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DA DA>에서 케이팝의 한계, 파생, 발전, 가능성을 읽다.
수민의 ‘네오 케이팝’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영상 프로덕션 GDW에서 제작한 7분 분량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다.
창문에 걸터앉아 물방울을 응시하던 수민은 번쩍이는 클럽 화장실에서 수수한 여성과 드랙퀸, 배우 김재욱을 한데 아우른다. 그의 눈동자 속엔 디지털 증강 현실의 고양이 한 마리와 디스토피아 도시, 빨갛게 물든 무희들의 기계적 댄스와 광대의 자유로운 탈춤이 교차된다. <에일리언 4>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마무리까지 연결 짓는 데서 아티스트의 야심을 확인한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수민의 음악은 시각적이다. 푸른 하늘과 물결 위 초현실적인 색으로 빛나던 첫 정규작 <Your Home> 역시 일상 속 다채로운 감정을 차분하고도 화려한 소리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새 EP <OO DA DA>는 이 강점을 더욱 과감하게 분출한다. 각각의 트랙마다 확실한 감정과 상황을 설정한 후, 그에 맞는 사운드 샘플과 감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꼭 형형색색 팔레트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닮았다.
통통 튀는 베이스 리듬과 샘플 보컬이 끊임없는 자극을 더하는 ‘Shaker’, 신스 파편과 복잡한 형태의 드럼 머신을 적극 활용하며 고양이의 행동을 인간에 옮긴 ‘Meow’부터 확실한 소리 묘사가 두드러진다. 낭만적인 ‘Love dance’는 둔탁한 일렉 기타 샘플의 전반부와 그루비한 베이스 루프의 후반부를 구분하며 섹슈얼한 느낌을 강화하고, ‘Bee’ 이리저리 요동치는 소리 요소들과 과격한 드럼 비트로 잘 짜인 혼란을 주조한다.
수민이 자신의 음악을 ‘케이팝’이라 명명하는 것은 굳건한 산업으로 자리 잡은 기획사 ‘송 캠프 시스템’에서의 경험이 바탕이다. 대형 기획사들은 북유럽, 미주, 한국 등 다양한 작곡 팀과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데모와 시도 속 최적의 결과물을 찾는다. 익숙함과 이질감 사이의 영역을 확대 재생산하여 세련되면서도 튀지 않는 곡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자체 작사 작곡이 가능한 아이돌 그룹의 경우는 전담 프로듀서와 A&R 팀과 함께 작업하며 약간의 개성과 그룹 이미지에 어긋나지 않는 결과물을 확장한다.
이를 통해 생산된 케이팝 노래는 일렉트로 팝을 기반으로 정교하고도 복잡한 구성을 띄며 알앤비, 힙합,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한 곡에 아우른다. 2010년대 중반부터 확고해진 이 ‘공정’은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했으나 독창적인 면에서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웰메이드임은 분명 하나 뇌리에 남지 못하고, 비주얼을 뒷받침하는 매니아적인 결과물에 머무르는 곡이 많아졌다.
정체되어가는 케이팝 시장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방침과 규격에 좌우되지 않는 과감한 주제 설정과 기성의 감각이 다룰 수 없는 독특한 화법이 요구된다.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로만 점철되는 케이팝 대형 기획사에서 ‘Shaker’처럼 드랙 퀸으로부터의 아이디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곡은 드물다. 거대한 공간을 상정하고 이를 사랑의 감정으로 치환한 ‘Stardust’ 같은 SF 대곡의 메시지도 흔치 않다.
그렇기에 수민은 국내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들과는 다른 궤에 존재한다. 오히려 미디어 아트와 전자 음악을 결합하여 비범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해외 솔로 아티스트들과 접점이 있다. 이들은 케이팝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으며 21세기 독특한 형태의 음악을 선보인다.
2010년대 초 팝 시장의 히트 작곡가이자 성공적인 스타일 변신으로 최근 트와이스의 ‘Girls like us’에 참여한 영국의 찰리 XCX(Charli XCX), 케이팝으로부터의 영감을 숨기지 않으며 이달의 소녀 유닛 yyxy의 'Love4eva'에 참여한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Grimes)를 비교 대상으로 볼 수 있다.
퓨처 베이스의 인기 DJ 플룸(Flume)과 ‘하이퍼 키네틱’ 디제이 소피(Sophie), 영국 레이블 PC 뮤직(PC Music)의 수장 A.G. 쿡과도 연결된다. 핀란드의 알마(Alma), 덴마크의 모(MØ), 브라질의 파블루 비타르(Pabllo Vittar), 브룩 캔디(Brooke Candy)의 이름도 겹친다. 세계 최초의 자의적 성전환 수술자인 독일의 가수 킴 페트라스(Kim Petras)도 뺄 수 없다.
적용 사례도 보인다. 엠넥(MNEK)과 바찌(Bazzi)는 케이팝 송 캠프 프로덕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다. 찰리 XCX와 그라임스는 앞서 언급한 대로 직접 곡에 참여했다. 레드벨벳의 최근 싱글 '짐살라빔(Zimzalabim)'에서 소피와 플룸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요약하자면 수민은 국내서 흔하지 않은 감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전천후 프로듀서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흔히 멜로디를 도외시하기 쉬운 장르임에도 1990년대 알앤비 바탕의 선명한 선율을 확보한 것이 장점이다. 언뜻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 안에 묘한 기시감이 있다. 독특한 톤의 보컬도 반복을 유도한다.
레드 벨벳의 ‘Look’과 보아의 ‘U&I’로 그의 대중적인 멜로디 감각은 증명된다. 레이블 8 볼 타운(8 Ball Town)의 프로듀서 브론즈(Bronze)의 시티팝 앨범 <East Shore>, 기린과의 뉴 잭 스윙 앨범 <Club 33>을 통해 복고적인 콜라보레이션에서도 어색함 없이 녹아드는 모습을 들려준 바 있다.
수민이 자신의 새 앨범 <OO DA DA>를 '네오 케이팝'이라 칭한 이유가 이해된다. 케이팝의 조직적 결과물로부터의 영감을 남다른 소수의 시선으로 옮겨 더욱 과감한 표현법을 지향하는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