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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23. 2019

레드벨벳, 눈 맞추고 손 맞대고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 소녀들



SM은 왜 짐살라빔을 낳고 음파음파를 낳았는가.



앨범을 다 듣고 나니 리뷰 작성을 위해 ‘짐살라빔’을 괴롭게 반복하던 두 달 전이 떠올랐다. 묵혀둔 타이틀 곡과 교과서적 답습의 < ´The ReVe Festival´ Day 1 >을 혹평한지라 큰 기대 없이 신보를 꺼내 들었는데, 발랄하고도 세련된 여름 노래 ‘음파음파’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마주한 것이다. SM은 기존 걸그룹 제작 공정대로 만든 곡들을 ‘첫날’ 재고 정리하고 ‘둘째 날’ 레드벨벳의 진짜 시즌을 공개하는 전략을 세웠다.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음파음파’는 좋은 곡이다. 짧은 도입 이후 곧바로 전개되는 멜로디라인이 선명하고, 찰랑거리는 기타와 베이스로 주조한 디스코 리듬은 소녀시대의 ‘Holiday’를 연상케 한다. ‘빨간 맛 (Red Flavor)’의 상큼한 순간을 재현하듯 후렴을 유니즌 형태로 진행하되 풍성한 코러스를 덧붙여 지루함을 피하고, 히트곡을 열거하는 랩 파트는 ‘Dumb dumb’ 이후로 가장 재치 있다. 기승전결이 뚜렷함에도 과한 지점 없이 유기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것도 좋다.

이런 타이틀 곡의 레트로 성향이 앨범 전체 흐름으로 이어짐을 주목해야 한다. 앨범은 곧바로 이어지는 펑키(Funky)한 기타 리프의 ‘카풀(Carpool)’로 상큼한 여름 소녀들을 그려냄과 동시에, 시계바늘을 더 과거로 돌려 1950~60년대 고전 걸 그룹의 두왑(Doo-wop) 사운드를 가져온 ‘Love is the way’로 매력적인 멜로디를 들려준다.


작곡팀 모노트리(Monotree)의 추대관이 작곡에 참여한 ‘Ladies night’는 그 핵심의 트랙인데,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의 동명 곡으로부터 얻은 펑크(Funk) 장르 아이디어를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와 닮은 따스한 멜로디와 흥겨운 브라스 세션으로 버무려 기분 좋은 ‘소녀들의 밤’을 선사한다.



레드벨벳에게 복고는 ‘Dumb dumb’과 ‘Russian roulette’에서 출발해 ‘Power up’과 ‘짐살라빔’으로 박탈된 인간미를 되찾는 방법이다. ‘Rookie’와 기본 형태를 공유하는 ‘Jumpin’’을 비교해보자. BPM을 낮추고 베이스 리듬을 죽인 다음 보컬을 부드럽게 다듬어 기타 사운드를 강조하는데, 이 결과로 곡은 하이 텐션 랩과 고음의 보컬 없이도 인공적인 면모를 덜어낸다. ‘Love is the way’처럼 평이한 가창으로 일관하는 곡도 있지만, ‘카풀(Carpool)’과 ‘Ladies night’처럼 멤버들의 고유 음색을 최대한 표현하며 수려한 합창을 끌어내는 기획 역시 오랜만이라 반갑다.

첫 미니 앨범 < Ice Cream Cake >의 ‘Automatic’과 ‘Somethin kinda crazy’, ‘Take it slow’를 기억한다면 수민(SUMIN)의 ‘눈 맞추고, 입 맞대고’ 역시 훌륭한 마무리다. 1990년대 알앤비와 원작자의 강한 장르색을 적재적소의 보컬 배분으로 중화하는데, 그중에서도 곡을 이끄는 조이와 웬디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생각해보면 레드벨벳은 실험보다 지속 가능성을 택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갔다. 큰 성공을 안긴 ‘Russian roulette’의 레트로 신스팝이 그랬고 ‘빨간 맛(Red Flavor)’은 지금까지 그룹의 정점으로 기억된다. 가장 최근의 정규 앨범< Perfect Velvet >에 쏟아졌던 호평 역시 알앤비 기조 위 세련된 일렉트로 팝으로 고혹을 강화한 결과였다.

‘음파음파’와 < ‘The ReVe Festival’ Day 2 >를 좋은 앨범이라 평하는 것도 대단히 독창적이라서가 아니다. 레드벨벳은 이 작품으로 ‘제일 좋아하는 여름 그 맛(‘빨간 맛’)’과 ‘마음에 드는 아날로그 감성(‘LP’)’을 효과적으로 풀어내며, 실험의 면모로 흐려진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 소녀’의 이미지를 다시금 공고히 한다.


SM과 레드벨벳,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Red Velvet 레드 벨벳 ‘음파음파 Umpah Ump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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