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이브 씬 현황 소개 및 포틀랜드 공연 후기
음악 팬, 라이브 공연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본토에서의 라이브 관람을 꿈꾼다. 언제 올지 기약 없는 나만의 ‘최애 뮤지션‘이 동네 밴드처럼 공연하는 현지 영상을 유튜브로 감상하면서 내한공연 청원이라도 넣어야 하나 싶은 상상, 한 번쯤 다들 해봤을 것이다. 4~6만 명이 가득 차는 월드 투어도 좋고, 소규모 공연장에서 지역 음악 마니아들과 함께 환호하며 춤추는 경험도 좋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를 여행하며 올해의 루키로 손꼽히는 8인조 다국적 밴드 슈퍼올가니즘의 미국 포틀랜드 공연 티켓을 예매한 것. 지금이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2019년 1월 27일 내한이 확정됐지만, 결제 당시엔 기미가 없었고 해외 소규모 공연장에서의 관람은 처음이었기에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드 시런, 마룬 파이브 등 메인 차트를 호령하는 거대 아티스트들은 미리 수개월간의 투어 일정을 미리 공지한다. 주로 농구 경기장, 풋볼 경기장, 야구장 등 거대 체육 시설에서 무대가 펼쳐지는데, 포틀랜드의 경우는 NBA 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홈구장 모다 센터(Moda Center)와 과거의 구장 베테랑스 메모리얼 콜리세움(Veteran's Memorial Colliseum)이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비시즌 기간을 맞아 푸 파이터스, 로린 힐, 샘 스미스 등의 공연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 아티스트들과 밴드, DJ들은 도심 곳곳의 라이브 홀, 공연장, 클럽에서 공연을 펼친다. 한국과 유사한 모습이지만 각각의 공연장이 인디, 로컬,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고 혼합되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터너티브 로커 앤드류 W.K.(Andrew W.K)와 재즈 싱어 매들린 페이루(Madeleine Peyroux), 래퍼 옐라울프(Yelawolf)와 밴드 도트리(Daughtry)가 같은 공연장에서 무대를 꾸리는 식. 로컬 아티스트들은 이들 뮤지션들의 오프닝 무대를 서거나 이보다 더 작은 소규모 클럽, 바에서 활동한다.
요약하자면 지역 클럽 – 소규모 공연장 – 중대형 페스티벌 – 월드 투어로 이어지는 큰 줄기는 어디나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양과 뮤지션들의 지명도, 무엇보다도 가격에서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 월드 투어 티켓은 비등하지만 앞서 언급한 공연의 평균 가격은 20불 – 30불 사이를 오간다. 아무리 저렴한 내한 공연도 4~5만 원 선인 것을 생각해보면 본토의 위엄을 뼈저리게 느낀다.
8월 30일 슈퍼올가니즘의 공연은 지역의 유서 깊은 콘서트 홀 ‘원더 볼룸(Wander Ballroom)’에서 열렸다. 1914년 종교적 목적으로 건축되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건물은 몇 번의 용도 변경을 거쳐 현재는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공연장이 됐다. 평단의 주목과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갖춘 아티스트들이 이 곳의 무대를 장식한다.
19시 30분 시작에 맞춰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더니 근처는 꽤 한산했다. 공연장만 단독으로 갖추고 있는 게 아니라 바를 겸하는 식당 등 여러 시설들이 함께 설계된 건물이다. 키치하고 인터넷 시대의 무국적성을 기반으로 한 밴드라 그런지 줄 선 관객들은 체크 셔츠 학생들과 과감한 스트릿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국가 여느 공연이 다 그렇겠지만 미국은 특히 뮤지션에 따라 팬층의 모습이 확실히 나뉘는 모습이 재밌다.
간단한 소지품 검사가 끝나고 가드들이 주의 사항을 크게 알려줬다. 건물 내에서 마리화나 흡연은 불법이니 나와서 피라는 것 빼면 별 내용은 없다. (오레건 주는 마리화나가 합법이다.) 줄을 따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나 드라마서 보던 커다란 무도장(Ballroom)의 모습이다. 흥미로운 점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역과 아닌 구역이 확실히 나눠져 있다. 술을 마시려면 신분증을 제시한 후 좁은 우측 지역에 들어가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본 무대에 앞서 플로리다 출신 뮤지션 유노(Yuno)의 오프닝 공연이 있었다. 올해 서브 팝(Sub Pop)과 계약하며 주목받는 신인이 된 유노는 신스팝 기반의 밴드 사운드 기반으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멀티 아티스트다.
출중한 라이브 솜씨도 대단했지만 더 놀라운 건 공연장 음향이었다. 별 특별한 시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각각 악기와 보컬 어느 하나 죽는소리가 없었다. 음향 면에서 항상 일정 부분 아쉬움을 감수하며 공연을 관람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슈퍼올가니즘은 기대대로였다. 빛나는 조명을 들고 한 명씩 흐느적흐느적 입장하는 백보컬 멤버들부터 확실한 정체성을 각인하더니, 백스크린 영상으로 나름의 이야기 구조를 갖춘 공연을 꾸려나가는 것이 치밀했다.
단신 보컬 오로노의 존재감이 특히 엄청났다. 작은 체구에서 나온다고 믿기 어려운 파워풀한 무대 매너로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즉석으로 마일리 사이러스의 ‘Party in the USA’를 커버하는 재미를 보여줬다. 한국 멤버 솔(Soul)이 포함된 백보컬들과 연주자들의 실력도 탄탄했다.
짧다면 짧을 두 시간 동안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뇌리를 지나갔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성원은 ‘음악에는 언어가 없다!’는 낭만적인 대전제를 검증하는 모습. 다만 저렴한 가격에 ‘올해의 앨범’ 리스트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이국의 나에겐 동경으로, 그것이 일상인 현지 팬들에겐 지나가는 하루라는 점이 큰 차이였다.
관객들은 애써 공연을 스마트폰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아티스트에게 환호하면서도 바로 옆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같이 온 친구와 함께 춤추며, 때로는 록 페스티벌처럼 과격하게 점프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순간을 즐겼다. 밴드 이름처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슈퍼 올가니즘‘, 그것이 현지의 젊은 음악 팬들이 소통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