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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26. 2019

슈퍼볼 53의 ‘86만 싫어요’,
팝 시장의 경고등?

마룬 파이브와 트래비스 스캇의 하프타임 쇼 몰락


슈퍼볼 하프타임 쇼로 성공하고 부활한 아티스트는 많지만 몰락한 아티스트는 마룬 파이브가 처음이다. 현지 시각 2월 3일 공연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음은 물론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후폭풍이 거세다. 마룬 파이브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 영상의 유튜브 ‘싫어요’ 수는 86만으로, 2주 만에 유튜브 역사상 47번째로 많은 ‘싫어요’를 확보(?) 했으며 미국 미식축구리그(NFL) 계정의 최다 ‘싫어요’ 영상이 됐다.

카디 비를 비롯한 인기 흑인 뮤지션들이 슈퍼볼을 보이콧하는 상황에서 마룬 파이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데뷔 이후 18년 동안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히트를 보장할 수 있는 베테랑 팝 밴드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최선은 지루하기만 했다. 보컬 애덤 리바인의 절망적인 컨디션과 뻔한 히트곡 나열은 예상 그대로의 피로감을 안겼고 단 하나의 반전 없이 무대가 끝났다.  



기회가 없진 않았다. 인기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의 제작자 스티븐 힐렌버그를 추모하며 에피소드 속 등장한 노래 ‘Sweet victory’를 암시한 건 좋았다. 그런데 그 평행세계에서 날아온 운석에서 걸어 나온 건 스폰지밥 대신 트래비스 스캇과 ‘SICKO MODE’였다. 평소보다 긴장한 듯 엉망인 음정으로 랩을 쏟아내던 그는 관객의 파도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고, 스폰지밥 팬들과 음악 마니아들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삭여야 했다.

트래비스 스캇은 2018년을 대표하는 스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SICKO MODE’와 숱한 콜라보레이션으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의 라이브는 화려한 무대 장치와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독보적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그런 아티스트의 이 시대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미국에서 가장 큰 콘서트 무대에서는 초라하기만 했다.


마룬 파이브와 트래비스 스캇의 실패는 팝 시장의 변화 속 적응하여 성공한 이들이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꽤 멀다는 걸 증명했다.이지 리스닝과 힙합으로 개편된 최신 히트곡은 역동성에서 큰 약점을 지녔다. 공연장 크기로 비유하자면 아레나 급은 될지언정 스타디움 급은 아니다.

제이 발빈과 배드 버니의 라틴리듬, 방탄소년단의 파워풀한 댄스가 기존 팝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애덤 리바인의 어설픈 몸짓과 트래비스 스캇의 잔뜩 흥분한 국어책 읽기보다 이국의 리듬, 잘 짜인 퍼포먼스와 몸을 내던지는 춤사위가 훨씬 짜릿하다. 영국 인기 밴드 1975의 리더 매티 힐리가 말한 대로 ‘백인 여럿이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건 이제 구식이다’. 힙합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괜히 빌보드 지가 ‘다음 슈퍼볼 하프타임 쇼 후보’로 BTS의 사진을 걸어 놓은 게 아니다.

올해 슈퍼볼 53 하프타임 쇼는 팝 시장의 과거와 현재, 두 마리 토끼를 어설프게 잡으려다 놓쳐버렸다. 물론 미래를 고민하지 못한 게 사무국의 탓만은 아니다.  NFL이 워낙 미국인의 인기 스포츠인 데다 트럼프 집권 이후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 압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되겠지’ 생각하고 골랐던 이들은 사실 함정 카드였다. 전통의 대중성과 차트 성적만 보고 내린 결정은 지난해 팝 시장의 무기력을 역설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 시대의 ‘대중성’이 기존 관념과 꽤 다르다는 것, 그래도 도태될 이들은 결국 도태된다는 것. 슈퍼볼의 86만 ‘싫어요’가 안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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