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좋았는데...
< 고등래퍼 >는 그나마 엠넷의 힙합-오디션 프로그램 의도 중 가장 납득할 만한 의도를 갖고 있다. 과거 학교에 잘 나가는 애들이 밴드부를 했다면 요즘은 모두가 사운드클라우드를 듣고, 웬만한 힙합 스타들의 가십을 이야기하며 수업시간에 적은 가사를 쉬는 시간 교실 뒤에서 랩으로 뱉는다. 십 대들의 우상은 아이돌 그룹보단 비와이, 씨잼, 지코 등 잘 나가는 랩스타들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든,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든, 힙합은 '고등학생'들과 떼려야 뗄 수 없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데 < 고등래퍼 >라는 프로그램은 일견 의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의도가 좋았다고 내용까지 좋았다는 건 아니란다. '세상을 향한 십 대들의 돌직구'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 고등래퍼 >는 10대 버전 쇼 미 더 머니였고, 역시나 논란이 될 부분과 이슈 메이킹은 끊이질 않았다. 포맷 자체도 익숙한 데다 고등학생, 십 대라는 계층의 수요를 제대로 담아냈다고 보긴 어렵다. < 쇼 미 더 머니 >와 < 언프리티 랩스타 >에는 프로, 경력 있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나왔고, < 고등래퍼 >에는 하는 아마추어들이 방송에 나와서 '잘한다'는 클립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그들은 심사위원의 호평을 거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더 큰 명성과 부를 얻고자 한다. < 고등래퍼 >들의 학생들도 똑같은 이야기만 했다.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러운 헤이터들을 깔아뭉개며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고, 힙합으로 스타가 되고 싶은 목표만이 판을 쳤다.
누가 잘한다 누가 못한다 보다 이 프로그램에 기대를 걸었던 건 드디어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시도가 나왔구나 싶어서였다. 핵심 수요층인 십 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힙합이지만 이 장르를 이용하는 방송국은 자극적이고 쓸 데 없는 편견에 가득한 프로그램만 내놓으며 '심야 힙합 시트콤 - 그러나 좋은 사운드트랙!' 기지를 이어갔다. 삶이 지치고 힘들수록 음악은 저항의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든다. < 고등래퍼 >의 포장에선 적어도 그런 가능성의 1퍼센트 정도는 걸어볼 만했다. 힙합 불모지 2007년 중학교 시절 교실에서 가사를 끄적이며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랩 했던 추억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편견과 오만, 허세와 일탈 (made by 미디어 상술)에 놀아나는 불나방들의 애처로운 몸놀림뿐이었다. 심지어 랩조차도 끔찍.
힙합 유행의 시대를 기록하기에 이처럼 확실한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쇼도 없다는 게 < 고등래퍼 >의 유일한 장점일 테다. 몇 년쯤 지나면 잘못 유입되었고 너무도 남용된 힙합의 개념을 마구마구 써먹었던 2010년대를 반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여담으로 이제 힙합도 부모가 밀어주는 시대라서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이게 좀 웃기군... 부모힙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