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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10. 2018

따가운 현실 속 천진한 웃음,
플로리다 프로젝트

무지개 끝의 황금을 찾아 달리는 아이들.

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 Algernon Charles Swinburne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은 천국을 닮아간다. 낡아빠진 3류 모텔과 다 무너져가는 버려진 집, 마약 연기 자욱하고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삶일지라도 천진한 아이들의 눈엔 '마법의 성(매직 캐슬)'과 '퓨처 랜드'다. 1990년대 유아 프로그램 < 바니와 친구들 >의 공룡 바니를 닮은 보랏빛 세상에서, 다음 장난을 궁리하는 해맑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분)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분)가 뛰어간 자리엔 쿨 앤 더 갱의 'Celebration'이 흥겹게 흐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Florida Project)'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시행하는 홈리스 보조금 정책의 이름이다. 무니와 스쿠티에겐 '집'이 없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무니의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분) 같은 어른들은 모텔 방을 전전하며 위태로운 일상을 이어나간다. 무겁다 못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밝은 것은 아이들 뿐이다. 힘겨운 삶 속에도 무니와 스쿠티, 젠시의 해맑은 웃음과 지칠 새 없는 에너지는 전혀 주눅들 새가 없다.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 맞은편, 형형색색 화려한 색채의 건물들, 따갑게 내려쬐는 플로리다의 햇살, 그 아래 밝디 밝은 아이들은 어둡고 칙칙한 어른들의 현실 속에서 유일한 생기가 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들을 무조건 동정하지도 않고, 가벼운 흥밋거리로 삼지도 않는다. 마약에 찌들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핼리지만 무니와의 일상은 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이들도 어른들의 힘든 삶을 모르지 않지만 곳곳에 펼쳐진 '마법 같은 모험'을 찾을 시간도 모자란다. '쓰러졌지만 다시 자라난' 나무 위에서 그들만의 소중한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무니와 젠시를 어떻게 측은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정말 최악의 경우를 막아줄 뿐 그 이상은 해주지 못해 긴 한숨을 내쉬지만, 따뜻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바비(윌렘 데포 분)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피폐한 삶에도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 영롱함은 서늘한 현실 그늘 속에 위태롭기만 하다.


코엔 형제는 아이들의 삶 속에 처절한 현실의 굴레를 기어코 씌웠을 것이고, 웨스 앤더슨은 비현실적 동화 속의 아이들을 보다 우아하고 예쁘게 그렸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는 선한 어른들의 존재가 종국의 희망을 인도했을지 모른다. 기성과 다른 션 베이커의 시선은 새롭다. 우울한 현실은 아이들에게 걸쭉한 육두문자를 가르쳤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같은 방에서 매춘을 하며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차로 사람을 치고 간다. 그러나 조그만 행복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운 아이들에게 어둠을 찾기란 어렵다. '무지개 끝의 황금'을 찾으러 달려 나가는 무니와 젠시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어떻게 슬프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깊은 애정으로 빚은 '어린이의 시선'엔 감정과잉, 강압적 메시지 없이 투명하다. 그저 바라보고, 지켜본다. 


그 '응시'가 마지막 장면, 그 어떤 순간에도 울지 않았던 무니의 서글픈 눈물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너무 울어 말조차 채 이어가지 못하는 무니에게 영화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가깝지만 아주 먼, 말 그대로 '환상의 나라'인 디즈니랜드로 달려가는 것뿐이다. 누구도 이 아이들의 미래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씁쓸하게 담배만 피우는 바비처럼, 사회는 정말 최악의 상황만을 막아주는 정도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도 디즈니랜드 같은 동화의 나라가 있고, 111분 중 110분을 차지하는 찬란한 웃음과 즐거움이 있다. 


그들의 아름다운 나라가 현실의 대군에 너무 빨리 무너져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미 그런 세상을 만들어버린 우리 어른들의 책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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