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 Angels > 수록 뮤직비디오 소개
21세기의 DIY 전사이자 대중문화의 최전선 여기저기를 누비는 캐나다 태생의 클레어 부셰(Claire Boucher) - 그라임스. 2015년 NME가 선정한 올 해의 앨범 1위 < Art Angels >로 팝적 접점까지 확보하며 더 넓은 세상에 그만의 미적 감각을 맘껏 뽐내고 있다. 특히 동생 맥 부셰(Mac Boucher)와 함께 모든 과정 감독과 기획, 수정을 도맡아 공개하는 뮤직비디오의 수준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기괴한, 혼란스러운 콜라주의 미장센은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시각적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 Art Angels > 앨범의 뮤직비디오들을 공개 순으로 소개해본다.
가장 먼저 공개된 싱글. < Art Angels > 발매 한참 전인 15년 3월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트랜스-EDM 장르의 이 곡은 사실 믹싱과 프로듀싱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상태로, 2013년 음악 제작 툴 에이블톤(abletone)으로 녹음해놓은 상태에서 원래 파일을 잃어버려 완성본이 될 수 없는 곡이다. 데모 버전만 나왔는데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빌보드 댄스-일렉트로닉 차트 30위까지 올랐다. 뮤직비디오는 그의 아시아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 상하이, 싱가포르, 서울(!), 도쿄 등 아시아 각 도시의 모습을 담았다. 이 곡은 LP 버전엔 수록되지 않았다.
선공개 싱글로 공개되었으며 한 편에 'Flesh without blood'와 'Life in the vivid dream' 두 곡을 담았다. 전자가 업비트 기타 리프를 기초로 한 댄스 팝이라면 후자는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는 1분 30초짜리 쉬어가는 곡.
'Flesh without blood'에는 네 명의 각기 다른 캐릭터가 등장한다.
1. Skreechy Bat : 그라임스가 음악을 만들 때 등장하는 자아. 작업할 때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라 카더라.
2. I.V. : 앨범의 리더이자 - 악마. 그라임스가 만화를 그린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 지에 대한 대답이라 한다. 악의 군주.
3. Kill v. Maim. 맘 좋은 동네 아저씨 선글라스를 꼈지만 사실 뱀파이어다.
4. Roccoco Basilisk : 'Roko's Basilisk'의 변형. 가늠할 수 없는 먼 미래에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면, 자신의 존재에 방해가 되었던 존재들까지도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순환논리. 결국 AI 들에게 고문당할 처지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닮았다는 캐릭터다. (뭔 소리야)
'Flesh without blood'에서 등장한 캐릭터이자 앨범의 두 번째 싱글. 자신의 곡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라 소개하기도 했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와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를 혼합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코러스 부분에서는 할리퀸을 많이 참조했다는 듯. 스팀 펑크 시절 매드 맥스 + 블레이드 러너 속 주인공이 된 베르사체-뱀파이어 (게임 캐릭터 같다)로 분한 그라임스와 그 백댄서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확인하시길. 캐나다 토론토의 지하철 역이 세기말적 RPG 게임의 한 세트장이 된다.
앨범 상으로는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2번 트랙. 그간 팝적인 선율과 거리가 있었던 그라임스였기에 이 컨트리 - 신스 팝의 캐치한 선율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희가 따라 부를 수 있는 곡도 만들 수 있다'는, 귀여운 선전 포고와도 같달까. 게다가 이 곡은 창작자의 고뇌와 본인의 개성에 대한 자부심, 그로부터 기인한 피치포크(Pitchfork)지에 대한 비판까지 담기지 않았나.
이런 역설적 메시지를 뮤직비디오 또한 잘 구현해내는데, 미술 소묘 시간의 조각상 - 죽은 시간들, 과거의 유산들 - 에 둘러싸인 예술가 지망생은 중세 시절의 코스튬과 몬드리안의 미술 세계로 돌아가고, 미국 국기를 입은 컨트리 스타가 되었다가 쏟아지는 빗속의 차가운 현실을 오간다. 빈티지한 느낌에 몽환적 분위기, 다채로운 색감을 더하면서 지루할 틈까지 없애버린다.
참고할 것. 뮤직비디오 버전 음원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리믹스 버전이다.
그라임스와 그의 절친 뮤지션 하나(HANA, Hana Pestle)는 16년 봄 2주 간의 아시아-유럽 투어 '산성 시대 연대기(The Ac!d Reign Tour)를 돌았다. 그리고 그동안 오직 아이폰으로만 촬영된 (동생 맥 부셰만 제외하고) 일곱 개의 뮤직비디오를 엮어 '산성 시대 연대기 : 아트 전쟁 (The AC!D Reign Chronicles : The War Of Art)'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유럽의 옛 성채와 각 도시에서의 퍼포먼스를 담은 이 시리즈에서 그라임스의 노래는 총 네 곡으로, 나른한 'Butterfly'와 당돌한 신스 팝 'World Princess Part. II ', 대만 래퍼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가 참여해 기타 리프 위에 다국적화를 꾀한 'SCREAM',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드럼 머신의 평화로운 신스팝 공존 'Belly of the beat'가 바로 그것들. 하나의 테마로 그라임스와 하나가 번갈아가며 같으면서도 다른 바이브를 선보이는 것도 흥미롭고, 그 자체로 압도적인 스타일과 퍼포먼스가 쉴 새 없는 즐거움을 준다.
2월 9일 공개된 최신작. 이 작품은 음원사이트 타이달(Tidal)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라임스 최초의 4K 뮤직비디오다. 자넬 모네(Janelle Monae)와 함께한 이 작품에서 둘은 미래-사이버 펑크 전사가 되어 음악적 야심과 한 컷 한 컷이 사진과 같은 압도적 영상미를 보여준다. (피치포크는 Futuristic Cybergoth라는 표현을 씀.) 이미 < The Archandroid >와 < The Electric Lady >로 미래적 퍼포먼스를 보여준 자넬 모네와 그라임스의 퍼포먼스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곡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Venus Fly'의 또 다른 버전을 들을 수 있다. 다소 느려진 템포와 아울러 놓칠 수 없는 멋진 영상들이 가득하니, 나머지 3분을 놓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