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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29. 2019

바이스 : 위험한 신념의 위정자

‘위대한 나라’ 미국은 어떻게 추락했는가

‘신념 없는 정치는 목표 없는 항해와 다르지 않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속 한겨레 사설 -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 분),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 조지 H.W. 부시(샘 록웰 분)를 보좌한 미합중국 제46대 부통령. 백악관 수석과 국방장관을 거쳐 거대 유전 기업 핼리버튼의 CEO를 역임한 그는 ‘대통령이 죽기만 기다리는 자리’에서 역사상 전례 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순진한 아들 부시의 묵인 아래 정계를 장악한 체니와 신보수주의자 ‘네오콘’들은 냉전 종식 후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한 미국의 힘, 행정부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21세기를 입맛대로 주물러댔다. 물론 나쁜 쪽으로.

자본주의의 오만과 탐욕을 폭로한 <빅쇼트>의 아담 맥케이는 차기작 <바이스>로 민주주의의 함정을 고발한다. 체니의 바람을 옮기자면 ‘강한 행정부’다. 신보수주의 세력과 부통령은 삼권분립과 헌법 질서를 해치지 않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넣었다.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거만한 변호사, 규제를 두려워하는 기업가, 한쪽 입장만 보도하는 미디어,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40년 동안 백악관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단을 낳은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신념이다. 1970년대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 분)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는 체니가 ‘우리의 신념은 뭔가요?’라고 묻자, 럼즈펠드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박장대소하는 씬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감독은 혹시 몰라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체니는 천직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충실한 권력의 시종이 되는 것 말이죠...’


신념 없는 권력엔 고삐가 없다. 공직자 관리, 군 통수권과 에너지 관련 사업, 내각 구성권을 손에 넣은 체니와 네오콘 일당은 세계 ‘경찰국가’ 미국의 힘에 경도됐고 그 위력을 휘두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미국이 공격당한’ 9/11 테러는 오히려 기회였다. 조작된 증거와 미디어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핼리버튼을 비롯한 정유 업체, 군수 업체들의 배를 불렸다.


전 미국인들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 이메일을 도청할 수 있는 초헌법적 ‘애국법’을 통과시켰고 강한 행정부를 위해 고문도 합법화됐다. 별 볼 일 없던 테러 집단의 수장 알 자르카위를 ‘UN 연설로 숱하게 언급해주며’ 스타로 만들었고, 그의 제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사상 최악의 테러집단 이슬람 국가(ISIL)를 세워 수백만을 학살했다.  



<바이스>는 이 모든 악의 주동자였던 체니에 집중한다. 그런데 영화 속 체니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 악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 방황했을지언정 똑 부러진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 분)의 충고를 듣고 마음을 다잡아 백악관에 입성했으며, 본인의 정치 생명을 크게 제한할 수 있는 첫째 딸의 성 정체성 고백에도 가족을 우선한다. 주먹이 앞서던 주정뱅이 젊은이는 충직하고 노련한 정치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최선을 다했다.

개성 확실한 캐릭터들의 모음 <빅쇼트>에 비해 <바이스>가 차분한 이유다. 넓은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유유자적 물길을 걸어 다니는 씬을 반복 제시하는 것이 인물을 상징한다. 체니는 서두르지 않았고 전면에 나서기보다 베일 속에 있는 것을 즐겼다. 천천히 기회를 엿보다 능숙하게 릴을 당겨 미끼 문 상대를 끌어올렸다. 오죽 침묵하고 완고했으면 이 영화조차도 첫 자막을 통해 ‘딕 체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라며 자백할 정도다.

그러나 애덤 맥케이와 친구들은 이어지는 자막처럼 ‘X나 최선을 다했다. (We did our fxxking best)’. 이제는 ‘천의 얼굴’이 어색하지 않은 크리스찬 베일은 완벽한 딕 체니 연기를 선보인다. 억센 에이미 아담스와 능청스러운 스티브 카렐,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를 연기한 타일러 페리, 리사 게이 해밀턴도 실존 인물을 보는듯하다.

코미디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각본가 출신 애덤의 적재적소 연출과 편집은 <빅쇼트>에 이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기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딕 체니가 백악관 밀실에서 네오콘 동지들과 도넛을 베어 물며 내리는 결정에 이라크가 폭격당하고 이슬람 성직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당한다.

복잡한 정치 용어와 시대 배경은 ‘딕 체니와 돈독한 관계’의 내레이터 커트(제시 플레먼츠 분) 극에 개입하며 친절히 설명해준다. 레스토랑 셰프의 입을 통해, 럼즈펠드를 통해, 부시 대통령을 통해, 역사적 사료를 통해 입체적이고도 간결하게 해설을 돕는 것은 <빅쇼트>부터 보여준 장기였다.

무거운 분위기가 길어진다 싶을 땐 재치 있게 화면을 전환한다.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 심리 상담이, 폭스 미디어의 눈물겨운 선전이 시대극을 현재와 연결한다. 그중 압권은 영화 중간 엔딩 크레디트를 올려버리는 순간이다. SNL의 어떤 에피소드 혹은 흔히 만들어지는 전기 영화처럼,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가 이 영화의 끝이 행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기에 저지를 수 있는 블랙 코미디다.



‘저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애덤 맥케이는 자성을 원한다. 그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정히 살아있는 체니에게 카메라를 돌려 기회를 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위대하고 안전한 미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뿐이다. 이제야 우리는 세계를 끝없는 혼란으로 밀어 넣은 그들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바이스>의 위정자들은 정점에 오른 순간 놀랍도록 악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는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 나아가 현대 사회가 신봉했던 자유방임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이 법을 초월해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정보화되었다는 21세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스> 속 럼즈펠드의 발언처럼, ‘미합중국 백악관 암실에서의 짧은 몇 분 대화 때문에 지구 반대편은 불탄다’. 체니의 충직함은 굉장히 근시안적이었다. 눈 앞의 달콤한 힘만 쫓은 대가로 냉전 종식 이후 자유와 평등, 원칙과 질서를 상징하던 나라가 스스로 이기적이고 추악한 탈을 쓰게 됐다.

2016년, 영화 표현대로라면 ‘오렌지 머리를 한 아저씨’가 이 모든 원인을 이민자와 소수자, 타국에 돌리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놀랍게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것처럼 국민들의 공포와 혐오를 조장한 결과였다.

<빅쇼트>에 이어 아담 맥케이는 다시 한번 <바이스>로 각성과 반성을 촉구한다. 이미 두 번이나 속은 본인들이 ‘제발, 속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대의민주주의는 정말 완벽한 걸까. 우리는 우리의 대행자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걸까. 제2의 딕 체니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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