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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06. 2018

모두에게 단비를 내린 트위터 소녀의 ‘아프리카’

위저 커버로 다시금 주류에 등장한 1980년대 명곡 ‘Africa’

무려 36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주류 차트에 다시 등장한 곡이 있다. 1977년 결성되어 1980년대를 휩쓸었던 미국 밴드 토토(Toto)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명곡 'Africa'가 바로 그 주인공. 이미 발매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이 공전의 히트곡은 36년이 지난 2018년 다시금 86위로 차트 진입에 성공했다. 물론 원작자 버전은 아니고, 캘리포니아 출신 펑크 밴드 위저(Weezer)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위저의 재해석은 처음이 아니다.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 블랙 사바스의 ‘War Pigs’같은 진중한 곡들도 밴드 특유의 키치한 컬러로 바꿔 놓은 전력이 있다. 2013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에선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한국어 가사 그대로 부르는 등,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팀 컬러를 바탕으로 과감한 커버를 통해 넓은 음악 역량을 과시하는 걸 즐기는 밴드기도 하다.  

그럼에도 ‘Africa’가 독특한 것은 그 작업의 계기가 일반적인 리메이크의 단계 - 아티스트 간의 친분 / 레전드 밴드에 대한 헌사 - 를 밟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줄기차게 트위터를 통해 토토의 명곡을 커버해달라고 요청한 이는 유명인이나 록스타가 아닌, 15살의 소녀팬 메리 클림이었다. 왜 많은 밴드 중에 토토를, 그리고 ‘Africa’를 골랐냐고?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빅 히트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 속 장면에 그 노래가 나왔기 때문이다.


위저에게 ‘Africa’ 커버를 트위터 멘션으로 남긴 주인공 메리 클림

아무튼 미국의 여타 십대들처럼 메리는 ‘위저가 토토의 아프리카를 커버하다’라는 이름의 캠페인 계정을 만들었고, 노래 가사를 인용한 ‘아프리카에 비가 내리게 해주세요(Bless the rain down in Africa)’라는 멘션을 위저와 팀의 리더 리버스 쿼모에게 꾸준히 보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한 마디에 불과했던 이 캠페인은 밴드 드러머 패트릭 윌슨의 눈에 띄었고, 어느새 계정 팔로워는 20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부턴 일사천리로, ‘재미삼아’ 커버해 본 ‘Rosanna’ 다음 ‘Africa’가 공개됐다.
 
메리의 작은 꿈이 가사 그대로 모두에게 단비를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곡을 리메이크한 위저는 아이튠즈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것도 모자라 무려 9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하며 그들의 커리어를 새로 썼다.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트위터 요청을 새긴 커버의 한정판 LP까지 발매했다. 데뷔 40주년 투어 중인 토토는 멤버 전원이 메리 클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영상으로 전하며 다시금 주류 미디어의 관심을 만끽했고, 후배 위저에게는 보답으로 ‘Hash pipe’ 커버를 선사했다.

이 대유행에서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Africa’가 인터넷 상에서 은근한 인기를 누리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필수요소’ 쯤 되는 곡이었다는 사실이다. 매 시간마다 ‘Africa’의 가사를 한줄씩 게시하는 트위터 계정 팔로워가 4만 5천명이고, 이 노래 뮤직비디오만 하루종일 재생되는 홈페이지도 생겼다. < 기묘한 이야기 >의 1980년대 플레이리스트 중 유독 ‘Africa’만 인터넷 히트를 기록했다. 메리의 ‘Africa’ 커버 요청은 완전한 우연보단 은연의 결과였다.


왜 2018년의 인터넷 유저들은 하고 많은 1980년대 곡 중 왜 ‘Africa’에 끌린 걸까. 미국 디지털 전문지 바이스(Vice)는 그 원인을 정교함 속 단순함에서 찾는다. 토토는 팝 역사상 가장 정교한 연주력을 갖춘 밴드였으나 그 메시지는 여타 1980년대 소프트 록 밴드들처럼 통속적이었고 깊은 고민이나 사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아이들을 위해 라이브 에이드를 꾸릴 때 토토는 ‘세렝게티 초원 위 킬리만자로가 올림푸스 산처럼 솟아오르는’ 비상식적인 내용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뮤직비디오로 낭만적 구대륙의 정취를 담았다.

바이스의 지적은 이런 ‘Africa’의 무심함이 오히려 1980년대에 대한 아름다운 노스탤지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SNS 유저들의 관심은 ‘Africa’의 가사가 논리적인지, 토토가 역사 속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에 있지 않다. 신비로운 드럼 인트로와 멜로디, 후렴부의 아름다운 코러스와 하모니만으로도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1980년대와 ‘올드 록 밴드’를 대표하기에 손색없기 때문이다. 깊은 고민이나 시대적 통찰, 유행 유무 없는 ‘Africa’가 인터넷 세대들에게 1980년대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곡이자, 1980년대를 상징하는 ‘밈(Meme)’으로 굳혀진 이유다.

리메이크 주인공이 위저라는 것도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다. 그들은 1990년대 너바나가 한바탕 무기력의 얼터너티브로 음악계를 휩쓴 후 사라진 뒤의 허무했던 청년 정서를 나른하고 가볍게 풀어내어 히트했다. 심각한 사유 대신 나른한 일상으로 바라본 그들의 시선은 공교롭게도 2010년대 정보 과잉의 스마트 플랫폼 시대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과 상당한 점을 공유한다. 메리가 위저의 팬이었다는 건 우연일 수 있지만 이들이 그 짧은 트윗을 캐치해서 곡을 만든 건 필연에 가깝다. 괜히 ‘Africa’의 후렴부를 원곡 이상으로 부풀려놓은 게 아니다.


‘Africa’의 성공은 디지털 시대에 옛 유행가들이 다시금 빛을 보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줬다. 헤아릴 수 없는 모래알 속 진주처럼 지나간 시대의 명곡들은 숱하게 많지만, 그 중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는 건 촌스럽고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곡들이다. 평론가들은 1980년대의 미국을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R.E.M으로 기억하지만 대중은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를 드라마 배경음으로 기억하고 토토의 ‘Africa’를 밈으로 만든다.

과연 위저는 메리의 짧은 트윗에서 인터넷 시대의 배경과 ‘Africa’의 역사적 의의를 읽었던 걸까? 그럴리는 없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 속 우연한 제안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편견없는 시선과 관대한 태도, 그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유행. 위저의 ‘Africa’는 21세기가 노스탤지어를 활용해 성공하는 전제 조건을 넌지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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