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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04. 2018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슈퍼볼,
니플게이트의 기억

과거 엔싱크 멤버나 자넷 잭슨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한국 시각 2월 5일 미국 미식축구 프로 리그(NFL) 결승전 슈퍼볼의 하프타임 쇼 주인공은 저스틴 팀버레이크다. 2월 2일 5년 만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an Of The Woods >를 발표하며 음악적 공백을 깬 그는 지난해 10월 슈퍼볼 메인 이벤터로 호명되며 2004년 이후 14년 만에 다시 꿈의 무대를 밟게 됐다. 그런데 미식축구는 몰라도 하프타임 쇼는 챙겨보는 음악 팬들에게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이름은 달갑지가 않다. 그는 2004년을 뒤흔들었던 니플게이트(Nipplegate)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04년 슈퍼볼 메인 이벤터는 자넷 잭슨이었다. 자넷 잭슨이 누군가. 한국에선 저평가받아도 전 세계 1억 장 판매고를 기록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마돈나의 유일한 라이벌이었고 1982년 데뷔 후 지금까지 휴식 없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0년대가 지나고 밀레니엄의 새해가 밝으며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이 부진할 때도 2001년 < All For You >로 8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아티스트가 자넷 잭슨이다. 


그런 자넷 잭슨의 커리어를 박살 낸 장본인이 저스틴 팀버레이크다. 2001년 엔싱크로 슈퍼볼 무대에 올랐던 그는  < Justified > 솔로 앨범 발매 후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 게스트로 등장해 자넷과 퍼포먼스를 벌이던 와중, '이 노래 끝에 널 벗겨버릴 거니까'라는 마지막 구절을 부르며 자넷 잭슨의 겉옷을 뜯어버렸다. 적어도 1억 명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자넷 잭슨의 맨가슴이 노출됐다. 


전례가 없던 사건이라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2004년 구글의 검색어 1위가 자넷 잭슨이었으니 말 다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행동이 의도된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는지 즉흥적인 애드리브이었는지도 불분명했고 사전에 어느 방송사 하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도 수상했다. 


그런데 집중포화를 받은 건 자넷 잭슨이었다. 수많은 학부모 단체, 사회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방송국은 자넷 잭슨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라크에서 늪에 빠진 부시 행정부는 여론을 돌릴 대상이 필요했고, 가십을 쏟아내는 언론과 은근한 차별주의자들에게도 '흑인 여성 아티스트'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 해 그래미는 자넷 잭슨의 축하 무대를 일방적으로 해지했고 벌금까지 물게 하였으며 각종 라디오 채널과 TV 프로그램의 보이콧이 이어졌다. 해명과 사과를 거듭하면서 음악 활동은 끝났다. 이윽고 발매된 < Damita Jo >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으며 이후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는 아득한 위치로까지 추락하게 됐다. 2015년의 < Unbreakable >로 명예를 회복하기 전까지 자넷 잭슨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금기어였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2년 후에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미 그는 2004년 자넷 잭슨이 거부당한 그래미에서 멋진 무대를 가졌고, < Futuresex / Lovesounds >로 팝의 중심부에 화려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미국은 여자에게 더 잔인하고, 유색인종에게도 불공정하다.'라는 발언을 남겼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승승장구했다. 성공적인 앨범을 냈고, 각종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셀러브리티로 성장했다. 자넷 잭슨이 소속사 프로모션도 받지 못해 사비로 앨범 홍보를 진행할 때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호화 프로듀서 진을 구성하고 장대한 아티스트의 꿈을 키웠다. 


이 불공평한 결과는 저스틴이 슈퍼볼 메인 이벤터로 돌아오며 다시금 논란이 됐다. 2018 슈퍼볼 메인 이벤터가 발표되자 트위터에선 '자넷에게 정의를(#justiceforjanet)'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고 자넷 잭슨도 슈퍼볼에 초청받을 자격이 있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미식축구협회(NFL)는 자넷 잭슨의 초청을 허가했지만 며칠 전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과거 엔싱크 멤버나 자넷 잭슨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보기에 불건전한 퍼포먼스는 없을 것'이라며 향후 제기될 논란을 일축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때 당시의 성급한 행동과 옳지 못했던 대처를 반성'한다며 사과를 남겼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인 자넷 잭슨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는 얼마 전 성추행 혐의로 논란인 감독 우디 앨런의 영화 < 애니 휠 >에 출연했음에도 '그 논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대관식과 같은 무대다. 마이클 잭슨이 서막을 열었고 브루노 마스를 최고 자리에 올렸으며 부진하던 레이디 가가를 부활시켰다. 음악, 영화, 텔레비전을 모두 섭렵하며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인정받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는 이번 하프 타임 쇼가 둘도 없을 기회다. 


그러나 그는 한 명의 전설을 추락시켰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진정성 있는 반성도 하지 않았다. 영리한 엔터테이너지만 옹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일까, 경기보다도 공연이 더 기다려졌던 예년과 달리 올해 하프타임 쇼는 큰 기대가 되질 않는다. 때마침 피치포크(Pitchfork)는 < Man Of The Woods >에 10점 만점에 3.8점을 선사하며 대굴욕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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