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의 넷플릭스 데뷔작. 삶을 지탱하는 것은...
카우보이의 노래가 쾌활하게 깊은 계곡을 울린다. 적자생존,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서부개척시대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카우보이들. 목숨을 건 결투, 순회판사의 무능함, 인디언의 습격이 언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 개척하고, 개발하며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을 향해 전진하는 이들. 어둑한 밤마차가 향하는 종점에선 누군가가 음산한 미소를 띠고 있다.
‘제가 주의를 끌면, 클레런스가 후려친답니다.’
죽음의 신은 운명의 여신과 친하다. 둘은 얄궂고 무자비하지만, 누구도 둘을 원망하지 않는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홀로 명징하게 모래바람을 가른다. 삶과 죽음의 문제 속에도 노랫가락만은 아름답다.
코엔 형제는 아이러니를 탐구한다. 높은 도덕의 가치나 목적의식대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듯, 그들의 작품 속 주인공은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인해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오해는 오해를 부르고 그럴싸해 보였던 계획은 모종의 이유로 빗나간다.
극의 등장인물들은 본인의 세계를 인식하고 또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가스총을 든 연쇄살인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혹은 방화범 (<바톤 핑크>) 이다. 이성의 오만, 이성의 죽음이다.
죽거나 살거나(Dead or Alive). 젠틀하게 노래하는 총잡이는 셋을 세는 순간에 운명이 결정된다. 은행을 털려다 혼쭐이 난 강도는 두 번의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오지만다이스, 카인과 아벨, 게티즈버그 연설의 숭고함을 전하는 사지 절단 이야기꾼의 운명은 매니저 카우보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금광을 찾아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아름다운 대자연 속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다. 개척의 시대, 우유부단하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여인은 처음으로 주체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에피소드. 칠흑 같은 어둠에도 마차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게 규정이니까’. 어두운 호텔로 들어서며 문을 닫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서부극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유쾌한 옴니버스 스타일로 풀어놓는다. 운명의 한 끗 차로 누군가는 내일을 살고 누군가는 오늘 생을 마감한다.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꼭 심오할 필요 또한 없다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예쁜 아가씨에 미소짓고 장엄한 대자연에 넋을 잃으며 본인의 가치관을 침 튀기며 토론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 아이러니한 미학이 치열한 올해를 버티게 해주었고, 그리고 더 치열할 내년을 살아가게 해준다. 삶과 죽음의 문제 속에도 노래는 빛나고, 마차는 멈추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