했다면, 표절이라는 끔찍한 낙인을 피해 여러가지 변형을 가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대놓고 번안을 하지 않는 이상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다. 전문가인 척하지만 표절을 옹호하는 변명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표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팝 가수 라나 델 레이와 라디오헤드 간의 표절 논란이 이슈가 되었다. 라나의 새 앨범 < Lust For Life >의 마지막 트랙 'Get free'가 라디오헤드의 대표곡 'Creep'을 베꼈다는 이유로 로열티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라나 델 레이는 '나는 그 곡에 전혀 연관되지 않았는데 라디오헤드가 100% 로열티를 달라고 했다.'며 변호사들이 '가차없다(Relentless)'라는 트윗을 남겼다. 물론 라디오헤드의 'Creep' 역시 더 홀리스(The Hollies)의 'That air that I breathe'와 유사하다는 의혹을 받는 곡이라 코미디긴 하지만 현지 여론은 싸늘했다.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가 마빈 게이의 'Got to give it up' 표절임을 밝힌 변호사 리처드 부시는 '의도는 저작권 분쟁에 있어 증거가 되지 못한다. 무의식적 표절(subconcious copying)도 어찌 됐든 책임을 져야 할 표절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무의식적 표절' 개념은 조지 해리슨의 대표곡 'My sweet lord'가 표절 판정을 받으면서 공식화되었다. 비록 그 곡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나온 멜로디가 유사하다면 그 또한 표절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 예전 로드 스튜어트부터 앞서 언급했던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도 자유롭지 못했고 샘 스미스도 메가 히트곡의 로열티를 내줘야 했다. 특히 샘 스미스는 'Stay with me'가 참고했다는 톰 페티의 'I won't let down'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판결은 냉정했다. 그러나 이들 '무의식적 표절'의 혐의를 받은 이들은 당사자와 신속한 협의를 통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을 만들지 않았고, 대중 또한 고의가 아닌 점을 들어 질타하지 않았다. 



신사동호랭이와 테디의 변명은 논쟁이 들어오고 나서 만들어낸 후차적 개념이다.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야 곡의 코드 진행과 멜로디 라인을 꺼낸다. 당연히 'Get free'와 'Creep'의 코드는 다르다. 'Stay with me'와 'I won't let down'도 곡의 테마부터 코드 진행까지 완벽히 다른 곡이다. 그런데도 표절 판정을 내리는 것이 냉정한 팝 시장이다. 한국의 경우는? 작곡가는 철면피로 응답하고 전문가들은 생소한 개념을 들어 이들을 방어하기 바쁘다. 진짜 창작자라면 단 1% 의혹이 있어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당당한 태도다. 가요계 숱하게 자행되어왔던 표절에 제대로 책임을 지우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교묘한 레퍼런스와 눈속임으로 창작의 한계를 포장하는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  

 

유독 레퍼런스 논란과 표절 의혹이 많은 연초의 가요계는 또 다시 잠잠해져가고 있다. 그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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