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 대신 Snapping을 택한 것이 이번에는...
'Chica'를 타이틀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로 출발해 샤키라로 연결되는 사운드가 근사하고, 소녀(Chica)가 여성(Woman)으로 성숙해나가며 '나는 원해 너의 true self / ... / 시간은 충분해 감춰둔 널 꺼내'라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며 연대를 주창하는 것도 만족스럽다. 다소 정직하긴 하나 'I just wanna be your girl'이라던 'Why don't you know', 마냥 달콤했던 'Love u'에 비하면 확실한 성장이다.
'Snapping'은 이에 비해 상징성도 덜하고 곡 자체 매력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 '금발 청하'의 고혹적인 이미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디렉팅은 정돈되었으나 오히려 이 점에서 도구적인 인상이 짙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도입부 신스 리프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추억하게 만드는 밀레니얼 팝이 이어지는데, 레트로 느낌을 짙게 낸 것도 아니고 최신의 감각과도 거리가 있어 강렬한 한 방으로는 부족하다.
데뷔 EP의 'Hands on me'와 'Make a wish'로 청하와 인연을 맺은 작곡가, 빈센초(VINCENZO)와 안나 팀그렌(Anna Timgren)의 'Flourishing'의 활용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최신의 트랩 비트 위 당당한 가사와 확실한 포인트를 잘 살린 곡임에도 영어 가사와 애매한 브레이킹은 'Snapping'을 소개하는 정도로만 소비된다.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 할 부분에서 주춤하는 모습은 아직 청하의 기획이 하나의 방향으로 확실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앞선 작품들에서도 보였던 공통점이지만 '댄싱 머신'에 만족하는 대신 여러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백예린이 선사한 '우리가 즐거워'는 앞 트랙 'Chica'와 분위기를 맞춰 강한 비트를 활용하는 신스 팝으로, 원작자의 그림자가 짙은 곡인데 청하는 보다 선명한 보컬 톤으로 확실히 구분을 둔다. 피프틴엔드(15&)의 'I dream', 백아연의 '달콤한 빈말'을 작곡한 심은지의 'Call it love'를 소화함에 있어도 우아함과 가녀림의 중간 점을 잘 잡아낸다.
굳이 급하게 갈 필요 없다는 판단, 다양한 시도 속 아티스트 재능을 키워가는 성장기로 삼겠다는 기획의 결과다. 'Chica' 대신 'Snapping'을 택한 것도 트로피컬 하우스와 레게톤 스타일로 이어지던 이미지를 '벌써 12시'에 이어 걷어보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Chica'가 분기점이 될 수 있었을 곡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결정적인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