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싱글 차트 17주 연속 1위의 'Old Town Road'
22년을 기다려 빌보드의 새 역사가 쓰였다. 1999년생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컨트리 뮤지션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e Cyrus)의 콜라보 싱글 'Old Town Road'는 현지시각 7월 30일 17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빌보드 최장기간 1위 곡에 등극했다. 종전 기록은 1995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위를 차지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의 콜라보레이션 'One Sweet Day', 2017년 루이스 폰시(Luis Fonsi)의 'Despacito'가 보유한 16주 연속 1위다.
2018년 12월 빌보드 싱글 차트 100에 89위로 등장한 'Old Town Road'는 올해 4월 13일 첫 정상에 오른 후 지금까지 정상을 지켰다. 2019년 미국 상반기 음원 판매량과 비디오 조회수 포함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노래' 1위에 오른 이 곡은 지난 한 주만 해도 이 곡은 전 세계에서 약 2370만 건 스트리밍 됐고 뮤직비디오는 206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다.
만 20세 릴 나스 엑스는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곡을 올리던 아마추어 뮤지션이었다. 동시에 그는 인기 소셜 미디어 계정을 다수 운영하고 인터넷 유행에 밝은 인플루언서이자, 재미있는 짧은 유행 밈(Meme)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Old Town Road'가 힙합에 컨트리 음악을 섞고 릴 나스 엑스가 카우보이 모자를 쓴 건 그가 2019년 초 미국 인터넷과 연예계 유명 인사, 대중 사이서 카우보이 문화를 선망하고 따라 하는 '이햐 어젠다(YeeHaw Agenda)'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준비 과정도 굉장히 전략적이었다. '오래된 시골길로 말을 타고 가지 /... / 트랙터를 타고' 등의 구수한 가사는 트위터에서 밈(Meme)화 되기 좋은 형태로 가공됐다. 릴 나스 엑스는 가사를 쓰며 2018년 인기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느낌을 참고하고,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지'라는 메시지를 넣으며 인터넷 유행을 준비했다.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릴 나스 엑스는 '나 자신이 이햐 어젠다 정도의 레벨은 아니라 생각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의 노력은 정말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Old Town Road'를 공개한 후 트위터 계정에서 몇 날 며칠 동안 수많은 노래 관련 밈(Meme)을 쏟아내고, 미국 인기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그 노래 뭐였지?'라는 천연덕스러운 글을 게시하며 관심을 유도했다.
여기에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틱톡(Tiktok)이 그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줬다. 음악과 함께 15초짜리 영상을 찍을 수 있은 이 앱은 전 세계적으로 십 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릴 나스 엑스는 'Old Town Road'를 직접 등록했다. 이윽고 2019년 3월부터 틱톡에선 평범한 사람들이 '이햐 쥬스'를 마시고 카우보이로 변해 춤을 추는 '이햐 챌린지(YeeHaw Challenge)'가 대유행을 일으켰고, 'Old Town Road'는 한 달 후인 4월 마침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기록의 시작을 알렸다.
기세를 이어 릴 나스 엑스는 지난 6월 21일 첫 정규 EP <7>을 발표했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수록곡 'Panini'와 'Rodeo'는 싱글 차트 16위, 22위를 기록하며 성공을 이어가는 중이다. 6월 30일에는 게이임을 커밍아웃하며 성 정체성을 고백하기도 했다.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리믹스 버전도 화제다. 현재 차트에 올라있는 빌리 레이 사이러스는 물론 인기 디제이 디플로(Diplo), 래퍼 영 떡(Young Thug), 컵케익(Cupcakke)이 릴 나스 엑스의 원곡을 재치 있게 재해석했다. 7월 24일에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Seoul Town Road'라는 이름으로 'Old Town Road' 리믹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릴 나스 엑스와 'Old Town Road'는 디지털 시대 밈(Meme) 문화와 틱톡, 스트리밍 음악 감상이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입지전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흔히 디지털 시대 음악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2006년 온라인 다운로드만으로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소울 듀오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의 'Crazy'를 꼽는데, 이젠 새로운 사례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
빌보드 차트의 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순간이다. 1991년 판매량 산정 과정에서 빌보드는 닐슨 사운드스캔(Nielson Soundscan)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후 1990년대 팝 씬에선 10주 이상 연속 1위 곡들이 대거 등장하며 새로운 흐름을 예고했다. 2014년부터는 스트리밍 건수를 차트 집계에 반영했는데 이 역시 에드 시런, 루이스 폰시,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등 한 노래의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다.
반복 청취와 놀이 문화 연결이 용이한 스트리밍 시대에 'Old Town Road'처럼 차트에 오래 머물며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곡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기세라면 18주, 19주를 넘어 20주 연속 1위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빌보드 최장 기록의 주인공이 된 후 릴 나스 엑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Old Town Road'의 작업 과정을 회고하며 '이 노래가 내 삶을 바꿨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로이 만들었다.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Old Town Road'는 정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곡이다. 단순 숫자의 개념을 넘어 음악 산업의 변화를 상징하는 순간이 왔다.