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뮤지션들
2019년 미국은 마비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국가 장벽 건설 예산안을 의회가 거부하며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시작된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오늘로 벌써 31일째,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행정 공백이다. 80만 공무원들이 강제 무급 휴가에 들어갔고 하루 3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뚜렷한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국가 장벽은 3000km에 달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9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을 건설해 불법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경선 때부터 반(反) 이민 논조를 강하게 역설해온 트럼프의 정책 중에서도 최대의 공약이다. 최대 44조 원에 달할 건설 비용은 물론 천문학적인 유지 비용이 요구되기에 대통령 당선 전부터 허황된 계획으로 여겨졌으나 트럼프의 의지가 워낙 굳건하다.
반(反) 이민으로 시작해 반(反) 이민으로 유지되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고 이민자들로 인해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으며 그 지위를 유지하는 나라다. 백인 저소득 지지 계층의 결집을 위해 트럼프는 이민자 행렬을 ‘약탈자’라 지칭했고, 이민자 자녀들을 추방하고 외국인 비자를 축소했으며 기어이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자 한다.
2019년 트럼프를 향해 첫 직설을 날린 아티스트는 블루스 뮤지션 개리 클락 주니어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노예의 후손’ 흑인 기타리스트인 그는 올해 상반기 발매 예정인 정규 앨범과 선 싱글 제목을 ‘이 땅(This land)’으로 통일했다.
이 땅은 누구의 땅인가? 바로 나의 것, 모두의 것이다. 공화당 강세의 가장 보수적인 미 남부에서, 가사대로 ‘트럼프 나라의 가장 가운데에서’ 개리 클락 주니어는 노예로 끌려온 조상들과 그 자손들의 굴곡 많은 역사와 자부심을 당당히 외친다.
강렬한 상징들로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곡의 목표를 분명히 한다. 나무에 목매달리지 않고, 독사를 피해 달려나가며, 칠흑같은 물속과 쇠창살 속에도 기어이 뜨거운 심장을 보이고야 마는 아이들은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의 깃발을 밟고 올라선다. 이를 바라보는 저택 위의 개리 클락 주니어는 트럼프의 이기적인 ‘미국 국민’ 논리에 울분을 토한다.
"깜둥아 도망쳐, 네 고향으로 돌아가. 너네 호의는 필요 없어."
퍽 유(Fuck You). 난 미국의 아들이야. 내 고향은 미국이고. 이 땅은 나의 땅이야.
라스베이거스 출신 밴드 킬러스의 신곡 역시 땅을 노래한다. 그냥 땅이 아니라 ‘자유의 땅(Land of the free)’이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깔리고,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는 깊은 목소리로 미국의 오늘날을 담담히 노래한다. 인종 차별과 장벽 건설, 총기 사고로 얼룩진 ‘기회와 평등의 땅’이 가스펠 코러스와 함께, 뮤직비디오 속 국경 이민자들의 비참한 현실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1절에서 브랜든은 오늘날 미국을 만든 이들이 ‘좁은 배를 타고 건너와 탄광에서 석탄을 캐고 농장에서 씨를 뿌리며’ 땅을 일군 이민자들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2절에서의 현실은 이상과 멀다. 그의 나라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길거리를 자유로이 다닐 수 없는 나라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국민들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다.
여기까지의 브랜든은 2019년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꿈꾸는 듯하다. 그러나 마지막 파트에서 그는 스토리텔링 대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찰자로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자유의 땅에서(In the land of the free)’의 반복 제시를 통해 트럼프의 위선을 고발하는 브랜든은 공감을 넘어 미 국민들의 각성과 현실 참여를 촉구한다.
얼마나 많은 아들 딸들을 더 땅에 묻어야 총기 사고를 마주 볼 건가요?
이 자유의 땅에서, 그들은 콘크리트와 철근의 벽을 쌓는다고 하네요.
(이민자들의) 더러운 손이 우리의 꿈과 희망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높이요.
1966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지미 헨드릭스는 불타는 미국 국가 연주로 ‘더러운 전쟁’ 속 청춘을 대표했다. ‘미국에서 태어난(Born in the U.S.A)’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전후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블루 컬러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했다. 2004년 9/11 테러의 공포에 사로잡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행정부에게 밴드 그린 데이는 ‘미국 얼간이가 되지 않으리(‘American Idiot’)라는 조롱을 외쳤다.
대중음악은 언제나 시대와 호흡하며 불의에 저항하고 자유와 평등을 노래해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리 클락 주니어와 킬러스는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오늘날의 미국은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새 시대의 아메리카나(Americana) 송가는 선배들이 보여준 역사적 소명을 받들어 미국의 오늘날을 성찰하게 한다.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는 건 이기주의와 혐오가 아니다. 진실한 양심과 용기의 목소리가 그 사회를 위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