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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24. 2019

스트리밍 시대, 음악은 진화한다

[Prologue]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


이제 우리는 음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레코드판, 컴팩트 디스크(CD)의 물리적인 형태는 물론 파일의 형태 다운로드조차 뒤떨어진 방식이 됐다. 스크롤, 클릭, 엄지 손가락의 움직임 몇 번만으로 수백, 수천만 노래들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미 음반 산업 협회(RIAA)가 작년 9월 출간한 2018년 음악 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75%의 미국인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디지털 다운로드는 12%, 피지컬 소비는 고작 10%에 그쳤다.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Spotify)를 필두로 애플 뮤직, 아마존 등의 주요 플랫폼이 음악 소비의 핵심이자 일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소비 형태의 변화는 생산의 변화로 연결된다. 최근 몇 년 간 빌보드, UK 오피셜 차트로 대표되는 영미권 주요 음악 차트의 모습은 오랜 팬들에겐 다소 생경하다. 기존의 ‘팝송’이 라디오에 자주 플레이되는 노래를 의미했다면, 근래 차트를 점령한 노래들의 스타일은 스포티파이와 아이튠즈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스트리밍 팝으로 새로운 대중성의 기준을 세운다.


나날이 짧아지는 인트로와 훅, 러닝타임


오하이오 대학의 음악학자 르빌 고빈은 1986년부터 2015년까지 303개의 톱 텐 송을 조사하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1980년대 중반의 히트송들은 평균적으로 20초에서 25초가량의 도입부를 갖고 있었던 반면, 2015년 히트곡의 평균 인트로는 5초에 불과했다. 인트로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다 할 훅(Hook)도 자취를 감추는 스트리밍 시대 팝송이다.

손가락으로 좌우되는 스트리밍 시대에서 음악의 성패는 몇 초만에 갈린다. 사용자의 음악 감상 패턴을 분석하여 제공되는 맞춤 플레이리스트는 음악의 일회성을 더욱 부추긴다. ‘재미없는 곡’은 순식간에 다음 노래에게 순서를 내주고 만다. 온라인 뉴스지 <쿼츠>의 통계&경제 전문 기자 댄 코프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차트 히트곡을 조사한 결과 인트로뿐만 아니라 전체 곡 길이 역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작년 최고의 히트 가수 드레이크의 앨범 < Scorpion >은 2016년 < Views >보다 트랙 수는 많지만 전체 러닝 타임은 11%나 줄었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에 오른 노래 중 4분을 넘는 노래는 트래비스 스캇의 ‘SICKO MODE’ 뿐이다. 후크 송의 위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평탄한 구조의 곡이 대세가 됐다.

이는 싱글보다 앨범, 그 앨범을 만든 아티스트가 더욱 주목받는 결과로 연결된다. 지난해 드레이크와 미고스가 보여준 ‘음원 줄 세우기’가 좋은 예다. 따로 싱글 발매를 하지 않아도 앨범 수록곡 전체가 고루고루 싱글 차트를 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연히 앨범 트랙 수는 늘어나고 개별 러닝 타임은 줄어든다. 빌보드 싱글 차트 1,2,3위를 동시 점령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 thank u, next >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과시와 불안


음악은 점점 슬퍼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캠퍼스가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에서 발표된 50만 곡을 분석한 결과, ‘행복(Happiness)’과 ‘밝음(Brightness)’의 키워드는 감소한 반면 ‘슬픔(Sadness)’의 빈도는 증가했다. 슬픔의 테마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나 슬픔을 노래하는 곡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기반의 개인적 기술 발전과 소셜 미디어는 이와 같은 우울의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미국을 분석하는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음악의 주 소비층인 미국 십 대들이 최근 설문 조사에서 ‘우울과 불안(Depression and Anxiety)’을 가장 큰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신인 빌리 아일리시와 XXX텐타시온의 성공은 가장 좋은 예시다. 2001년 생 빌리 아일리시의 최신 히트곡 ‘bury a friend’를 보자. 어둡고 미니멀한 비트는 단 한 줄기 희망도 주지 않을뿐더러 ‘유리를 밟고, 혀를 스테이플러로 찍고, 친구를 묻어버려 / 난 나를 끝장내고 싶어’라는 가사는 음울의 극단이다. 이런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에 올랐다.

끔찍한 범죄자라는 현실이 무색하게도 지독한 자기혐오를 표현했던 텐타시온은 스트리밍 시대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그의 방종하고도 무절제한 우울은 ‘거장’ 카니예 웨스트부터 최신 스타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캇을 비롯한 수많은 래퍼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시대 감성을 극복하는 제1의 치유제는 돈과 명예다. 힙합이 가져다준 거대한 성공 서사는 어린 릴(Lil) 군단의 주된 테마일 뿐 아니라 텍사스의 백인 소년 포스트 말론(Post Malone)에게 기타 대신 마이크를 잡게 했다. 스트리밍 시대는 ‘베르사체’를 노래로 빚은 미고스와 훈훈한 기부 미담을 보여준 드레이크(Drake)를 선망한다.


복고의 열풍


재밌는 건 이 ‘과거’에서 20세기의 음악들은 예외다.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은 1980년대의 뉴웨이브와 1990년대 얼터너티브는 십 대들에게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제공한다. 위저가 토토의 1983년 히트곡 ‘Africa’를 커버하게 된 계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장년층의 편지가 아니라,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를 본 십 대 소녀의 간곡한 트윗 덕분이었다.

디지털에 서툰 기성세대보다 각종 기기들을 능숙히 다루는 틴에이저들이 옛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건 꽤 흥미로운 모습이다. 스트리밍 시대엔 트랩 아이돌 릴 펌의 ‘Gucci gang´과 1970년대 레드 제플린을 능숙하게 카피하는 그레타 밴 플릿이 공존한다. 전자는 후자의 음악을 ‘구리다’며 조롱하고, 후자 집단은 ‘진짜 음악을 들어봤냐’며 요즘 음악을 ‘가짜’라 공격한다.


앞날은?


이외에도 스트리밍 지배 구조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경향을 도출한다. 디지털의 지배에 염증을 느낀 마니아들이 LP 수집에 열을 올리면서 매 년 바이닐 판매고가 상승일로다. 곡 자체의 매력보다 댄스와 SNS 놀이를 유발하는 ‘챌린지’ 노래들이 차트에 오르는가 하면, 복고를 스크린으로 소환한 < 보헤미안 랩소디 >와 < 스타 이즈 본 >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1887년 레코드의 발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대중음악의 초기 곡들이 3분을 넘지 않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아이팟(iPod)과 냅스터(Napster)를 이해하지 못하고 디지털 음악 시장을 논할 수 없고, 통신 기술의 발달을 빼놓고 스트리밍 기술의 실현을 말할 수 없다.

일상 속 기술을 이해하면 유행의 원인도 보인다.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은 새로운 형태로 유행을 반복하며 더욱 예측 어려운 형태로 진화 중이다. ‘플랫폼 시대’의 일상이 이끌어가는 2019년의 음악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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