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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08. 2018

'당연한 권리'를 위해 폭로하다.
< 더 포스트 >

굳건한 자, 부끄럽지 않은 자는 결국 승리한다.


스필버그의 시선은 묵직하다. 국가적 단위의 기만과 보이지 않는 거대 권력에의 저항을 담는 데 있어 결코 과잉되지 않는다. 쇼트는 칼 같고 전개는 군데 없이 깔끔하다. 베테랑의 노련한 손길이다. 그러면서도 명료한 메시지를 진중하게 전달한다.


< 더 포스트 >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던 시대'를 거절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옥 같은 정글 속으로 아들과 형제들을 밀어 넣었던 사람들은 '미국의 승리'를 위해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은 백악관의 권력자들과 파티를 즐겼다. 모두가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다. 20여 년을 끌어온 추악한 거짓말이 들통났음에도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법으로 막으려 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시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사진들의 불신을 사고 CEO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미국의 1960년대는 그런 때였다.



일개 지역 신문이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캐서린 그레이엄은 구습에 저항한다. 밥은 뉴욕타임스에 특종 기사를 빼앗긴 것이 분했고 캐서린은 애초에 이 사태 자체에 관심조차 없었을뿐더러 펜타곤 페이퍼의 장본인 로버트 맥나마라와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들의 뻔뻔한 기만을 취재하며 이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정당하게 가져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음을 서서히 깨달아간다. 


국민들은 명분 없고 실리 없는 전쟁에 끌려가 정글 속에서 죽어갈 필요가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었어야 했다. 언론은 당연히 권력을 감시해야 했다. CEO의 성별은 그 회사의 평판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했다. 이런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장과 의심을 거쳐, 부당한 정부의 권력을 피해 살아남아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가만히 있지 않았던 이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 진실을 보도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또한 건설 중이다.



< 스파이 브릿지 >에서 스필버그는 이념의 벽보 다도 숭고한 인간의 삶, 신념의 가치를 주목했다. < 더 포스트 > 역시 정의와 자유에 대한, 지극히 미국적인 드라마다. 미국을 대표하는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의 쌍두마차 캐스팅부터가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아직까지도 완전하지 못한 언론의 자유, 권력에의 견제, 여성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21세기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인들에게 < 더 포스트 >는 희망과도 같은 영화다. 굳건한 자, 부끄럽지 않은 자는 결국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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