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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26. 2019

<더 페이버릿> : 욕망하는 자들에게 '페이버릿'만을.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허기진 세 여인의 이야기

우리는 성취에서보다 오히려 욕망에서 살고 있다
- 조지 무어 -



1)

욕망의 길에 성취는 있으나 종착지는 없다. 17세기 잉글랜드의 앤(Anne) 여왕(올리비아 콜먼 분)은 평생 그를 괴롭힌 절망을 피해 '달콤한 것'을 허겁지겁 찾아다닌다. 냉정한 말버러 공작부인(레이철 와이즈 분)은 그에게 상과 벌을 교묘히 제시하며 여왕을 한 명의 어린아이로 만들고 이성의 통치를 실현한다. 공작부인의 사촌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은 몰락한 귀족 부인으로, 천한 하녀로 궁에 들어와 여왕에게 방탕한 디오니소스의 쾌락을 혀끝으로 새겨둔다. 삶의 목적이었던 욕망은 곧 전체 삶을 잠식한다.



2)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앤은 고독했다. 명예혁명으로 즉위한 윌리엄 3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며 의도치 않게 왕위를 계승했다. 19명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14명이 유산 또는 사산됐고 2명은 태어난 날 그 날 죽었으며 나머지 세 아이들은 10살을 넘기지 못했다. 왕을 쫓아낸 강경 의회는 토리당과 휘그당의 양당 구도로 대립하며 왕의 권위에 제약을 걸었고 전 유럽을 뒤흔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문제도 골치를 썩였다.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인 >은 이 외로운 여왕이 크게 의존했던 두 여인의 이야기다. 앤의 유년기 친구였던 사라 처칠은 앤의 언니 메리 2세 때부터 영국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명예혁명 후 앤과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어 메리가 그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자 앤은 크게 화를 내며 죽을 때까지 언니를 만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후 앤이 영국 왕위에 즉위하자 사라 처칠은 ‘말버러 공작부인’이 되어 내정을 돌보기 시작한다.  


말버러 공작부인과 휘그당은 영국군의 전면적인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 토리당의 로버트 할리(니콜라스 홀트 분)는 확전을 경계하며 해전만을 치르자는 주장이었다. 오만하고 도도했던 말버러 공작부인은 영화에서처럼 공개적으로 여왕에게 무안을 주는 등 날카로운 정치인이었다. 사촌 덕에 입궁할 수 있었던 애비게일 힐은 토리당과의 밀약과 '다정한' 성격으로 이런 여왕의 빈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3)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치밀한 구조주의자면서 세심한 극작가다. 고국 그리스의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하는 그의 세계는 현대의 일상 속 기이한 형태의 공간과 사회이며, 그 속의 배우들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연기로 감정이 제거된 채 불길한 무드를 조성한다. 그 인위적인 형태가 끝내 무너지고 균열 지면서 붉고 숨 가쁘게 박동하는 심장 깊은 곳의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이성의 질서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면서 혼란의 카타르시스를 빨아들이게 된다.


하늘 높은 천장과 화려한 디자인, 고풍스러운 복도와 넓은 연회장의 궁정은 시종 을씨년스럽다. 혼란한 나라 사정을 대변하듯 국민들은 길거리 흙에 대변을 보면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한다. 그렇게 냄새나는 흙을 온몸에 묻히고 들어간 궁궐에선 '고귀한 젠틀맨' 의원들이 거위 경주를 벌이고 알몸의 뚱보에게 과일을 던지며 '유희'를 즐기고 있다. 국가의 종사를 다룬다는 우아한 명분 아래 모두가 열심히 쾌락을 좇는다.


여왕은 정신적으로 (더불어 육체적으로) 완전히 사라에게 의탁하고 있을뿐더러 다리에 염증이 도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19명의 떠난 자식의 이름을 애완 토끼들에게 붙여두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애비게일이 그의 시들어버린 욕망을 은밀히 자극하고 일으켜 세우면서 상황이 흥미로워진다. 이제 여왕은 게임의 상징적 존재에서 직접적인 게임의 참여자로 활동한다.


