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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13. 2019

엘리트주의로 지구별을 바라보는 법

뱀파이어 위켄드의 새 앨범, 지성과 연구의 음악 개론

아이비리그 밴드 뱀파이어 위켄드는 리더 에즈라 코에닉의 솔로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났다. 발랄한 지난날을 뒤로하고 사색의 시대로 진입한 2013년 < Modern Vampires Of The City >이 힌트였고, 아트 팝 마스터이자 팀의 사운드 메이커 로스탐(Rostam)이 팀을 떠난 것은 결정적이었다. 소문난 레트로 마니아이자 너른 음악 지식으로 애플 뮤직 팟캐스트 < 타임 크라이시스 >를 진행하는 에즈라는 '10곡, 11곡으로는 부족했다'는 설명과 함께 18곡짜리 21세기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을 집필한다.

아메리카나와 컨트리, 루츠의 기조 위에 포크의 지적인 메시지를 더하며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소환하는 신보는 소울과 재즈, 펑크(Funk) 라틴과 테크노, 앰비언트까지 섭렵하며 그 자체로 '백과사전'의 면모를 보인다. 기존의 뱀파이어 위켄드가 로스탐의 건반과 전자음, 오케스트라 편성과 에즈라의 깁슨 / 에피폰 기타 리프로 월드 뮤직, 챔버 팝, 아트 팝의 발랄한 기존 삼각 구도를 형성했다면, 지금 에즈라는 기타를 멘 단독의 작가에 가깝다.

부피 큰 사운드와 과감한 터치 대신 간결한 소리 구성 위 잔향과 공백을 이어가며 다채로운 장르와 특유의 재치를 심어 두고,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보컬로 조곤조곤 현대 사회를 은유해나간다. 그간 활용하지 않았던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배치하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Vampire Weekend - This Life


로스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에즈라는 하임(HAIM) 세 자매의 둘째 다니엘 하임과 소울 밴드 더 인터넷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래시를 데려왔다. 전자부터 살펴보자. 영화 < 씬 레드 라인 > 속 말레이시아 찬송가와 함께 잔잔한 시작을 여는 'Hold you now'에선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의 콜라보레이션을 가져오며, 'Married in a gold rush'의 진한 컨트리 영감을 하임 스타일의 미니멀 신스 팝으로 중화함과 동시에 'We belong together'의 월드 뮤직 파트너로도 적합한 모습을 보인다. 백 보컬로도 대거 참여한 다니엘 하임은 뱀파이어 위켄드 식 아메리카나의 뮤즈가 된다.

스티브 래시의 역할은 1970년대 스티비 원더와 재즈, 소울의 정교한 구현이다. 감각적인 기타 리프와 코러스, 스캣에서 프로그레시브 록과 1970년대 < Talking Book >과 < Innervisions >의 그루비한 소울을 느낄 수 있는 'Sunflower'가 대표적이다. 이 곡의 핵심은 템포를 서서히 죽여가며 느림의 미학을 수행하는 후반부로, 숨 가쁜 전개 위의 치밀한 싱커페이션을 끈적하게 늘려 놓으며 흉내 내기 어려운 감각을 선보이는 것이 범상치 않다.

보코더를 활용한 인트로와 더불어 더블 베이스 드럼으로 그루브를 만드는 재즈 퓨전 'Flower moon'은 어떤가. 에즈라, 다니엘 하임의 보컬 사이 이국적인 기타 리프를 전개하며 관악기 세션과 함께 나른한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My mistake'에서 우수를 더하는 아련한 어쿠스틱 연주 역시 일품이다.

이렇게 욕심이 많은 작품은 자칫 좋았던 시절의 발췌로만 그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뱀파이어 위켄드를 이 시대 가장 잘 나가는 인디 밴드로 만들었던 에즈라의 센스가 있기에 앨범은 여전히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한다. 같은 레트로와 복고라도 그의 손을 거친 트랙들은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포인트를 살리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짧은 순간의 굵은 기타 리프와 보코더 활용으로 인상을 남기는 'Bambina'가 그렇고 펑키한 베이스 리듬 위 챔버 팝의 영롱함을 더하는 'How long?' 역시 영민하다.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의 'Talking'을 샘플링하고 플라멩코 기타의 'Sympathy'로 라틴의 열정을 빌려오며 월드 뮤직의 매력 역시 유지한다.

