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 표현으로 논란을 불러온 에미넴의 새 앨범
‘슬림 셰이디’의 추락엔 날개가 없다. 지난해 10월 BET 시상식에서 프리스타일 랩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격파할 때만 해도 에미넴은 살아있는 전설이자 힙합 씬의 든든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발매한 < Revival >이 만장일치 최악의 앨범으로 손꼽히며 수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 기습 발매한 앨범 < Kamikaze >는 또 다른 커다란 논란을 불러왔다. 미진한 음악 완성도는 물론 도덕적 영역에서의 비판이기에 타격이 더욱 크다. 사건의 발단은 신보의 수록곡 ‘Fall’이다. 앨범 전체에 걸쳐 전작에의 혹평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현 세대 힙합 아티스트들을 디스하는 에미넴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썼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지난해 < Revival >의 ‘Walk on water’를 ‘끔찍한 곡‘이라 디스하며 미움을 산 바 있다.
‘타일러는 아무것도 못 만들지. 왜 스스로 Faggot이라 했는지 알겠네.’ (Tyler create nothin’, I see why you called yourself a faggot)
‘Faggot’은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여 일컫는 단어다. 굳이 해석하자면 ‘호모X끼’ 정도의 심한 모욕이다. 당장 에미넴은 2000년 < The Marshall Matters LP >의 마지막 트랙 ‘Criminal’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그러나 그때는 엘튼 존과 ‘Stan’ 합동 무대를 꾸리며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는 현시대에서 ‘Faggot‘이라는 단어가 불러올,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반발을 예상하진 못했던 것 같다. 혹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또한 과거 숱하게 ‘Faggot’을 남발했던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타일러는 지난 앨범 < Flower Boy >를 통해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하며 그간의 단어 선택이 역설적 장치이자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음을 드러낸 바 있다. 흑인 래퍼가 자신을 ‘Nigga’라 일컫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타 인종이 흑인을 두고 ‘Nigga’라 하면 모욕이 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 때문에 지금의 에미넴은 각종 소셜 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 더 인디펜던트 >지는 ‘동성애 혐오 표현으로만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에미넴은 당장 은퇴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고, < 빌보드 >는 ‘에미넴은 본인의 단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한 논조의 비판을 특필했다. 그중에서도 인기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의 보컬 댄 레이놀즈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제는 Faggot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선 안 되는 시대다. 에미넴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 단어가 에미넴에게 어떤 의미인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혐오 단어를 거부하는 것이 민감한 일인가?’ 라 일갈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프라이드(Pride)’로 대표되는 LGBTQ 커뮤니티와의 지지와 연대는 대중음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숱한 음악 매체들이 프라이드 운동을 기념하며 무지갯빛 물결을 타이틀에 새기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소셜 미디어와 작품을 통해 억압받는 소수와의 동행을 용감히 노래하는 시대다. 에미넴의 안일한 단어 선택은 분명 경솔했다.
< Kamikaze >에서 에미넴은 ‘숙적‘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릴 야티, 머신 건 켈리 등 신예 아티스트들부터 최고의 스타 드레이크에게까지 날을 겨눴다. 과거 ‘슬림 셰이디’라는 가상의 인격으로 팝 스타들을 거침없이 공격하던 악동 시절을 다시 불러와 전작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잘못된 단어 선택으로 인해 에미넴은 여전히 그의 의식 수준이 2000년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 꼴이 되어버렸다. < Revival >보다는 훨씬 들을만한 앨범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성적은 좋지만 여론은 오히려 더욱 나빠졌다. 2018년 슬림 셰이디의 독설은 과거처럼 재치있는 ‘돌려 까기’보단 타이틀대로 ‘무의미한 자살 공격‘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