사촌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라는 침착하게 여왕을 구슬려도 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여왕은 그의 말마따나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있다. 선량한 시종으로 머물던 애비게일은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귀족 부인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속내를 과감히 드러낸다. 궁중에서의 사격에서 총소리에 눈을 질끈 감던 애비게일은 이제 사라의 눈 앞에서 오리를 터트려버린다.



4)

고요하고도 치열한 이 투쟁을 담아내는 광경은 역시나 기이하다. 란티모스 영화답게 감정을 제거한 배우들 사이서 앤 여왕의 히스테릭한 연기는 극 전체를 쥐고 흔드는 변수다. 어안 렌즈가 관찰하는 여왕의 모습은 시종 불길하고, 위압적이어야 할 로우 앵글숏으로 담은 의회 연설 씬에서는 부담을 이기지 못해 졸도해버린다. 여왕은 즐겁다가도 울적해지고, 권위적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 더 페이버릿 >이 란티모스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것은 미리 정해둔 규칙이나 계획, 운명을 헝클어버리는 여왕의 존재다. 오만해 보이나 치밀하고 악독한 애비게일, 여유롭게 숨통을 조여 가는 사라는 모두 그들만의 계획을 실현하려 하나 변덕스러운 여왕의 태도가 설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궁중 암투의 기본으로 익숙한 독살, 밀약, 거래 등의 물밑 전략으로 어떤 한쪽이 승리하는가 싶더니, 침대 위에서 서럽게 울어대는 여왕의 명령이 모든 것을 초기화한다.


등가 교환의 법칙 아래서 처절한 복수극을 행하던 권능의 소년이 등장하던 < 킬링 디어 >, 기이한 운명 아래의 사투 < 더 랍스터 >에 여왕이라는 변수를 추가한 셈이다. 이로써 < 더 페이버릿 >은 상류사회의 치열한 권력 쟁탈 게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입신양명의 목표로 본인을 위해 여왕을 아끼던 사라와 애비게일은 점점 우습게 여겼던 여왕을 더욱 깊게 욕망하며, 단순한 국정의 동반자를 넘어 인간적인 친교와 섹스 파트너의 지위를 탐낸다.


영화 속 남성들이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성취와 목적을 향해 달려갈 뿐 애욕과는 거리가 멀다. 애비게일의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한 마샴(조 얼윈 분)은 온갖 추한 모습으로 그에게 구애하지만, 복수를 꿈꾸는 애비게일과의 첫날밤에서 그는 무감정한 핸드잡을 당한다. '런던에서 가장 빠른 거위'에 집착하는 고돌핀 총리, 차기 총리의 자리를 노리는 할리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그들은 여왕을 업신여기기에 여왕의 곁에 있을 수 없다.



5) 그렇기에 < 더 페이버릿 >의 욕망은 공허하다. 여왕의 여인, 국정의 실질 지배자라는 성취로 허기진 쾌락을 채울 수 없다. 욕정부터 애틋한 사랑의 감정, 보살핌의 모성과 강력한 권위의 가부장적 성애까지 꾹꾹 눌러 담은 이 심연의 끝을 어디인지 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중심에서 충실히 입을 벌리고 '단 걸' 받아먹는 여왕의 욕망 역시 비대해져 간다.


텅 비어버린 여왕의 눈빛과 그 아래서 무릎 꿇은 애비게일, 토끼들이 오버랩되는 최후의 씬에서 우리는 결국 그 모든 일의 한가운데를 찾길 포기한다. 신의 권능을 탐한 죄로 사지를 뜯어먹으며 끝없는 허기에 몸부림친 에리식톤처럼, 권력을 욕망한 세 여인들은 드넓은 궁궐에서 결코 채워지지 않을 서로를 채우려 몸부림친다. 란티모스는 '사랑'을 찾는 그들에게 '페이버릿'만을 허하는,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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