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그래미 어워드. 기성 문법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의 양보.
의외라면 의외였고 파격이라면 파격이라 볼 만했다. 시청률 하락, 권위 상실 등 각종 악재에 시달리던 그래미 어워드는 현지 시각 2월 10일 61번째 시상식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보여줬다. 준비 기간부터 39세 이하의 여성, 유색 인종으로 구성된 900여 명의 신규 투표인단을 도입하며 기존 심사 위원진을 개편하더니 본상 4개 부문 후보들도 각 5인에서 8인으로 확충했다. 사회자 래퍼 엘엘 쿨 제이는 보다 진취적인 여성 아티스트 알리샤 키스로 대체했다.
‘백인 우월주의’와 ‘꽉 막힌 시상식’이라는 그간의 비판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여느 때보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무대와 유색 인종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펼쳐졌고, 그 주인공들의 연령대는 확실히 낮아졌다. 두아 리파와 숀 멘데스, 마일리 사이러스, 허(H.E.R), 포스트 말론, 카디 비가 호기로웠다면 자넬 모네와 세인트 빈센트, 알리샤 키스와 레이디 가가는 노련했다.
수상 결과도 어느 정도는 발을 맞췄다. 본상 4개 부문 중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2개 부문을 석권한 노래는 2018년 미국의 모순적인 현실을 살벌한 미디어 아트로 표현한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다. 올해의 노래 부문이 개설된 후 최초의 힙합 곡 수상이다.
일각에서는 ‘이제 그래미가 진짜 달라졌구나!’라는 환영을 보낸다. 힙합 곡이 본상 두 부문을 차지했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인상 깊은 무대를 꾸몄으니 일견 젊어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시상식도 어딘가 개운하지 않다. 과연 그래미는 달라진 걸까. 아니라고 본다.
역시 그래미의 꽃은 컨트리다. 1988년생 신예 컨트리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 Golden Hour >에게 올해의 앨범을 선사하며 백인 컨트리 아티스트 사랑을 숨기지 않은 그래미 심사위원들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설전을 불러온 부문이며, 일부는 ‘앨범 부문을 도둑맞았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그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컨트리를 편애해왔으니 자업자득이다.
케이시 무스그레이브스를 예상하진 않았으나 결과는 납득이 간다. 그는 전통 컨트리 문법을 역행하며 나름의 파격과 수려한 멜로디를 고루 갖춘 앨범을 만들었다. 마리화나와 동성애를 노래하면서 성소수자 작곡가와 손을 잡았고 다양한 장르 혼합과 기법 도입을 통해 팝과 컨트리의 황금비율을 맞췄다.
< Golden Hour >는 2018년 각종 매체의 올해의 앨범 리스트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앨범이었다. 다만 이것이 자넬 모네가 < Dirty Computer >로 보여준 치열한 인권과 성의 투쟁, 블랙 커뮤니티의 웅장한 제국을 수려한 감각으로 수놓은 켄드릭 라마의 < 블랙 팬서 > 사운드트랙, 길거리 스트리퍼에서 최고의 여성 래퍼로 거듭난 카디 비의 서사보다도 중요한 앨범인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삶에 비하면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노선은 일탈 수준이다.
수상 과정도 개운치 않다. 그래미는 오늘 베스트 알앤비 앨범, 베스트 랩 앨범에 허와 카디 비를 호명하고 본상에서 그 둘을 외면했다. 케이시 무스그레이브스는 베스트 컨트리 앨범을 수상하고 본상을 수상했다. 소수 인권과 흑인 음악, 라틴음악의 족적은 퍼포먼스에 그쳤는데 컨트리 앨범에는 권위가 더해졌다.
그래미가 변하지 않았다는 두 번째 증거는 ‘This is america’의 2관왕 수상이다. 가장 급진적으로 보이나 가장 안전한 선택지다. 이미 차일디시 감비노는 최근 몇 년간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차례 노미네이트 된, 그래미가 주목하고 있던 아티스트였다. 게다가 그는 아주 무명의 가수가 아니다.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인기 배우이자 제작자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이다.
심사위원들에게 ‘This is america’는 위험은 낮고 기댓값은 큰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의 곡이다. 2018년 가장 큰 이슈를 불러온 노래기에 블랙 아티스트에게 상을 준다는 찜찜함을 상당히 덜 수 있다. 사회적, 정치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얻는 것은 덤이다. 비록 아티스트는 시상식을 거부했지만 ‘변화의 그래미’를 전시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그래서인지 수상 과정에는 일관성이 없었고 이 날 시상식의 테마와도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오늘 사회를 본 알리샤 키스가 음악의 위대한 힘을 종일 역설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미셸 오바마의 등장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정치적 입장 표명도 없었고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음악의 힘을 노래하던 시상식이었는데 그 주인공은 가장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이었다.
상을 주는 알리샤 키스도 대리 수상으로 나온 아티스트도 뭔가 어색해 보였다. 화제가 된 ‘This is america’로 블랙 아티스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를 교묘히 잠재운 것은 아닐까. 본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올해도 무관으로 돌아간 켄드릭 라마가 억울할 만하다.
강산이 변하는 데도 10년이라는 시간이 든다. 환갑을 넘은 시상식이 어느 날 갑자기 진보적인 관점을 갖출 순 없다. 올해의 그래미가 조금 느리더라도 변화를 선택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주류를 대체하는 마이너리티들의 약진으로 펼쳐진 대중음악의 새 시대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다만 그 아래 깔려있는 공고한 보수적 논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올드 그래미, 화이트 그래미’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즐겁고 화려했던, 모두가 음악 아래 행복을 간증하던 61번째 시상식. 여성, 유색 인종, 성소수자, 젊은 아티스트들이 열어가는 새로운 음악 시상식을 선언하면서 기성의 문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미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