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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24. 2019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거부하는 뮤지션들

제53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주인공 마룬파이브, 트래비스 스캇 논란


미국 프로 풋볼 결승전 슈퍼볼(Superbowl)의 하프타임 쇼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콘서트 무대 중 하나다.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시청자, 30초당 53억 원의 광고비 지출을 자랑하는 이벤트의 축하 공연이니 그 파급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이클 잭슨, 디아나 로스, 프린스,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 슈퍼스타에게만 허락된 무대, 그런데 최근 이 무대를 거부하는 아티스트들이 갑론을박을 몰고 왔다.

현지 시각 2월 3일 애틀랜타 메르세데스 벤츠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번 제53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 주인공은 밴드 마룬파이브다. 작년 히트곡 ‘Girls like you’를 포함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네 곡, 톱 텐 히트만 14곡을 올린 21세기 최고의 인기 밴드니 이견이 없다. 문제는 마룬파이브와 협동 무대를 꾸미는 힙합 아티스트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과 빅 보이(Big Boi)에 대한 여론이다.

숱한 아티스트들이 슈퍼볼 하프타임 쇼 보이콧을 선언했다. 비욘세의 남편이자 힙합씬의 살아있는 전설 제이지(Jay-Z), 21세기 최고의 인기 여성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리아나(Rihanna)와 핑크(P!nk)는 물론 2018년 한 해를 이끈 여성 래퍼 카디 비(Cardi B)도 협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외 뮤지션과 힙합 커뮤니티 역시 트래비스 스캇과 빅보이의 슈퍼볼 출연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유색 인종 아티스트들이 미식축구에 등을 돌린 것은 2016년의 ‘무릎 꿇기 사건’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은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시범경기에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혼자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 ‘인종차별하는 나라를 위해 일어나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캐퍼닉의 저항은 당시 미국 사회를 강타한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흑인 인종차별 이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실언과 맞물려 엄청난 호응을 끌어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 선언을 보냈고 수많은 셀럽과 동료 풋볼 선수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그러나 2017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에 존중을 표하지 않는’ 다는 재향 군인들과 백인 소비층들이 경기를 보이콧하면서 경기장이 텅텅 비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9월 공화당 상원의원 지원 유세 중 ‘미국 국기에 결례를 범하는 개XX를 끌어내서 해고해라’는 폭탄 발언을 하는가 하면 트위터를 통해 팬들의 보이콧을 촉구했다.

일부 팀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200여 명이 넘는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주먹을 치켜들며 캐퍼닉을 지지했으나 줄어드는 수익 앞에 장사 없었다. NFL 사무총장 로저 구델은 구단주들에게 ‘팬들은 국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대한다’는 서한을 보냈고, 2017년 자유계약 시장에 나온 캐퍼닉을 영입하려는 팀은 32개 팀 중 단 하나도 없었다.



미식축구는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이며 NFL은 미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리그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보다 보면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며 가죽 재킷 안의 성조기를 펄럭인 밴드 유투, 파병 군인들의 영상 메시지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한 브루노 마스와 케이티 페리, 드론으로 스타디움 하늘에 성조기를 띄운 레이디 가가가 대표적이다.

슈퍼볼을 거부한 아티스트들은 인종차별에 저항한 캐퍼닉을 내친 NFL에 동참할 수 없다는 논리다.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트래비스 스캇에게 슈퍼볼 무대는 분명 큰 기회지만, 그가 속한 집단과 흑인 커뮤니티의 현실을 봤을 때 공연을 거절이 옳지 않으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기 장소가 현재 힙합 문화의 중심지 애틀랜타기에 더욱 논란이 된다.

평소 인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던 마룬파이브의 보컬 애덤 리바인에게도 똑같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마룬파이브의 슈퍼볼 보이콧을 요청하는 온라인 서명은 벌써 8만 4천 명 이상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슈퍼볼 보이콧’의 목소리다.

일단 애덤 리바인은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고 트래비스 스캇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별도 변경 사항 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만, 절대적인 쇼의 위상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무대는 미식축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 선수의 무릎 꿇기가 ‘미국의 국기’에 변화를 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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