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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Nov 27. 2018

프란츠 퍼디난드,
로큰롤로 가을밤을 불태우다

세번째 내한 공연, 우직하게 전진하는 댄스-록 병정들

‘반드시 취한 채로 들어갈 것!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춤추게 될 테니’

11월 25일 예스 24 라이브 홀을 향하는 도중 들은 예언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세 번째 내한 공연을 가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는 일요일 저녁을 가득 채운 ‘새천년의 로큰 롤러’들에게 녹슬지 않은 개러지 댄스 록의 리듬 폭격을 가했다.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었다. 춤추거나, 미친 듯 점프하거나, 그리고 소리 지르거나.


데뷔 14년 차의 이 베테랑 록 밴드는 언제나처럼 세련되고 점잖게 무아지경의 댄스 본능을 깨웠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첫 곡 ‘Glimpse of love’부터 이미 분위기는 절정이었다. 올해 초 발매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Always Ascending >에 수록된 이 곡으로 어둡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 그들은 나른한 그루브의 ‘Lazy boy’로 도화선 심지를 차근차근 태워갔다.


말쑥한 차림의 가면 아래 야성을 감춘 보컬, 알렉스 카프라노스가 무대 아래로 뛰어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커리어 초기 히트곡 ‘The dark of the matinee’부터 현란한 제자리 점프와 객석 난입으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후 ‘No you girls’, ‘Do you want to’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여름의 록 페스티벌이라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단 몇 곡으로도 지적인 향유, 객관적 취재라는 이성을 날려버린 밴드의 파괴력이 대단했다.


신보의 ‘Paper cages’와 ‘Finally’로 잠시 숨을 고른 퍼디난드는 ‘Darts of Pleasure’로 다시 한번 피치를 잔뜩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장엄한 인트로와 시계 타이머처럼 째깍이는 드럼 비트, 신경을 긁어대는 거친 기타 리프가 이어지며 모든 이들이 제자리서 뛰어올랐다. 프란츠 퍼디난드의 대표곡, 국내서도 다수 광고 곡으로 사용되며 익숙한 ‘Take me out’이었다.


광란의 한바탕 후 검은 암막 커튼을 둘러싼 ‘Ulysses’ 이후 밴드는 무대를 떠났지만 이것이 끝이라 생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까!’를 외치며 돌아온 퍼디난드는 신묘한 전자음의 ‘Always ascending’과 ‘Feel the love go’로 다시금 내적 흥분을 깨워냈다. 거친 기타 리프의 ‘Love illumination’으로 피날레를 향해 질주한 밴드의 이 날 마지막 곡은 제목부터 불경한 ‘This fire’. 제목과 가사 그대로 모든 걸 싹 다 태워버렸다.



‘종잡을 수 없는 불길. 이 도시를 모조리 태워버릴 거야!’


사실 공연장 들어서기 전까지 표가 덜 팔렸으면 어떡하나, 오리지널 기타리스트 닉 매카시의 탈퇴로 4인조에서 5인조로 재편된 밴드가 예전만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2000년대 중반의 레트로 흐름, 개러지 록 리바이벌을 상징하는 팀이라는 사실이 제일 걸렸다. 막역한 사이지만 꽤 오래전에 친했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었달까.


프란츠 퍼디난드는 건재했다. 충성스러운 ‘21세기 로큰롤 마니아’들과 집요하게 전진하는 밴드가 그 불경한 생각들을 정화의 불길로 쓸어버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적인 고뇌 대신,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음악. 소녀들을 춤추게 하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14년 전 팀의 포부가 다시금 선명히 각인됐다. 로큰롤 전차 군단, 로큰롤 병정, 프란츠 퍼디난드는 ‘언제나 상승한다(Always Ascending)’!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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