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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21. 2018

치밀한 여백의 소리,
디 엑스엑스(The XX) 내한

총천연의 미니멀리즘 세계를 열었다.


작년 7월 <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 (Holidayland Festival) >의 메인 아티스트로 여름밤을 쿨 하게 달궜던 디 엑스엑스(The XX)가 7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 공연은 작년 1월 발매한 그들의 세번째 앨범 < I See You > 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당시 난지 한강공원 야외무대에서의 잔향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이전 공연과 비교해가면서 더 즐길 거리가 많겠구나 싶으면서도 '이 넓은 무대를 다 채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었다. 평일 저녁 8시의 올림픽공원은 결코 좋은 시간과 장소는 아니니까. 다행히 경기장 주변은 한정 판매하는 굿즈를 사려는 팬들로 북적였고, 2500여 명의 관객들도 객석을 가득 채웠다.

세팅 문제로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고 나자 무대의 불이 모두 꺼지면서 웅장한 'Dangerous'의 트럼펫 전주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선명한 광채 속에서 공간을 울리는 비트와 깊고 달콤한 목소리, 영롱한 기타 소리가 그들의 상징, 총천연의 미니멀리즘 세계를 열었다. 이윽고 라이브 드럼 연주와 두 보컬 라인이 켜켜이 긴장을 쌓아나간 'Crystalised'를 거쳐 'Say something loving'까지의 오프닝을 끝낸 후 밴드가 처음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줍은 제이미 스미스(Jamie Smith)와 로미 매들리 크로프트(Romy Madley Croft)는 미소를 지었고, 올리버 심(Oliver Sim)이 '< I See You >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여러분과 함께해서 기쁘다'라며 차분한 감사를 전했다. 
                                                      

▶로미 매들리 크로프트(Romy Madley Croft)


이어 지난 페스티벌에선 들을 수 없었던 'Heart skipped a beat'와 2집 < Coexist >의 수록곡 'Sunset', 'Reunion'을 연이어 연주한 밴드는 'A violent noise'의 몽롱한 기타 인트로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는데, 로미가 좀처럼 기타 톤을 잡지 못하며 물 흐르듯 이어지던 흐름이 끊기고 만 것이다. 올바르게 연주를 하는데도 음이 맞지 않으니 당사자 로미는 물론 밴드 멤버들도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이후 기타를 교체하고 다시 도입부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몇 번의 실수를 더 거치고 나서야 곡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 투어 과정에서 장비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이 거짓으로 들리진 않았지만 거듭된 실수는 지난 페스티벌 막바지의 'Angles' 실수로만 두고 넘기기는 석연찮은 대목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후 밴드가 이를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정도의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A violent noise' 직후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깔리면서 멤버들의 목소리만 온전히 남겨둔 'I dare you'가 특히 압권이었는데, 지난 페스티벌에서 1절만으로 맛보기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온전한 한 곡을 피아노 발라드로 꾸며냈다. 목소리와 피아노, 그리고 관중의 합창만이 남겨진 공연장은 묘한 여백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 차 올랐다. 이후 로미 혼자서 곡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Performance'에서도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단지 장비의 문제였음을 증명하고, 완벽한 강약의 조절로 절정에 다가가는 'Infinity'와 'Replica'를 통해 라이브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새로이 선사했다. 
                                                        

▶올리버 심(Oliver Sim)


팬들의 휴대폰 플래시 불빛으로 환하게 빛난 'VCR'이 끝나고 올리버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하나하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뒤편 사운드 디렉팅 구역으로 넘어온 올리버는 로미와 마주 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에 없던 동적인 퍼포먼스에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능숙하게 '내일이 발렌타인데이죠. 연인 분들도 많이 왔나요? 당신들을 위한 노래는 아닙니다.'라 농담을 던지며 자연스럽게'Fiction'을 시작했다. 무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팬과 함께 어우러지는 올리버의 모습은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광경이었다. 

이후 제이미 엑스엑스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Loud places'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고, 이어지는 제이미의 믹스 셋으로 거대한 하우스 클럽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 I See You >의 타이틀 'On hold'가 찬란하게 빛을 내며 마지막을 밝혔다. 쪽지를 꺼내 긴 투어를 함께한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밴드는 'Angles'를 끝으로 1시간 30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제이미 스미스(Jamie Smith) a.k.a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너무 잘하는데?'의 탄성과 '라이브는 또 다르네'의 감탄을 이끌어낸 공연이었다. 세계적인 재능에는 이유가 있다는 듯, 디 엑스엑스는 최소한의 소리와 여백, 침묵을 조율하여 거대한 감동으로 엮어내는 재능을 맘껏 발산했다. 전체적 분위기는 페스티벌 무대와 비슷했지만 단독 공연으로 조우하는 이들은 또 달랐다. 공연장에 모인 팬들은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했고, 밴드 또한 세 번째로 방문한 한국에 진심으로 애정을 표했다.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이 끝나고 나선 화요일 밤의 드넓은 올림픽공원은 유독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사진 제공 =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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