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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pr 03. 2019

뭐 그래. 더 열심히 할 순 있겠지.

힙합 듀오 XXX의 <Second Language>. 쿨한 은퇴.


유연한 XXX의 두 번째 발화는 이들이 염세주의 속 일말의 희망도 품고 있었음을 들려준다. 직선적인 분노와 비타협 기조로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렀던 전작과 비교해 < SECOND LANGUAGE >의 사운드는 탄성 있게 휘어지고 메시지 전달 역시 격렬한 호통에서 허무한 조소로 옮겨왔다. 전작보단 3부작의 마무리 < Moonshine >의 기조와 가까우며 전례 없는 대중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18 거 1517'의 지독한 염증은 당구장의 '무뢰배'들로 옮겨와 여유를 느끼게 한다. 잘게 쪼갠 샘플의 인스트루멘탈 인트로는 원시적인 퍼커션 리듬과 불규칙한 신스 리프의 '우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그래서 우린 뛰어야 해 / 그래서 우린 긁어야 해'로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는 목소리가 피치 조절 및 해체되며 듣는 재미를 더한다. 

김심야의 메시지는 < LANGUAGE >처럼 과격하진 않지만 < Moonshine >의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기성 문법의 나태한 아티스트들과 'We do not speak the same language'라 선을 긋는 'Language', '예술가 오명은 씻고 가 / 같은 취급이 기분 나빠'라 일갈하는 '우아'가 대표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시장의 모순에 분노를 쏟아내다 고독한 이방인의 숙명을 깨닫고, 갈 길을 걸어가겠다는 태도다. 

높아진 자존감은 새로운 형태의 태도를 가능케 한다. 인맥과 자본 없이도 'Bougie'라 외칠 수 있고, 'Scale model'에선 '안 바뀔 거야'라 단언하면서도 '누구도 내 프라이드는 못 건드려(Nobody can ever touch my pride)'라 단언한다. 



물론
갈 때 예술가 오명은 씻고 가
같은 취급이 기분 나뻐
- 우아 -


그렇다고 비판적인 태도가 누그러진 건 아니다. '괜찮아'는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자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반어법이고 '난 계속 뻔한 얘기를 해'라는 '다했어'는 그 추태를 상세히 고발한다. 창작의 고뇌를 풀어놓는 '사무직'은 숱하게 은퇴를 고민한 이 듀오의 확실한 마무리 선언이다. 근면 성실하게 창작에 임하며 안이한 생각, 게으른 태도, 기이한 시스템과 작별하겠다는 뜻이다. 

심야와 함께 '미쳐 날뛰었던' 프랭크 역시 재기는 살리되 공격 수위를 낮췄다. 차분한 피아노 연주 위 부피 큰 사운드 샘플을 쪼개 올려놓는 'Bougie', 반복되는 리프의 'FAD' 등은 이지 리스닝이 가능하다. 간결한 루프 위 리듬 변칙으로 특이점을 주는 'Scale model'과 'Fine' 역시 랩을 훌륭히 보좌하며 독창적인 매력을 뽐낸다. 보컬 파편과 사운드 샘플을 불안하게 쌓아 올려 가다 급격히 쏟아버리는 방식으로 메인 리프를 각인하는 'Language'로 앨범의 대표곡을 주조하는 것 역시 훌륭하다.

반골 성향을 누그러뜨린 < SECOND LANGUAGE >는 전작만큼 독창적이진 않으나 XXX의 음악이 단발성으로 소모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대중적 접근 속 회의적인 시각 역시 정답이었다. < 피치포크 >의 호평과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출연 등 국제적 인정에도 음악계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더는 타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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