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걸그룹 있지(ITZY)의 성공적인 데뷔
‘달라달라’의 데모를 작년 9월에 처음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땐 JYP의 새 걸그룹 후보곡이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이들의 팀 이름도, 데뷔 일정도, 아이즈원 채원의 동생 채령과 < 믹스나인 >의 류진이 포함된 5인조라는 사실도 며칠 전에야 알았다. 그렇게 거의 백지상태로 들어본 첫 느낌은 안타깝게도, 올드했다.
세련된 하우스 비트는 JYP가 아니었지만 ‘날라리 같대요’라는 도입부 가사는 이 팀이 JYP의 신인임을 확실히 하는 장치였다.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블랙핑크 ‘뚜두 뚜두’), ‘잊지 마 여기 서 있는 Rose 언제나 빛날 수 있게’(아이즈원 ‘라비앙로즈’) 같은 최근 걸그룹 노랫말에 비해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난 달라 / 내 기준에 날 맞추려 하지 마’는 미스에이의 ‘남자 없인 잘 살아’ 시절이 겹쳐갔다. JYP의 유일한 걸크러시 콘셉트였다.
5개월 후 이 미지의 걸그룹은 있지(ITZY)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예측에서 벗어나는 지점은 없었다. 블랙핑크의 시크함과 레드벨벳의 일견 깜찍함, 트와이스 ‘Ooh-ahh’하게의 패기를 잘 섞어 틴크러시, 걸크러시를 만들었다. 복잡한 아이돌 세계관이나 캐릭터도 없다. ‘달라달라’하지만 사실 그렇게 다른 점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있지와 ‘달라달라’는 올드하고 보편적이어서 재미있다. ‘달라달라’ 속 멤버들은 신인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어린 패기로 잘 무장되어있는데, ‘남들의 시선 중요치 않아’ 같은 직관적인 가사부터 ‘언니들이 말해 내가 너무 당돌하대 / 바꿀 생각 없어요’ 같은 가사를 활기차게 노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특유의 ‘뽕’과 소속사답지 않은 밸런스 잡힌 최신 장르를 동시 활용하며 괜찮은 곡을 만들어낸 것도 호평이다.
최근 걸크러시를 표방하는 여러 팀들은 위키미키나 구구단처럼 큐티와 강렬 사이서 갈팡질팡하면서 사라지거나 에이핑크, (여자)아이들처럼 시크한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그쳤다. 있지의 과감한 춤 동작과 노래는 젊음의 활기, 걸그룹의 파워에 집중할 뿐 어떤 부가적인 도상과 의미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속 무지개색 벽과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도 멤버들의 당차고 밝은 모습을 돕는 역할이다.
있지의 활력과 당찬 모습은 직관적으로 대중에게 신인 걸 그룹의 팀 컬러와 멤버들의 인상을 각인한다. 이 점에서 JYP는 상황 파악을 잘한 것이다. 그들은 ‘걸크러시가 대세’, ‘아이돌 세계관의 힘’ 같은 것들은 부차적 요소일 뿐,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원래 인지도를 확보한 멤버들과 각 기회사마다 갖고 있는 고유의 느낌을 극대화하는데서 온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 프로듀스 101 > 시리즈로부터 탄생한 그룹들이 개별 인지도에도 부진하는 것은 기획사의 어중간한 방향 설정 때문이다. 이달의 소녀와 우주소녀, 드림캐쳐와 같은 걸그룹의 서사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스토리만 만들어두고 이를 납득시키는 데 성실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리고 사실 헤비한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들의 서사에 끌려 그룹에 ‘입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인기를 강화하는 부가적 요소이지 인기를 생성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너희가 원하는 것 다 있지’라는 표어에 눈이 간다. 있지가 블랙핑크 톤의 힙합 트랙을 노래하더라도, 트와이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불러도 이질감이 없을 것이다. 정직한 기획, 자유로운 확장 가능성이 대중의 이례적인 호응을 이끈 셈이다. 복잡한 디테일보다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