Vampire Weekend - Sunflower (Feat. Steve Lacy)


앨범을 마무리하는 두 트랙의 상이한 접근법도 흥미롭다. 'Spring snow'의 보컬에선 카니예 웨스트의 < 808 & Heartbreak >를 연상케 하는 보컬 왜곡으로 환경 파괴의 위험을 경고하더니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를 빌려온 'Jerusalem, new york, berlin'에선 전작의 'Obvious bycycle'의 톤을 유지하며 차갑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풀어낸다. 성숙한 에즈라의 내공은 뉴욕 아트 팝 신을 넘어 앨범 커버 지구별의 너른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감각으로 발현된다.

메인 싱글 'Harmony hall'이 돋보일 수 있는 것도 정교한 세공 덕이다. 사실 이 곡은 그레이트풀 데드와 피시의 열혈 팬인 에즈라가 'Touch of grey'에 상당한 빚을 지고 만든 노래다. 그 영감 위에 로스탐의 긴 잔향과 에즈라의 재치 넘치는 리프 전개를 더하며 '난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 / 하지만 죽고 싶지도 않아'라는 전작 'Finger back'의 비관적 메시지를 가져와 지적인 인상을 확립한다. 일견 평범하게 들리는 포크 송 'Big blue'도 인트로의 오묘한 신시사이저와 스틸 기타, 장엄한 가스펠 코러스를 입히며 흥미로운 곡이 된다.

하지만 이처럼 다채로운 장치를 대거 도입했음에도 < Father Of The Bride >는 에즈라의 야망과 달리 10곡 혹은 11곡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작품이다. 재미있는 장치와 다양한 사운드 스케이프, 감각으로도 과거의 유산을 새로이 단장하는 데 있어 로스탐의 공백을 메꾸기가 쉽지 않다. 'Cousins'와 'A-punk'를 이어야 할 'Bambina'는 1분 40초 중 30초 정도만이 흥을 돋운다.

'How long?'에서 살짝 꿈틀거리는 디스토션 리프는 미니멀리즘을 전복하지 못하고, 전자음이 더해진 컨트리 'Married in a gold rush' 역시 흥미로운 서사나 특별한 사운드를 들려주지는 못한다. 로스탐이 참여한 'We belong together'처럼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트랙이 많지 않다.


Vampire Weekend - Jerusalem, New York, Berlin


재치가 덜하니 출처를 떨쳐내기도 어려워진다. 일례로 다니엘 하임의 백보컬이 없었더라면 'This life'는 정말로 밴 모리슨의 'Brown eyed girl'처럼 들렸을 것이다. 기타 장식 없이 건조한 'Rich man'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기타리스트 S.E. 로지의 멜로디를 빌려왔는데, 이국적인 기타 리프에서 1986년 남아프리카로 날아갔던 폴 사이먼이 대번에 겹친다.

에즈라는 이상의 단점을 < Modern Vampires Of The City >로부터 보여준 지적인 메시지로 중화하려 한다. 앨범은 혼란의 시대 속 삶과 믿음에 대해 질문하며 '골드러시'의 호황기 태어난 현 세대가 막연히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의 문법과 캘리포니아 영어, 버스 노선과 멕시코 전통 음료로부터 유머와 깨달음을 뽑아내던 과거만 한 쾌감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전작의 'Unbelievers' 같은 진중한 한 방이 없다.


베테랑 아티스트의 여유로운 실력 발휘로도, 거대한 야심으로도 들린다. 근래 보기 드문 장대한 음악 지형도를 설계하고 그렸음은 물론 개별 곡에 특유의 재치와 활력을 불어넣는 재주도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지적인 이미지 속 꿈틀대는 젊음을 감추지 않았던 뱀파이어 위켄드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에즈라의 단독 작품 < Father Of The Bride >는 진솔한 삶의 경험과 깨달음보단 엘리트주의와 지성의 과거 연구 결과에 가깝다. 우리 시대 보기 드문 치밀함과 재치는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해외 평단의 극찬처럼 비틀스의 < The White Album >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 The River >에 준할 작품은 아니다.


허락은 받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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