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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22. 2018

르네상스를 완성하는 힙합 씬의 ‘시카고학파’

‘컨셔스’ 계보를 잇는 찬스 더 래퍼와 사바, 노네임.

힙합은 명실상부한 대세다.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캇, 카디 비, 미고스는 팝 스타의 지위를 대체했고 릴 펌(Lil Pump), 릴 잰(Lil Xan),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등의 신예들이 과감한 대안의 시각을 제공한다. 미국 남부 애틀랜타주로부터 출발한 트랩(Trap) 장르는 중독성 강한 후렴, 느릿하면서도 독특한 리듬감으로 대중음악을 지배하고 있다. 남부의 트랩 비트가 대중의 취향을 차지했다면 북부의 시카고 힙합 씬은 예술적 성취를 통해 ‘힙합의 르네상스‘를 완성한다. 자수성가로 일군 성공을 과시하는 주류 메시지와 반대인 이들은 소박하고도 독특한 형식과 개인적 영역으로부터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는 가사로 미국의 현실을 투영한다. 최근 몇 년간 우수한 결과물을 발매하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힙합계의 ‘시카고학파’를 알아보자.

미국 중부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시카고는 미국 제3의 거대한 도시다. 남부와 동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1917년 미 남부 뉴올리언스에 해군 기지가 들어오며 갈 곳을 잃은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상경하여 자리를 잡았고, 대공황 시기에는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생계를 위해 도착하며 미국 대중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됐다. 시카고의 유색인종 계층은 도시의 남부 ‘사우스 사이드(South Side)’에 주로 거주하는데, 이곳은 슬럼화되어 범죄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시카고 힙합은 스윙 재즈, 일렉트릭 블루스처럼 대표적인 타이틀은 없지만 너른 의미에서의 계보 설정은 가능하다. 새천년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카니예 웨스트, 최고의 리릭시스트로 손꼽히는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와 커먼(Common) 등은 대중에게 차분한 비트 위 진지한 메시지를 결합하는 컨셔스 힙합(Conscious Hip Hop)의 인상을 남겼다. 물론 일반론은 아니었다. 속사포 래퍼 트위스타(Twista)와 십 대들의 우상 치프 키프(Cheef Keef) 등 강한 개성으로 무장한 래퍼들도 시카고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는 이런 시카고 힙합 씬의 컨셔스한 경향을 장르화한 아티스트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자란 그는 2013년 두 번째 믹스테잎 <Acid Rap>으로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고전 소울과 가스펠, 블루스와 재즈를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 슬럼에서의 삭막한 생활을 해학적이고도 진솔하게 풀어내는 메시지, 거대 레이블 제도에 맞서는 독립적인 믹스테잎 형식은 1993년생 어린 래퍼에게 만장일치 호평을 선사했다. 그가 2010년대 후반의 시카고를 대표하게 된 결정적 해는 2016년이다.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랩 앨범‘을 수상한 역작 <Coloring Day>에 쏟아지는 찬사와 상업적 성과에 힘입어, 찬스 더 래퍼는 그해 9월 앨범 투어 일환으로 사우스 사이드를 대표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 US 셀룰러 필드(현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매그니피센트 컬러링 데이’로 명명된 이 페스티벌에는 카니예 웨스트와 커먼 등 시카고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은 물론 R&B 뮤지션 존 레전드와 알리샤 키스, 릴 웨인과 투 체인즈, 릴 우지 버트같은 힙합 뮤지션에 DJ 스크릴렉스가 함께하며 초호화 라인업을 함께 꾸렸다. 4만 7천 관객과 함께한 이 페스티벌을 통해 찬스 더 래퍼는 고향 시카고에 거대한 헌사를 바치며 미 전역에 시카고 음악 씬을 각인시켰다.


찬스 더 래퍼의 등장은 여러 젊고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의 출발점이 됐다. 2015년 소울 앨범 <Surf>로 평단의 찬사를 받은 소울/재즈 밴드 도니 트럼펫 & 소셜 익스페리먼트(Donnie Trumpet & The Social Experiment)는 시카고 사운드의 근간을 잡았고, < Acid Rap >으로 첫선을 보인 로컬 신예들은 독특하고도 자전적인 메시지로 2018년 힙합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 < Acid Rap > 수록곡 ‘Angels’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바는 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 Care For Me >를 통해 2018년의 앨범 한자리를 맡아뒀다. 사우스 사이드의 우울한 현실 속 내면의 고독과 불안을 한편의 흑백 영화로 풀어낸 이 작품은 올해 힙합 앨범 중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들려준다. 다가오는 12월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2018년 베스트 힙합 앨범 < Room 25 >을 발표한 노네임은 랩퍼 이전에 시인이었다. 텍스트로의 시를 넘어 낭독을 위한 시를 쓰고, 이를 랩으로 전달하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씬에서 활동하던 그 역시 < Acid Rap >의 ‘Lost’로 이름을 알렸다. 매끈한 재즈 – 네오 소울 비트 위에 단단한 세계관을 서정적이고도 단호한 언어로 빚어내는 그는 주류 힙합에 결여된 ‘메시지‘ 차원에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한다.


유행은 언제나 대안을 동반한다. 트랩 비트의 ‘삼연음 플로우’와 자기 과시, 약물과 함께하는 몽롱한 방종이 지루한 이들에게 시카고 힙합의 새로운 세대는 훌륭한 선택지가 된다. 진지한 사회 고백을 담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에너지로 빛나는 시카고 래퍼들의 목소리는 주류 문법에 반함과 동시에 지금이 명실상부한 힙합의 전성시대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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