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함께’ 할 수는 없을까?
‘공유’하기는 쉽지만 ‘나누기’는 어려운 것이 음악이다. 일상 속에서 음악 없는 곳을 찾기 어렵지만 마음속 품고 있는 노래와 멜로디, 비트는 각자의 스마트폰 또는 오디오 기기에 머무르곤 한다.
각자의 취향과 사연,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다가도 소셜 미디어의 피드 속, 혹은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 이상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짓궂게도 음악은 세심하기까지 해서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같은 장르라도 남성 보컬과 여성 보컬, 잔잔하고 칠(Chill)한 분위기와 들뜨고 화려한 리듬, 밴드 편성과 1인 연주 편성 등 다양한 형태로 가지를 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너도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 <비긴 어게인>에서 다정히 이어폰을 나눠 끼던 뉴욕의 댄과 그레타 커플은 영화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취향 존중’의 시대에서 취향을 나누는 것이 흔치 않다.
대중음악웹진 이즘(izm)에서 7년간 음악을 듣고 글을 써왔다. 전통적인 평론의 영역에서 음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두고 내부의 심미적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언제나 음악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곡 하나에 들어있는 이야기와 풍경, 경험과 추억의 감상이지 별점과 리뷰 양식일 수 없다.
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는 공간은 없을까?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이야기하는 모임도 있고 인상적인 전시회를 함께하는 모임도 있다. 그러나 왜 음악은 모임이 될 수 없을까? 각자의 취향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박하다면 소박하게 대화할 수 있는 클럽이 흔치 않다.
앞서도 언급했듯 음악은 삶과 밀착해있고 한 순간도 떨어지기 어려운 데다, 같은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다채로운 심상을 그려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런 모임을 그려본다. 이번 주 주제는 ‘자신의 10대를 지배한 음악’이다. 20대 중반의 어떤 멤버가 2000년대 가요와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이야기하고,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해외 록 음악과 거대 밴드에 대한 사랑, 추억을 이야기한다.
같은 20대의 다른 멤버는 한국 인디 밴드를, 또 다른 멤버는 한국 힙합을 언급하며 홍대 앞의 상이한 경험을 전달한다. 30대는 1990년대 가요와 싱어송라이터들을 이야기하고 초창기 한국에 모습을 비춘 여러 거대 밴드들을 이야기한다. 갓 스물이 된 어떤 멤버는 최신의 한국 힙합을 사랑한다.
이 자리에서 취향은 제약 없이 확장되고 공유된다. A가 푹 빠져 있는 시티 팝(City Pop)의 쿨함에 귀를 기울여보고, B를 레코드 가게로 안내한 재즈와 보사노바 선율에 귀를 기울여본다.
C가 사랑하는 해외 힙합의 독특한 무드를 경험하고 나면, 해외 인디 밴드 티셔츠를 입은 D가 독특한 매력의 밴드들을 소개한다. 공통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각자의 속에 머물렀던 선율과 리듬이 공유된다.
음악은 접근 방법이 상대적으로 간편하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고 삶 속에서 감정을 어루만져주거나 증폭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이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나누는 행위 역시 중요하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도 정확한 방법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묻는 것이다. 반복해서 깊이 각인된 노랫말과 멜로디에는 그만큼의 사연도 묻어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같이 듣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바라보고. ‘각자’를 넘어 ‘같이’를 통해 서로 다른 너와 나를 인식하는 시간, 그 시간을 음악으로 채워보고 싶어 졌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A dream you dream alone is only a dream,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당신이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